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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등번호의 의미 === | + | === 등번호의 일반적인 의미 === |
| 각 번호와 포지션은 1번 골키퍼 외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상관관계는 없으나 관례적인 사용에 의해 각 번호는 선수의 특징 및 포지션을 상징하게 되었다. 물론 반드시 그런건 아니다. <del>가령 야심차게 영입해서 7번을 내줬더니 [[잉여]]짓만 하다 돌아가는 [[외국인선수]]라던가</del> | | 각 번호와 포지션은 1번 골키퍼 외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상관관계는 없으나 관례적인 사용에 의해 각 번호는 선수의 특징 및 포지션을 상징하게 되었다. 물론 반드시 그런건 아니다. <del>가령 야심차게 영입해서 7번을 내줬더니 [[잉여]]짓만 하다 돌아가는 [[외국인선수]]라던가</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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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번 - 주전골키퍼 - 이운재, 카시아스 등 | + | :[[1]]번 - 주전골키퍼 - [[이운재]], [[이케르 카시야스]] 등 |
| :2번 - | | :2번 - |
| :3번 - | | :3번 - |
| :4번 - | | :4번 - |
− | :5번 - 포백 수비수 | + | :5번 - 포백 수비수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 |
− | :6번 - 수비형 중앙 미드필더 | + | :6번 - [[수비형 미드필더]] |
− | :[[7]]번 - 돌파와 정교한 킥을 갖춘 미드필더 | + | :[[7]]번 - 돌파와 정교한 킥을 갖춘 미드필더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등 |
− | :8번 - 공격형 미드필더 | + | :8번 - 공격형 미드필더 - [[대전 시티즌]] 시절 [[이관우]] |
| :[[9]]번 - 최전방 공격수, 주 득점원 | | :[[9]]번 - 최전방 공격수, 주 득점원 |
| :[[10]]번 - 팀의 에이스 | | :[[10]]번 - 팀의 에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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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 === | | === 에피소드 === |
− | * [[김병지]] - '''500번''' (K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을 얼마 안남긴 시점에서 500경기 출장을 염원 + 기념하기 위해 경남 FC측이 만들고자했던 등번호. 하지만 연맹측이 2자리 이상의 등번호는 허용할 수없다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실제로 등록되지는 못했고, 대신 500경기까지 남은 숫자인 29를 등번호로 정하게 되었다.) | + | * [[김병지]] - '''500번''' (K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을 얼마 안남긴 시점에서 500경기 출장을 염원 + 기념하기 위해 [[경남 FC]] 측이 만들고자 했던 등번호. 하지만 연맹측이 2자리 이상의 등번호는 허용할 수없다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실제로 등록되지는 못했고, 대신에 당시 500경기까지 남은 경기 수인 29를 등번호로 정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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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반 사모라노 - '''1+8번''' (어린시절부터 9번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칠레의 공격수 이반 사모라노는 1996년에 인터밀란으로 이적하여 9번을 달고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1998년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가 인터밀란으로 입단하면서, 사모라노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처음 입단 당시 호나우두는 9번 대신 10번을 달았지만, 이듬해 그 10번의 자리에 이탈리아의 영웅 로베르토 바죠가 영입되기에 이르렀고, 호나우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9번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결국 사모라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9번을 호나우두에게 내주게 되었다. 상심한 사모라노는 묘안을 생각내게 되었는데, 바로 1+8 등번호였다. 1+8=9 이므로 결국 9번을 다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던것이었다. 공식적인 기록으론 18번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사모라노는 인테르 팬들의 뇌리에는 언제나 1+8, 9번의 사모라노로 남아있다.) | + | * 이반 사모라노 - '''1+8번''' (어린시절부터 9번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칠레]]의 공격수 이반 사모라노는 1996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인테르]]|로 이적하여 9번을 달고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1998년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가 인테르에 입단하면서, 사모라노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입단 당시 호나우두는 9번 대신 10번을 달았지만, 이듬해 [[이탈리아]]의 영웅 [[로베르토 바지오]]의 영입으로 10번을 달게 되었고, 호나우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9번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결국 사모라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9번을 호나우두에게 내주게 되었다. 상심한 사모라노는 묘안을 생각내게 되었는데, 바로 1+8 등번호였다. 1+8=9 이므로 결국 9번을 다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던것이었다. 공식적인 기록으론 18번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사모라노는 인테르 팬들의 뇌리에는 언제나 1+8, 9번의 사모라노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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