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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File:수원.jpg|300픽셀|섬네일|수원 시절의 뚜따]]
'''뚜따''' (Moacir Bastos 1974년 6월 20일~ )는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로써 2002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다.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 프로필 ==
* 이름 : '''Moacir Bas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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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등록명|등록명]] : 뚜따
* 출생일 : 1974년 6월 20일
* 신체 : 188cm / 78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국가대표 : 브라질 청소년대표팀
* 현 소속팀 : União Barbarense
* [[등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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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기록
:{|class="wikitable" width="450px" style="text-align:center;"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 [[안양 LG 치타스]] || 2002 ||26 ||9|| 13||4||8||0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03 ||31 ||12|| 14||6||2||0
|-
! 통산([[K리그]]) || - ||57 ||21|| 27||10||10||0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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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이전 ==
1994년 Araçatuba에서 데뷔한 뚜따는 1995년부터 2년간 XV 드 Piracicaba과 Juventude를 거쳐 1997년 포르투게자를 거쳤고, 1998년 아틀레티코 파라네엔세에서 39경기 15골을 기록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여세를 몰아 뚜따는 1998년 비토리아로 이적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세리아 팀인 베네치아 팀에 입단해 98/99시즌을 소화했다. 1999년 비토리아로 돌아온 뚜따는 2000년 플라멩고를 거쳐 2001년 파우메이라스에서도 활약했다. 실력은 좋은데 유니폼을 많이 바꿔입은 [[저니맨]] 케이스.
== K리그 ==
뚜따가 K리그에 오게된데에는 [[2002 한일 월드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투혼을 보여주며 4강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이에 브라질의 유명 선수들이 치안도 좋고 돈도 충분히 주는 K리그에 매력을 느끼게 된것.<ref>덧붙여 브라질이 2000년대 초반 경제 불황기를 겪은것도 한국에겐 호재였다. 브라질 화폐가치가 폭락함에 따라 미국 달러를 꼬박꼬박 지급해주는 한국무대로 브라질 최고급 수준의 선수들이 대거 K리그에 입성했던것</ref> 뚜따도 예의 그런 브라질리언중 한명이었다.
뚜따는 임대료와 연봉등을 합쳐 총 60만달러에 안양 LG 치타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뚜따의 입단은 안양 선수단 내에서도 신선한 바람이었다. 당시 브라질 동료였던 [[안드레]]는 "이렇게 좋은 선수가 여기에 올지 몰랐다."라고 놀랐을 정도. 그렇게 K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뚜따는 정규리그만 뛰고도 13골 4어시스트라는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면서 K리그 무대에 연착륙 하였다. 이정도 성적이면 당연히 완전 이적을 하자고 구단이 매달릴 정돈데.... 안양은 뚜따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바로 당시 안양 감독이었던 [[조광래]] 감독이 뚜따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이었다.<ref> 심지어 뚜따와 조광래 감독이 라커룸에서 주먹다짐을 벌인 사건도 있었다 </ref>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개인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뚜따는 조광래 감독의 축구철학에 맞지 않았고, 이에 안양은 뚜따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것이었다.
이렇게 뚜따의 K리그 생활은 끝이 나는가 싶었지만, 이를 눈여겨본 한 구단이 입단을 제의했다. 바로 안양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다. 당시 수원은 [[고종수]], [[산드로]], [[데니스]], [[이기형]] 등 전력의 핵심 자원을 모두 다른 팀으로 보낸 상황이었고, 이러한 균열을 타개해줄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었다. 수원으로써는 모험을 택하기보다는 실리를 택한 선택이었다. 수원의 제안에 뚜따는 당연히 OK!를 외쳤고 뚜따는 수원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서정원]]과 같은 경우가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del> 뭐 이적한 방법은 다르지만...</del> 뚜따는 수원에 입단해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당시 [[김호]] 감독은 뚜따에게 프리롤을 맡겼고, 뚜따는 이러한 역할을 100% 완수해내며 연일 골행진을 이어갔다. 수원에서도 뚜따는 31경기에 나와 14골 6도움을 기록하며 안양시절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3년 김호 감독이 사퇴하고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자 [[나드손]]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 선수가 수원을 떠났고, 뚜따도 같이 떠나고 말았다.
== K리그 이후 ==
2004년에서 2007년까지 플루미넨세에서 활약했고 2007년 그레미우 2008년 피게이렝시를 거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상 카에타노에서 뛰었다. 이어 뚜따는2009-2010시즌 Náutico에서 활약했고 2010년부터 2011년까지 Resende에서 뛰었고, 2011년 브라질리엥시에서 선수생활을 접는가 했지만, 2012년 다시 팀을 옮겨 União Barbarense에서 뛰고있다.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있다...
== 에피소드 ==
* 뚜따하면 당연히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병지]]. 김병지는 2002년 9월 14일 포항 원정경기에서 뚜따 골을 넣은 뒤 자신을 향해 취한 동작에 '모욕감을 느꼈다’며 뛰어나가 뚜따의 뒤통수를 때려 선수단 전체가 충돌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때린 김병지는 5경기 출장정지에 벌금 500만원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 수원으로 이적한 후 뚜따는 안양과의 경기에서는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경기중에 조광래 감독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를 알았던(?) 수원 동료였던 [[에니오]]는 안양 벤치쪽으로 공을 차면서 뚜따가 맺힌 한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수원과 안양의 라이벌전은 더 공고해졌는데.... 1년뒤 팀이 없어졌네?
* 실력은 좋은데 워낙 안하무인적 성향에 성질머리도 그다지 좋질않아 선수단 사이에서 인화를 해친다는 평을 들었다. 그놈의 성질머리만 가다듬었어도 전설적인 외국인선수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 참조 ==
<references/>
[[분류:1974년생]][[분류: 브라질 국적의 선수]][[분류: 안양 LG 치타스의 선수]][[분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