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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지 이전 ==
 
== 연고지 이전 ==
1998년 10월, 이인우 전 성남시 축구협회장은 [[최만희]] 당시 풍생고등학교 감독에게서 [[천안 일화 천마]]가 [[천안 오룡 경기장]] 사용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프로축구단 유치를 구상한다. 곧바로 그는 김병량 당시 성남 시장을 설득하여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하키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던 [[성남 모란 운동장]]의 인조 잔디를 걷어내고 천연 잔디를 깔고 [[천안 일화 천마]]를 비롯한 여러 구단과 접촉한다. 그러나 성남시 측은 당시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던 [[천안 일화 천마]]에 비해 비교적 성적이 좋은 [[안양 LG]], [[부천 SK]]과 협상이 잘 흘러가자 1달 후인 1998년 11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이 직접 성남시청 시장실에서 '시민의 의견이 결집되지 않아서 연고지가 불가하다'라는 이유로 축구단 유치 불가를 [[천안 일화 천마]]에 통보했다. 특히 [[부천 SK]] 측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성남시는 [[부천 SK]]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었다. 그 다음해인 1999년 10월, 당시 서울시는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주경기장 건설비용을 출자하기가 어려우니 그 건설비용을 일부 부담할 수 있는 프로구단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안양 LG]]와 [[부천 SK]]가 서울로 연고 이전할 의사를 타진하여 성남시의 계획은 불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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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튀고싶었는데 기회봐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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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이인우 당시 성남시 축구협회장은 [[천안 일화 천마]]라도 유치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구단의 부진한 성적 때문에 선뜻 유치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9년 [[천안 일화 천마]]가 제 4회 삼보컴퓨터 [[FA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충분한 유치 명분이 생기자 이에 적극적으로 유치 의사를 표명하여 [[천안 일화 천마]]을 성남시로 유치했다. [[천안 일화 천마]]는 1999년 12월 27일,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위치한 성남시 축구협회 사무실에서 박규남 단장이 이인우 당시 성남시 축구협회장과 연고지 협약서에 서명함으로서 공식적으로 성남시로 연고지를 이전한다. 이인우 당시 성남 축구협회장은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각 프로축구단의 연고지 협약 형태를 알아보고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과의 연고지 협약을 마무리하려 했다. 반면 '''성남 일화 천마''' 구단은 김병량 당시 성남 시장과 직접 시청에서 조인식을 갖기를 원했다. 확인 결과, 당시 [[안양 LG]]만이 유일하게 프로축구단과 시장 간에 협약서를 직접 작성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프로축구단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축구협회랑 결의를 했으며 일부 구단은 그 마저도 하지 않고 연고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연고지 협약서에 서명을 한다. 당시 자신은 김병량 전 시장에게서 위임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추후 성남시 의회에서 증언한다.<ref>성남시의회록. 제3대 성남시의회 제83회 성남시의회(임시회)(폐회중) 사회복지위원회회의록 제2호 참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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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병량 전 성남시장은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근거로 들며 [[성남 일화 천마]]가 성남시민들의 단합을 해치고 있고 성남시와 연고지 협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남 일화 천마]]의 연고지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자신은 모르는 상황에서 [[천안 일화 천마]]가 이인우 전 성남시축구협회장과 연고지 협약을 맺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인우 전 협회장은 성남시 의회 증인 출석에서 "10개 구단 중에서 (성남에) 올 가능성이 있는 팀은 일화 하나뿐이다"라고 김병량 전 시장에게 보고했으며 김병량 전 시장은 "운동장을 놀릴 수는 없지"라고 대답하며 [[천안 일화 천마]]의 성남 연고 이전을 추진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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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 시대 ==
 
== 성남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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