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5 바이트 추가됨
, 2011년 12월 16일 (금) 21:33
잔글[[File:곽경근.jpg|170픽셀|섬네일|국가대표 시절의 곽경근]]
'''곽경근'''(1972년 10월 10일 ~)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공격수 겸 수비수이다.
== 프로필 ==
{{col-begin}}
{{col-3}}
* 이름 : '''곽경근'''
* [[K-리그 등록명|등록명]] : 곽경근
* 출생일 : 1972년 10월 10일
* 신체 : 184cm / 84kg (선수 시절)
* 포지션 : 스트라이커, 센터백
* 유스클럽 : 고려대학교 졸업
* 국가대표 경력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 1997년 ~ 1998년 국가대표
: '''통산 A매치 7경기 출장 0골'''
* 현 소속팀 : 선수생활 은퇴
* [[등번호]] : -
{{col-3}}
* K리그 기록
:{|class="wikitable" width="450px" style="text-align:center;"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 [[부천 SK]] || 1998 ||30 ||14|| 9||2||5||0
|-
| [[부천 SK]] || 1999 ||36||12||13||8||3||0
|-
| [[부천 SK]] || 2000 ||39||11 || 9||4||2||0
|-
| [[부천 SK]] || 2001 ||29||13||2||6||1||0
|-
| [[부천 SK]] || 2002 ||21||15|| 3||0||3||1
|-
| [[부산 아이콘스]] || 2003 ||27||14||0||3||2||0
|-
| [[부산 아이콘스]] || 2004 ||30||3||0||0||3||0
|-
! 통산([[K리그]]) || - ||212||82|| 36||23||19||1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시즌 종료시점 기준.
{{col-end}}
== 지도자 프로필 ==
* 2005 ~ 현재 : [[여의도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 2012 ~ 현재 : [[부천 FC 1995]] 감독 (겸임)
== 유소년 생활 ==
[[부평고]] 시절, [[노정윤]], [[이임생]]과 함께 대활약하며 부평고 축구부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선수로 알려져있다. 고교 1학년때 이미 고려대학교 축구부가 스카우트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초고교급 선수였던 곽경근은 고려대에 진학하자마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 총감독이었던 [[데트마르 크라머]]는 곽선수를 두고 몸싸움과 스피드를 겸비한 공격자원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이렇듯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히던 곽경근 선수의 앞날은 거칠것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곽경근 선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 무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며 축구인생에 암운을 맞이하게되는데 무릎 부상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김호]] 감독이 이끌던 [[1994년 미국 월드컵]] 엔트리 발탁에도 실패, 1년여동안 제대로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채 고려대를 졸업하고만 것이다.
== 일본 생활 ==
아무리 부상으로 쉰 기간이 길었다지만, 국가대표급 공격자원인 곽경근 선수를 탐내는 팀이 많았다. 요컨대 [[1995년 드래프트]] 최대어로 기대받았던것. 하지만.. [[노정윤]] 선수와 [[남대식]] 당시 고려대 축구부 감독의 주선으로 곽경근은 입단테스트 끝에 [[우라와레즈]] 행이 결정되었고, 곽경근 선수는 드래프트 거부선수로 이름을 올리게된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해외진출에 성공하였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아직 무릎부상도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곽경근 선수는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장벽 속에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못하며 겉돌았고 결국 곽선수의 소속팀이었던 우라와레즈는 6개월여만에 곽경근 선수를 방출하기로 결정한다.
앞서 드래프트 거부로 말미암아, 당분간 K리그 복귀가 불가능했던 상황. 하마터면 선수 은퇴까지 고려할뻔한 위기상황 속에서 다행히 [[JFL]] 팀이었던 후쿠시마 FC와 입단계약이 체결되면서 2년동안 후쿠시마에서 활약하게된다. 후쿠시마에서 2년간 도합 36골을 성공시키며 몸상태를 추스린 곽경근은 [[1998년 드래프트]]를 신청하며 K리그 입성을 선언했다.
== 프로 생활 ==
== 은퇴 이후 ==
은퇴 후 [[차범근 축구교실]]의 한축을 이루고있는 [[여의도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2005년 부임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부천 FC 1995 vs 부천 FC OB]]와의 친선전에 선수 겸 감독으로 참가해 부천 FC 팬들의 환호를 받은바 있다. 2011년 12월 16일 [[부천 FC 1995]]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플레이 스타일 ==
== 에피소드 ==
* 은근히 [[리웨이펑]] 선수와 생김새가 닮았다. 특히 플레이시 사진은 더더욱.
* 전반적으로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부상 관리를 제대로 못받아 아까운 재능을 썩혔던 선수로 평가받는다. 과거 니포축구 팬들은, 만약 곽경근이 1995년 드래프트를 거부하지 않고 좀 더 일찍 유공에 들어왔다면 [[세르게이]] - 곽경근 투톱에 [[윤정환]]이 패스를 찔러넣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으리라 상상하곤 했다. (물론 곽경근 선수가 95년 드래프트를 거부하지 않았다면 유공이 아닌 다른팀에 갈 확률이 높았지만..)
* 2003년 부산 아이콘스는 [[이민성]], [[우성용]] 팀내 핵심선수를 이적시켜 번돈으로 [[노정윤]], [[이임생]], 곽경근 부평고 3인방을 사오는데 모두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부산 아이콘스는 이임생이 1년만에 은퇴, 공격하라고 데려온 곽경근의 최전방 수비수화 등으로 패망. ㅠㅠ.. 그나마 노정윤이 밥값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때의 이적을 진두지휘한 [[최만희]] 당시 부산 아이콘스 단장은 이후, 이임생과 함께 수원 삼성으로 넘어갔고, 이 둘에 대해 부산팬들의 평가는 매우 좋지않다. <del>수원 삼성이 보낸 간첩이 아니었냐는 소리도 있었으니 말다했지..</del>
== 경력 ==
* 1995 : [[우라와레즈 다이아몬드]]
* 1996 ~ 1997 : [[후쿠시마 FC]] / JFL
* 1998 ~ 2002 : [[부천 SK]] / K리그
* 2003 ~ 2004 : [[부산 아이콘스]] / K리그
== 같이 보기 ==
== 참고 ==
<references/>
== 외부 링크 ==
[[분류:1972년생]][[분류:부평고등학교의 선수]][[분류:고려대학교의 선수]][[분류:1998년 드래프트 지명자]][[분류:부천 SK의 선수]][[분류:해외진출 선수]][[분류:부산 아이콘스의 선수]][[분류: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