진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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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시절 진순진(좌) 선수가 대전의 김성근(우)과 볼경합을 벌이고있다.

진순진(1974년 3월 1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했던 공격수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진순진
  • 출생일 : 1974년 3월 1일
  • 신체 : 180cm / 78kg
  • 국가대표 경력
199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6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1999 11 9 1 0 0 0
2000 6 3 0 0 3 0
2002 18 10 6 0 2 0
2003 40 28 10 2 3 0
대구 FC 대구 FC 2004 27 25 7 3 2 0
2005 28 27 7 1 3 0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2006 1 1 0 0 0 0
통산 (K리그) - 131 103 31 6 13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3년 1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 직책
2011년 7월 ~ 현재 청운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유소년 생활[편집]

문일중학교, 문일고등학교, 상지대학교를 졸업했다. 문일고 시절까지 청소년대표로도 뽑힐 정도로 뛰어난 공격수였으나 다리 부상을 크게 당하면서, 소위 명문대 축구부 진학에 실패했고 당시만 해도 무명 대학 축구부였던 상지대학교에 입학하여 4년을 보냈다. 이후 상지대를 졸업한 진순진은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아볼 기회도 얻지 못한채, 실업축구 팀인 할렐루야에 입단하여야 했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1997년 대학 졸업 후 할렐루야에 입단한 진순진은 당시 할렐루야 감독이었던 조병득의 적극적인 배려 아래 실업축구 무대에서 맹활약하였다. 마침 당시 98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선수단 내 주전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고, 이에 조병득 감독이 진순진 선수를 적극 추천하면서 진선수는 98년 2월 국가대표에 깜짝 발탁되게 된다. 아무도 예상못한 실업팀 선수의 국가대표 발탁에 그야말로 축구팬들은 경천동지했다. 여기다 진순진 선수가 국가대표 발탁 후 연습경기 5경기에서 6골을 기록[1]하며 활약하자, 더더욱 사람들은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당대 최강의 공격수였던 김도훈, 최용수도 진순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주전을 빼앗기는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그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진선수는 월드컵 본선 최종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많은 프로 구단의 관심을 받았고 이후 실시된 19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프로 시절[편집]

드래프트 이후, 99시즌 K리그 신인왕은 일찌감치 진순진 아니면 성한수 선수가 탈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진선수에 대한 세인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진순진 선수는 고질적인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었고, 프로팀 입단 후 주전 확보에 욕심을 내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데뷔 시즌은 11경기 출장 1골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불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99년 11월 25일, 시즌 종료 직후 휴가를 얻은 진선수는 부모님을 뵙기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다 빗길에 미끄러진 앞차와 정면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게된다. 이 사고로 진순진 선수는 늑골골절, 목, 허리, 어깨에 부상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는데 다들 진선수의 선수 인생은 끝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세간의 예상대로 2000시즌 6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1시즌에는 임의탈퇴까지 당하며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듯 했는데.. 조광래 감독의 적극적인 복귀 설득과 본인의 굳은 의지를 통해, 2002시즌 필드로 복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복귀한 첫해 6골, 이듬해인 2003시즌 10골 2도움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올리며 안양의 주포로 활약하였다. 영화같은 진순진 선수의 부활이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허리 부상과 교통사고를 딛고 한시즌 10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진순진 선수를 두고, 팬들은 당시 인기리에 방영중이던 '불멸의 이순신'을 패러디해 '불멸의 진순신' 이라고 그의 별명을 지어준바 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단 정식 A매치 경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