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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완산푸마.JPG|200픽셀|섬네일|92년 7월자 기사]]
 
[[File:완산푸마.JPG|200픽셀|섬네일|92년 7월자 기사]]
이듬해인 1992년 3월, 완산스포츠클럽은 스포츠 용품 판매사인 푸마<ref>이때 스폰을 해주기로 한 푸마는 몬테로사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로 푸마제품에 대한 한국 라이센스를 가진회사였다. 1993년말에 이랜드에 인수되면서 푸마 한국 라이센스도 이랜드가 가지게 된다. 이후 이랜드는 1992년에 [[임마누엘축구단]]을 인수해 창단한 이랜드 축구단을 [[이랜드푸마축구단]]으로 개명하는데 완산푸마 축구단과 [[이랜드푸마축구단]]은 무관하다.2007년을 마지막으로 푸마와 이랜드의 계약은 연장없이 종결됐고 2008년부터 독일본사가 직영으로 한국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ref>와 2년 동안 총 25억의 스폰계약을 체결했음을 발표하며 축구협회에 가입금 2천만원을 납부 후, 공식 명칭 '''완산 푸마 축구단'''으로 같은 해 6월까지 선수단을 구성하여 [[K리그 컵대회|아디다스 컵대회]]에 참가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스위스 기업이었던 몬테로사 인터내셔널로부터 연간 13억 가량의 스폰을 받기로 하였다는 등, 스폰 계약이 착실히 진행중임을 언론에 공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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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992년 3월, 완산스포츠클럽은 스포츠 용품 판매사인 푸마<ref>이때 스폰을 해주기로 한 푸마는 몬테로사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로 푸마제품에 대한 한국 라이센스를 가진회사였다. 1993년말에 이랜드에 인수되면서 푸마 한국 라이센스도 이랜드가 가지게 된다. 완산푸마가 제우엑스터로 개명하자 이랜드는 1992년에 [[임마누엘축구단]]을 인수해 창단한 이랜드 축구단을 [[이랜드푸마축구단]]으로 개명하는데 완산푸마 축구단과 [[이랜드푸마축구단]]은 무관하다.2007년을 마지막으로 푸마와 이랜드의 계약은 연장없이 종결됐고 2008년부터 독일본사가 직영으로 한국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ref>와 2년 동안 총 25억의 스폰계약을 체결했음을 발표하며 축구협회에 가입금 2천만원을 납부 후, 공식 명칭 '''완산 푸마 축구단'''으로 같은 해 6월까지 선수단을 구성하여 [[K리그 컵대회|아디다스 컵대회]]에 참가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스위스 기업이었던 몬테로사 인터내셔널로부터 연간 13억 가량의 스폰을 받기로 하였다는 등, 스폰 계약이 착실히 진행중임을 언론에 공표하였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언론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는데 왜냐하면, 오씨 주장과는 별개로 실제로 스폰대금이 입금되었다는 정황은 전혀 포착되지 않았고, 1992년 2월부로 대학을 졸업한 축구 선수들은 동년 3월 현재시점에서 이미 제각기 프로 내지 실업팀으로의 계약을 끝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돈도 없고 지명할 선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6월까지 팀을 창단해 참가하겠냐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완산스포츠클럽은 [[K리그]] 타 구단와의 협의를 통해 각 팀 당 2명씩 92시즌 1년동안 임대해 팀을 운영하겠다는 등의 복안을 마련했으나, 실현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언론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는데 왜냐하면, 오씨 주장과는 별개로 실제로 스폰대금이 입금되었다는 정황은 전혀 포착되지 않았고, 1992년 2월부로 대학을 졸업한 축구 선수들은 동년 3월 현재시점에서 이미 제각기 프로 내지 실업팀으로의 계약을 끝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돈도 없고 지명할 선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6월까지 팀을 창단해 참가하겠냐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완산스포츠클럽은 [[K리그]] 타 구단와의 협의를 통해 각 팀 당 2명씩 92시즌 1년동안 임대해 팀을 운영하겠다는 등의 복안을 마련했으나, 실현가능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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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정했던 92년 6월 컵대회 참가도 물건너가고, 혼선을 빛었으나 같은해 7월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 6개 구단주 협의회를 소집하여 장고 끝에 완산 푸마의 창단을 승인하였다.당시 6개 구단주들은 운영주체도 불분명한 완산 푸마의 참가를 탐탁치않게 여겼으나,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팀 창단이 절실하다는 축협의 대승적(?) 주장에 수긍하고 말았다.(우측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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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정했던 92년 6월 컵대회 참가도 물건너가고, 혼선을 빛었으나 같은해 7월 [[대한축구협회]]는 K리그 6개 구단주 협의회를 소집하여 장고 끝에 완산 푸마의 창단을 승인하였다.당시 6개 구단주들은 운영주체도 불분명한 완산 푸마의 참가를 탐탁치않게 여겼으나,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팀 창단이 절실하다는 축협의 대승적(?) 주장에 수긍하고 말았다.(우측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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