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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이트 추가됨 ,  2014년 1월 15일 (수)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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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생활 ==
 
== 유소년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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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유상철은 유난히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아 키도 작고 비쩍 말라서 운동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기 보단 허약체질을 개선해서 몸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어머니의 권유였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된 유상철은 응암초등학교-경신중-경신고를 거쳐서 축구선수로써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의 작은 키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경신고에 진학하고 나서 1학년 때 당시 감독이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을 정도였다. 이 권유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그해 겨울 합숙훈련에 합류하는 대신에 두달간 보약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갔고 그 노력의 정성이 빛을 발했던 것인지 고2때부터 키가 자라 2년 사이에 20cm나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눈에 띌 정도로 부각되진 않았으나 팀플레이에 능했던 덕분에 유상철은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U-19 AFC대회 챔피언쉽에 한국대표팀으로 뽑혔으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나큰 활약을 펼쳤고, 한국은 1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진출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 단일 대표팀이 결성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유상철은 청소년대표팀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 그렇게 유상철은 경신고를 거쳐 건국대학교로 진학한 후에 1994년에 프로무대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그가 데뷔한 팀은 울산 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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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유상철은 유난히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아 키도 작고 비쩍 말라서 운동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기 보단 허약체질을 개선해서 몸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어머니의 권유였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된 유상철은 응암초등학교-경신중-[[경신고]]를 거쳐서 축구선수로써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의 작은 키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경신고에 진학하고 나서 1학년 때 당시 감독이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을 정도였다. 이 권유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그해 겨울 합숙훈련에 합류하는 대신에 두달간 보약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갔고 그 노력의 정성이 빛을 발했던 것인지 고2때부터 키가 자라 2년 사이에 20cm나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눈에 띌 정도로 부각되진 않았으나 팀플레이에 능했던 덕분에 유상철은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U-19 AFC대회 챔피언쉽에 한국대표팀으로 뽑혔으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나큰 활약을 펼쳤고, 한국은 1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진출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 단일 대표팀이 결성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유상철은 청소년대표팀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 그렇게 유상철은 경신고를 거쳐 건국대학교로 진학한 후에 1994년에 프로무대에 발을 내딛게 되는데, 그가 데뷔한 팀은 울산 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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