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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SK]] || 2002 ||8 ||7||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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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시절 ==  
 
== K리그 시절 ==  
1995년 [[전북 버팔로]]의 선수단을 베이스로 창단한 전북 현대 다이노스는 1순위로 지명된 [[김도훈]]이 국가대표 차출등에다가 1995년 여름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에 잘 나설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전북은 김도훈의 공백을 메워줄 외국인 스트라이커 감을 찾던 도중 러시아에서 비탈리를 발견해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적료는 단돈 12만달러, 월봉 4000달러였다. 많은 축구인들은 싼게 비지떡이라며, 저렴하게 데려온 비탈리를 그닥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탈리는 후기리그만 뛰고도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는데 성공하였다. 1995년 8월 30일 [[일화 천마]]와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하더니 네경기 연속골을 집어넣으며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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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전북 버팔로]]의 선수단을 베이스로 창단한 전북 현대 다이노스는 1순위로 지명된 [[김도훈]]이 국가대표 차출등에다가 1995년 여름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에 잘 나설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전북은 김도훈의 공백을 메워줄 외국인 스트라이커 감을 찾던 도중 러시아에서 비탈리를 발견해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적료는 단돈 12만달러, 월봉 4000달러였다. 많은 축구인들은 싼게 비지떡이라며, 저렴하게 데려온 비탈리를 그닥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탈리는 후기리그만 뛰고도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는데 성공하였다. 1995년 8월 30일 [[일화 천마]]와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하더니 네경기 연속골을 집어넣으며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1995년 4골을 기록하며 K리그 무대에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은 비탈리는 이듬해인 1996년에도 33경기에 나와 10골 6도움을 기록했고, 1997년에도 29경기에 나와 7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전북의 공격진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비탈리는 1998년 부상으로 경기를 제대로 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최만희]] 감독과의 불화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비탈리는 전반기 9경기에 나서 1골만을 넣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고, 결국 1998년 5월 수원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적료는 2억 2천만원에 연봉은 2억 6천만원에 2년 계약이었다.  
    
== K리그 이후 ==  
 
== K리그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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