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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 | = 역사 = |
| + | == 호남연고 프로팀의 부재 == |
| + | 1983년 리그출범 당시에 [[국민은행 축구단]]이 전라도로 연고지를 배정받았지만 1984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실업무대로 되돌아갔다.1985년부터는 원조 [[할렐루야 축구단]]이 전라도로 연고지를 재설정했으나 1985년을 마지막으로 실업구단으로 전환했다. 할렐루야가 전라도 연고팀이 없어지고 본격적으로 연고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전라도 연고팀의 창단을 추진한 결과, 1987년 미원과 광주고속을 포함한 호남 8개기업이 공동출자로 창단을 추진했으나 지분 35%가 모자라서 무산된다.<ref>금호그룹, 미원, 삼양사, 쌍방울, 영진약품, 아남산업, 세방산업, 조선내화등이 참여했다.<small> |
| + | [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_column.php?gisa_uniq=2013062305365752§ion_code=40&key=&field=]</small></ref> 1989년에는 신생팀 [[일화 천마]] 축구단을 전라권을 연고지역으로 하여 창단시키려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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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산 진도개 축구단 창단 구상 == | | == 완산 진도개 축구단 창단 구상 == |
| 1991년 9월, 전라북도 전주에서 가칭 완산스포츠클럽(혹은 전라스포츠클럽)이 운영하는 '''완산 진도개 프로 축구단'''의 창단 구상 발족회가 열리면서 처음 완산 푸마 창단의 구상이 공개되었다. 당시, 완산스포츠클럽 대표였던 오형근<ref>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분의 과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기도 하다. 전북현대의 위상이 높아지자 자신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축구단 창단을 알맹이만 쏙 빼고 업적으로 이야기하시는데...<small> | | 1991년 9월, 전라북도 전주에서 가칭 완산스포츠클럽(혹은 전라스포츠클럽)이 운영하는 '''완산 진도개 프로 축구단'''의 창단 구상 발족회가 열리면서 처음 완산 푸마 창단의 구상이 공개되었다. 당시, 완산스포츠클럽 대표였던 오형근<ref>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분의 과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기도 하다. 전북현대의 위상이 높아지자 자신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축구단 창단을 알맹이만 쏙 빼고 업적으로 이야기하시는데...<small> |
|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180502&subMenu=articletotal1]</small></ref>씨는 해외자본과 향토기업 투자 유치 및 입장 수입 등을 토대로 자본금 3,40억을 마련후, 연간 20억 선에서 팀을 운영할 계획을 구상중임을 발표했다. | |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180502&subMenu=articletotal1]</small></ref>씨는 해외자본과 향토기업 투자 유치 및 입장 수입 등을 토대로 자본금 3,40억을 마련후, 연간 20억 선에서 팀을 운영할 계획을 구상중임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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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년, [[일화 천마]] 축구단을 전라권을 연고지역으로 하여 창단시키려했다 무산된 경험이 있던 [[대한축구협회]]는 호남권을 연고로 하는 제 7구단 창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이런 시점에 완산스포츠클럽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이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전폭적인 후원과 함께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진행된 제 7구단 창단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불안요소를 내재하고 있었다.
| + | 전라권 축구단 창단이 연이어 무산된 경험이 있던 [[대한축구협회]]는 호남권을 연고로 하는 제 7구단 창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이런 시점에 완산스포츠클럽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이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전폭적인 후원과 함께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진행된 제 7구단 창단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불안요소를 내재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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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겨우, 93년 8월 컴퓨터 조립업체였던 제우정보에서 선수단을 인수하고 가칭 '''제우 엑스터 프로 축구단''' 창단 발표와 94시즌 참가를 선언하였으나, 제우정보가 경영 위기를 맞으면서 스폰 포기 (95년 4월에 제우정보는 부도처리되었다.), 결국 전북일보와 보배소주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전북 버팔로]] 축구단'''이 창단되면서 '''완산 푸마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 | 겨우겨우, 93년 8월 컴퓨터 조립업체였던 제우정보에서 선수단을 인수하고 가칭 '''제우 엑스터 프로 축구단''' 창단 발표와 94시즌 참가를 선언하였으나, 제우정보가 경영 위기를 맞으면서 스폰 포기 (95년 4월에 제우정보는 부도처리되었다.), 결국 전북일보와 보배소주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전북 버팔로]] 축구단'''이 창단되면서 '''완산 푸마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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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산 푸마 사태가 남긴 영향 = | | = 완산 푸마 사태가 남긴 영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