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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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절의 유상철

유상철(柳想鐵, Yoo, Sang Chul, 1971년 10월 18일~)은 대한민국 서울 출생으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뛴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유비라는 별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울산 및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2011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대전 시티즌 제 6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바 있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유상철
  • 출생일 : 1971년 10월 18일
  • 신체 : 184cm / 78kg
  • 포지션 : 골키퍼를 제외하고 전부 다 가능
  • 국가대표 경력
1996년 AFC 아시안컵 대표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대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
(통산 A매치 122경기 출장 18골)
  • 수상 경력
1994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선정 (DF 부문)
1998년 K리그 득점왕 수상
1998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선정 (MF 부문)
2002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선정 (FW 부문)
  • 특이 기록
DF, MF, FW 각 부문에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을 수상
역대 한국 국가대표 A매치 최다 출장 3위 (1위는 홍명보, 2위는 이영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현대 호랑이 1994 26 9 5 1 2 0
1995 33 1 2 2 5 0
울산 현대 호랑이 1996 6 2 1 0 2 0
1997 17 1 1 0 1 0
1998 23 2 15 3 2 1
2002 8 1 9 0 0 0
2003 10 2 3 2 1 1
2005 18 8 1 1 1 0
울산 현대 2006 1 1 0 0 0 0
통산 (K리그) - 142 27 37 9 14 2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리그 직책
2006 ~ 현재 유상철 축구교실 축구교실 총감독
2009 ~ 2011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고등부 감독
2011.7 ~ 2012.12 대전 시티즌 K리그 감독
2014.1 ~ 2017.12 울산대학교 축구부 대학부 감독
2017.12 ~ 현재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K리그 클래식 감독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대전 시티즌 K리그 2011[1] 3 3 6 15위 - - 미참가
2012 13 11 20 13위 미개최 8강 미참가
통산 (K리그) 클래식 - 16 14 26 승률 28.5%


유소년 생활[편집]

어렸을 적 유상철은 유난히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고, 키도 작고 비쩍 마른 체질이었기에 장차 이 아이가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축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기 보단 운동을 통해 허약체질을 개선하고 몸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어머니의 권유 덕분이였다고 했을 정도..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된 유상철은 서울 응암초등학교, 경신중, 경신고등학교를 거치며 축구선수로써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학창 시절 유상철의 작은 키는 계속 발목을 잡았는데.. 이 때문에 경신고 1학년 시절, 당시 경신고 감독이 유선수에게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을 정도였다.

이 권유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그 해 겨울 축구부 합숙훈련에 합류하는 대신에 두달간 보약을 보충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선택한 유상철은 그 이후 키가 자라 2년 사이에 신장이 20cm나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경신고 주전으로 도약한 유상철은 눈에 띌 정도로 부각되진 않았으나, 팀플레이에 능했던 덕분에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쉽에 한국 청소년대표팀 멤버로 발탁되었으며 이 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나큰 활약을 펼치는데 성공하였다. 유선수의 활약을 발판삼아 한국은 1991년 20세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진출 티켓까지 거머쥐었지만, 아쉽게도 1991년 대회 참가를 위해 남북 단일 대표팀이 결성되는 바람에, 유상철은 청소년대표팀 엔트리에 들지 못하였다.[2] 아쉬움을 뒤로 한 유상철은 이후 경신고를 거쳐 건국대학교로 진학하였으며 건국대 축구부 에이스로 군림하다 1994시즌을 앞두고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다.


K리그[편집]

국가대표 시절[편집]

1994년 비쇼베츠 감독에 의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 유상철의 성인 국가대표 시절은 시작되었다. 특히 이 대회 8강전은 유상철 이름 석자를 대한민국에 처음 부각시켰던 경기였다. 당시 상대가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이었고, 당시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1대0으로 밀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때 한정국의 힐패스를 이어받은 유상철은 오른발 발등으로 공을 골대로 밀어넣으면서 동점골을 뽑아냈고, 이를 기점으로 한국은 일본을 계속 몰아치다가 결국 3대2 역전승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4강전에 진출했다.[3] 그 이후 국가대표 부동의 선발 멤버로 뛰었으며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필드에서 활약하였다. 포지션을 가리지않고 기용되며, 투지넘치는 플레이와 공격 가담 능력으로 국가대표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활약하였는데 90년대 중반부터 가장 유럽축구 스타일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평을 들었던 선수이다.


지도자 생활[편집]

선수 생활 은퇴 후, 중국 광저우 등지에서 유상철 국제축구교실을 운영하다 2009년부터 춘천기계공고 초대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로 활약중이다. 이후 2011년 7월 해임된 대전 시티즌왕선재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사령탑 물망에 올라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드디어 2011년 7월 17일, 대전 시티즌 제 6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과거 김대수 선수와의 충돌로 대전과 악연이 있었던 유상철 감독이 대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있다. 참고로 대전 시티즌 최고참 선수인 최은성과 동갑내기라 선수단 장악 여부도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2012시즌을 앞두고, 최은성이 대전 프론트와의 마찰로 팀을 나가자 대전은 구심점을 잃은 듯 표류했지만 유상철 감독은 케빈김형범 등 경험 많은 공격진을 중심으로 팀의 무게가 잡아가면서 분위기를 반등시키는 데 성공해 대전의 사령탑으로 안착하는듯 했다. 하지만 한 때 강등권에서 허덕이는듯 성적은 그리 좋지못해 K리그 감독으로 첫출발이 만족스럽지는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결국 2012시즌 13위로 간신히 1부리그에 잔류하며 시즌을 마쳤으나, 대전 측은 유상철 감독의 지휘력 부족 등을 이유로 계약 연장 의사를 철회했고, 결국 유상철은 대전 시티즌에서 1년 5개월여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다.[4] 이후 한동안 유상철 축구교실 총감독으로 지내다 2014년 1월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유상철 선수는 K리그 시절, 1998년 단 1시즌만을 풀타임으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그리고 그 시즌에 K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5]
  • 국가대표로도 프로선수로도 많은 족적을 남긴 선수였지만, 2000년 이전까지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상을 당해 아쉬움을 남기는 선수이기도 했다. 일례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에 뽑혔으나 전지훈련 중 정강이 부상을 당해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바 있고, 2000년에는 네덜란드 팀인 비테세 아른험과의 계약이 성사 직전까지 갔었으나[6] 동년 4월 소속팀에서의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비테세로의 입단이 불발된바 있다.
  • 2009년 이래로 그가 감독하는 곳에는 항상 오주포가 코치로 따라간다. 말하자면 유상철 사단.

경력[편집]

  • 2002 ~ 2003 : 울산 현대 / K리그
  • 2003 ~ 2004 : 요코하마 F.마리노스 / J리그
  • 2005 ~ 2006 : 울산 현대 / K리그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2012년 7월 감독에 선임되었기 때문에, FA컵과 컵대회는 본선 탈락한 상태로 시즌을 시작하였다.
  2. 당시 북한 청소년대표가 공격진을, 한국 청소년대표가 수비와 골키퍼를 뽑아 대표팀을 구성하였는데, 유상철은 엔트리에서 탈락하였던바 있다.
  3. 즉 유상철은 A매치 데뷔골을 한일전에서 기록한 셈이다. 이후 유상철은 한일전의 사나이로 불리어지게 된다.
  4. 이에 대전팬들은 최은성을 내보내며 팀 캐미스트리를 깨버리는 것도 모자라, 팀 분위기를 간신히 추스린 유상철 감독마저 몰아냈다고 비판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는데.. 결국 2013시즌 김인완 신임 감독이 대전 선수단 분위기를 되살리는데 실패하면서 13시즌 대전은 강등을 당하고 만다..
  5. 단 2002년과 2003년 유상철의 포지션은 올라운드 플레이어에 가까웠기 때문에, 1998년만 스트라이커로 뛰었다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확히는 1998년만 시즌 풀타임으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고 표현함이 옳을듯
  6. 당시 이적료 130만 달러, 연봉 80만 달러로 합의 직전이었다는게 이영중 에이전트의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