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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최진한.jpg|200픽셀|섬네일|]] | + | [[파일:최진한.jpg|200픽셀|섬네일|경남 FC 감독 최진한]] |
− | '''최진한'''(1961년 6월 22일 ~ 현재)은 [[대한민국]] 국적의 [[미드필더]] 출신 [[지도자]]로, 현재 [[경남 FC]]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 + | '''최진한'''(1961년 6월 22일 ~ 현재)은 [[대한민국]] 국적의 [[미드필더]] 출신 [[지도자]]로, 현재 [[경남 FC]]의 [[감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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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시]] | | * 출생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시]] |
| * 신체 조건 : 174cm / 65kg | | * 신체 조건 : 174cm / 65kg |
− | * 포지션 : 미드필더 | +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
| * 유소년 클럽 : [[진주고등학교]], [[명지대학교]] 졸업 | | * 유소년 클럽 : [[진주고등학교]], [[명지대학교]] 졸업 |
| * 현 소속 클럽 : 선수생활 은퇴 | | * 현 소속 클럽 : 선수생활 은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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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 생활 === | | === 선수 생활 === |
| + | [[파일:최진한1.jpg|200픽셀|섬네일|럭키금성 시절 최진한]] |
|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최진한은 축구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매주 조기회에 나가 볼을 찼고, 축구장을 순회하며 경기를 찾아다녔다. 그러한 성장 배경이 있었던 덕에 최진한은 아주 어릴 때 부터 공을 접하면서 유리창을 수시로 깨먹었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를 시작하지 못했는데, 자기가 다니던 진주중앙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축구 대신 육상을 시작한 그는 육상을 통해 기초 체력을 다지는 한편, [[조광래]] 등 볼 좀 찬다는 선배들이 다니던 조기회에 나가 공을 찼다. | |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최진한은 축구광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매주 조기회에 나가 볼을 찼고, 축구장을 순회하며 경기를 찾아다녔다. 그러한 성장 배경이 있었던 덕에 최진한은 아주 어릴 때 부터 공을 접하면서 유리창을 수시로 깨먹었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를 시작하지 못했는데, 자기가 다니던 진주중앙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축구 대신 육상을 시작한 그는 육상을 통해 기초 체력을 다지는 한편, [[조광래]] 등 볼 좀 찬다는 선배들이 다니던 조기회에 나가 공을 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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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상 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축구를 하기 위해 축구부가 있는 진주중학교로 전학하여 축구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부족해 하루 종일 공만 붙들고 있을 정도로 기본기에 매진했다고. [[진주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고 [[강수길]]씨의 지도 하에 1학년 중 유일하다시피 주기적으로 경기에 출장하며 실력이 급성장, 졸업 후에는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받으며 수많은 실업팀과 대학팀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졸업 후 주전 출장을 통해 경험을 쌓기를 원했던 그는 [[명지대학교]]에 진학하지만 체력적인 단점을 도출하였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보완, 대학 4학년때는 [[상무 축구단]]을 누르고 [[대통령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득점왕, MVP를 싹슬이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게 대활약을 펼친 최진한은 1984년 88팀에 선발, [[메르데카배]]에 참가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 + | 육상 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했으나, 축구를 하기 위해 축구부가 있는 진주중학교로 전학하여 축구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부족해 하루 종일 공만 붙들고 있을 정도로 기본기에 매진했다고. [[진주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고 [[강수길]]씨의 지도 하에 1학년 중 유일하다시피 주기적으로 경기에 출장하며 실력이 급성장, 졸업 후에는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받으며 수많은 실업팀과 대학팀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졸업 후 주전 출장을 통해 경험을 쌓기를 원했던 그는 [[명지대학교]]에 진학하지만 체력적인 단점을 도출하며 잠시 부진하였. 꾸준한 노력 끝에 약점을 보완한 최진한은 대학 4학년때 [[상무 축구단]]을 누르고 [[대통령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득점왕, MVP를 싹슬이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게 [[공격형 미드필더]]로 대활약을 펼친 최진한은 1984년 88팀에 선발, [[메르데카배]]에 참가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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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대학교 졸업 후, 당시 [[진주시]]에 연고가 있던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그는 럭키금성<ref>LG 치타스 포함</ref>에서 보낸 7시즌동안 151경기에 출장, 21득점 15도움을 기록하며 대활약하였고, 특히 1989년 주장을 맡은 뒤, 1990시즌에는 [[윤상철]]과 함께 18골 7도움을 합작<ref>최진한의 기록은 27경기 6골 5도움 '''0경고 0퇴장'''</ref>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K리그 최우수선수상까지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대활약을 펼친 후인 1991시즌 [[유공 코끼리]]로 이적한 그는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 18경기에 나서 12골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 | 명지대학교 졸업 후, 당시 [[진주시]]에 연고가 있던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그는 럭키금성<ref>LG 치타스 포함</ref>에서 보낸 7시즌동안 151경기에 출장, 21득점 15도움을 기록하며 대활약하였고, 특히 1989년 주장을 맡은 뒤, 1990시즌에는 [[윤상철]]과 함께 18골 7도움을 합작<ref>최진한의 기록은 27경기 6골 5도움 '''0경고 0퇴장'''</ref>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K리그 최우수선수상까지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대활약을 펼친 후인 1991시즌 [[유공 코끼리]]로 이적한 그는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 18경기에 나서 12골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