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일화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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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jpg
기본정보
정식명칭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
별명 망아지
이전이름 일화 천마 (1989 ~ 1995)
천안 일화 천마 (1996 ~ 1999)
성남 일화 천마 (2000 ~ 2013)
클럽색          
노란색, 파란색
창단년도 1989년
해체년도 2013년
홈경기장 동대문운동장
천안 오룡 경기장
탄천종합운동장
운영
구단주 박상권
단장 박규남
감독 안익수
소속리그 K리그
홈페이지 [1]
현재시즌

성남 일화 천마(城南一和天馬)는 1989년 창단되어 2000년부터 2013년까지 경기도 성남시를 연고지로 K리그에 참가한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팀이다. 일화 천마는 1989년 서울 강북을 연고로 창단 이후, 1995년까지는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1996년 충청남도 천안시로 연고지를 옮겨 천안오룡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이용하다가 2000년 다시 경기도 성남시로 연고지를 재차 이전 후 성남종합운동장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 마지막 홈구장은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탄천종합운동장이었다.

이후 2013시즌을 끝으로 그동안 메인 운영주체였던 (주)일화는 축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고, 2014년부터 성남시민축구단 (가칭)으로 재출범하면서 성남 일화 천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편집]

동대문 시대[편집]

  • 이 부분은 일화 천마 문서를 참고한다. 일화 천마 문서는 1989년부터 1995년까지 동대문운동장을 연고로 하던 시절의 일화 천마 축구단에 대한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문서이다.


천안 시대[편집]

  • 이 부분은 천안 일화 천마 문서를 참고한다. 천안 일화 천마 문서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경기도 천안시 천안오룡경기장을 연고로 하던 시절의 천안 일화 천마 축구단에 대한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문서이다.


연고지 이전[편집]

1998년 10월, 이인우 전 성남시 축구협회장은 최만희 당시 풍생고등학교 감독에게서 천안 일화 천마천안 오룡 경기장 사용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프로축구단 유치를 구상한다. 곧바로 그는 김병량 당시 성남 시장을 설득하여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하키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던 성남 모란 운동장의 인조 잔디를 걷어내고 천연 잔디를 깔고 천안 일화 천마를 비롯한 여러 구단과 접촉한다. 그러나 성남시 측은 당시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던 천안 일화 천마에 비해 비교적 성적이 좋은 안양 LG, 부천 SK과 협상이 잘 흘러가자 1달 후인 1998년 11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이 직접 성남시청 시장실에서 '시민의 의견이 결집되지 않아서 연고지가 불가하다'라는 이유로 축구단 유치 불가를 천안 일화 천마에 통보했다. 특히 부천 SK 측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성남시는 부천 SK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었다. 그 다음해인 1999년 10월, 당시 서울시는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주경기장 건설비용을 출자하기가 어려우니 그 건설비용을 일부 부담할 수 있는 프로구단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안양 LG부천 SK가 서울로 연고 이전할 의사를 타진하여 성남시의 계획은 불발되었다.

다급해진 이인우 당시 성남시 축구협회장은 천안 일화 천마라도 유치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구단의 부진한 성적 때문에 선뜻 유치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9년 천안 일화 천마가 제 4회 삼보컴퓨터 FA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충분한 유치 명분이 생기자 이에 적극적으로 유치 의사를 표명하여 천안 일화 천마을 성남시로 유치했다. 천안 일화 천마는 1999년 12월 27일,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위치한 성남시 축구협회 사무실에서 박규남 단장이 이인우 당시 성남시 축구협회장과 연고지 협약서에 서명함으로서 공식적으로 성남시로 연고지를 이전한다. 이인우 당시 성남 축구협회장은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각 프로축구단의 연고지 협약 형태를 알아보고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과의 연고지 협약을 마무리하려 했다. 반면 성남 일화 천마 구단은 김병량 당시 성남 시장과 직접 시청에서 조인식을 갖기를 원했다. 확인 결과, 당시 안양 LG만이 유일하게 프로축구단과 시장 간에 협약서를 직접 작성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프로축구단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축구협회랑 결의를 했으며 일부 구단은 그 마저도 하지 않고 연고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연고지 협약서에 서명을 한다. 당시 자신은 김병량 전 시장에게서 위임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추후 성남시 의회에서 증언한다.[1]

그러나 김병량 전 성남시장은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근거로 들며 성남 일화 천마가 성남시민들의 단합을 해치고 있고 성남시와 연고지 협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남 일화 천마의 연고지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자신은 모르는 상황에서 천안 일화 천마가 이인우 전 성남시축구협회장과 연고지 협약을 맺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인우 전 협회장은 성남시 의회 증인 출석에서 "10개 구단 중에서 (성남에) 올 가능성이 있는 팀은 일화 하나뿐이다"라고 김병량 전 시장에게 보고했으며 김병량 전 시장은 "운동장을 놀릴 수는 없지"라고 대답하며 천안 일화 천마의 성남 연고 이전을 추진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증언한다.


성남 시대[편집]

논란[편집]

성남 일화 천마의 정체성에 대해, 지역연고주의가 설정된 1995년 이후 천안 일화 천마를 버리고 성남시로 연고이전을 감행한 것이므로 성남 일화 천마도 FC GSSK 유나이티드와 마찬가지로 일화 천마 또는 중패로 부르자는 논쟁이 있다. 이에 대해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을 모두 개진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하겠다.


천안 -> 성남 연고 이전 사태에 대한 비판[편집]

흔히, FC GSSK 유나이티드의 연고이전은 지탄의 대상이면서, 일화 천마 축구단의 연고이전에 대한 행위는 침묵하는데 대해 GS와 SK를 응원하는 무리들의 반발이 심한편이다. 이에 대해 사커월드를 필두로 한, 연고이전 비판자들은 오룡 경기장 시설의 노후화 (특히 조명탑이 없어, 야간 경기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위시해서),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천안시의 비협조, 천안 일화 천마의 인기도가 매우 약해 연고이전 당시 훗날 안양과 부천의 경우, 시위까지 나섰던것에 비해서 반발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등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하나 반박이 가능한데,


첫째, 천안 오룡 경기장 시설 노후화 문제는 천안시측이 십분 수용하여 오룡 경기장을 대체할 천안 종합운동장을 1998년 이미 기공한 상태였고 2001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있었다. 즉, 1년만 참으면(?) 시설 노후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유로 연고이전을 한 것은 정당성이 약하다.

둘째,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천안시의 비협조 등의 논거도, 천안을 버리고 간곳인 성남에서 벌어지는 기독교인들의 반발과 성남시의 비협조가 천안의 경우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약하진 않다는 점에서 역시 타당성이 떨어진다. 천안시는 오히려 천안 일화 천마측에 여타 지역이 축구를 대하는 태도와 달리 상당히 협조적이었다는 의견도 많다. (천안 운동장 기공이나 전용 연습장 약속등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예산편성도 마친 상태였다. 실제로 천안 종합운동장은 2001년 7월 완공된다.)

마지막으로', 천안 일화의 인기도가 낮아서 연고이전 당시 별 반발도 없었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사고로, 당시 천안 일화 천마를 응원했던 서포터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이 최대한 폭력을 자제하면서 항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사실이 분명 존재함에도 이들의 존재와 기억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이분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이분들에게 일화는 마치 안양 시민들에게 GS 스포츠가 부천 시민에게 SK가 안긴 것과 같은 배신감과 상처를 안겼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무시되고 남은건 '당시 천안 일화 응원하는 사람도 없었고, 시설도 낡았다더라. 따라서 안양 . 부천건과는 다르다.' 라고 떠도는 얘기뿐이다. 이처럼 천안 일화 천마의 해체는 응원했던 이들도 소수고 내가 K리그 보기 이전 일이니 이들은 배제되어도 상관없고, 안양 - 부천 시민은 다수고 결정적으로 2002년 월드컵 팬덤과 함께 급증한 K리그 팬들이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또 전승되고 있으니, 이는 패륜 행위다. 라고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풋케위키의 중요한 목적인 한국 축구 역사의 기록과 추억의 공유를 통한 팬들간의 연계 강화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도시연고 설정프로축구팀 서포터의 등장 을 계기로, 연고의식은 맹아가 텄었다고 상정하고, 이 시기 이후에 벌어진 연고이전 행위는 모두 정당히 비판되어야하는게 맞다고 본다.

천안 → 성남 연고이전이 이후 2004년, 2006년의 연고이전과 다른점[편집]

첫째, 천안오룡경기장 시설 노후화 문제 해결을 위해 1998년 천안종합운동장이 기공한 상태였으나, 당시 천안 일화 천마 입장에서는 당장 경기를 할 곳이 필요했다. 여기에 1998년 10월, 성남시에서 이미 성남모란운동장을 천연 잔디로 교체, 정규 경기가 곧바로 가능한 상태에서 일화 천마 축구단의 입장을 기다렸기 때문에 일화측으로서는 천안종합운동장을 기다리는 것보다 성남모란운동장을 쓰는게 유리했다. 또한 당시 성남 뿐 아니라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바로 프로축구팀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었기때문에, 천안시의 대응이 적극적이거나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애초에 일화 축구단은 천안을 홈으로 할 의지가 없었다. 1996년 4월 7일 첫 홈 경기 이후 10월까지 홈 경기를 한 번도 가지지 않았다. 첫 시즌에는 홈 경기를 제대로 펼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시즌에는 홈 경기 일정을 제대로 잡아서 진행하였으나 기존에 비해 선수 투자 규모도 줄었다.

특히 1998년 성남시를 비롯한 다른 지자체의 접촉 이후인 1999 K-리그 시즌부터 굉장히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정규리그 홈 경기 중 4경기 만을 천안에서 가졌으며 이 경기는 모두 수요일 오후 경기였다. 나머지 홈 경기는 기존의 홈 구장이었던 동대문 운동장, 제천 종합 운동장, 강릉 종합 운동장 등을 유랑하며 경기를 가졌다. 타지역에서 경기를 할 경우, 전광판에 팀 명으로 지역 명을 표기하지 않고 '일화'로 표기하며 천안에 연을 두지 않을 것임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셋째, 성남시의 비협조와 성남시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이동한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통일교의 색깔을 없앤 상태에서 천안 지역 기독교인들의 반발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인 필요) 천안시는 물론 기존에 천안 일화 천마에게 약속한 부분을 장기적으로 이행하고 있었지만, 성남시는 시장까지 나서서 직접 박규남 단장을 접촉하고 이미 1998년이 지나기 전에 성남 모란 운동장의 잔디를 교체하면서 향후 좋은 지원을 약속했다.

넷째, 성남 일화 천마는 성남으로 이전 후, 천안 시절과는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성남에서 지역 연고를 잡을 것을 확실히 하며 지금까지 활동해 왔다. 2004년 한 언론사가 K리그 팀들의 서울 월드컵 경기장 연고 이전에 대한 조사를 벌였을 때에도 성남 일화 천마는 "성남에서 어렵게 뿌리를 내린 만큼 앞으로도 성남을 떠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선수단[2][편집]

스탭진[편집]

성남 일화 천마 프로축구단
감독 대한민국 안익수
수석코치 대한민국 서효원
코치 대한민국 박남열
코치 대한민국 김영철
골키퍼코치 대한민국 권찬수
피지컬 트레이너 일본 야노 요시하루


선수단[편집]



기록[3][편집]

역대 시즌 기록[편집]

시즌 리그 팀수 K리그 FA컵 리그컵 아챔 감독
경기 승점 순위
일화 천마
1989 K리그 6 40 6 21 13 44 52 -8 33 5위 박종환
1990 K리그 6 30 7 10 13 28 40 -12 24 6위 박종환
1991 K리그 6 40 13 11 16 56 63 -7 37 5위 박종환
1992 K리그 6 30 10 14 6 27 21 6 34 준우승 우승 박종환
1993 K리그 6 30 18 0 12 35 23 12 68 우승 5위 박종환
1994 K리그 7 30 15 9 6 42 30 12 54 우승 4위 박종환
1995 K리그 8 28 13 9 6 36 25 11 48 우승 준우승 4위 박종환
천안 일화 천마
1996 K리그 9 32 8 8 16 52 63 -11 32 8위 5위 우승[4] 이장수
1997 K리그 10 18 2 7 9 19 31 -12 13 8위 준우승 4위 (아디다스)
4위 (프로스펙스)
준우승 레네
1998 K리그 10 18 5 0 13 17 32 -15 11 10위 5위(아디다스B조)
5위 (필립모리스)
레네
차경복
1999 K리그 10 27 10 0 17 34 44 -10 23 10위 우승 8강(아디다스)
4강(대한화재)
차경복
성남 일화 천마
2000 K리그 10 27 18 0 9 43 33 10 42 3위 준우승 2위 (아디다스)
4위 (대한화재)
- 차경복
2001 K리그 10 27 11 12 4 35 20 151 45 우승 3위 - 차경복
2002 K리그 10 27 14 7 6 43 32 11 49 우승 우승 - 차경복
2003 K리그 12 44 27 10 7 85 50 35 91 우승 컵대회 없음 차경복
2004 K리그 13 24 7 8 9 23 28 -5 29 9위 우승 준우승 차경복
2005 K리그 13 24 12 7 5 40 24 16 43 3위 8위 - 김학범
2006 K리그 14 26 14 7 5 42 25 17 59 우승 준우승 - 김학범
2007 K리그 14 26 16 7 3 43 18 25 55 준우승 6위 김학범
2008 K리그 14 26 15 6 5 45 21 24 51 3위 5위 김학범
2009 K리그 15 28 13 6 9 40 34 6 45 준우승 준우승 5위 신태용
2010 K리그 15 28 13 9 6 46 26 20 48 3위 조별예선 우승 신태용
2011 K리그 16 30 9 8 13 32 43 -11 35 10위 우승 조별예선 신태용
2012 K리그 16 44 14 10 20 47 56 -9 52 12위 신태용
2013 K리그 클래식 16 38 17 9 12 51 42 +9 60 9위 안익수


역대 감독[편집]

순서 재임 기간 성명 승/무/패 특이 사항
일화 천마
초대 1989년 ~ 1995년 박종환 86승 97무 73패 1993,1994,1995년 K리그 3연패
1995시즌 트리플 크라운
천안 일화 천마
2대 1996년 이장수 11승 10무 19패
3대 1997년 ~ 1998년 9월 레네 드자이에르 14승 18무 30패 일화 천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국인 감독
4대 1998년 9월 ~ 1999년 차경복 14승 8무 23패 1999년 FA컵 우승
성남 일화 천마
4대 2000년 ~ 2004년 차경복 94승 59무 42패 2001,2002,2003년 K리그 3연패
5대 2005년 ~ 2008년 김학범 75승 37무 34패 2006년 K리그 우승
6대 2009년 ~ 2012년 신태용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1 FA컵 우승
7대 2013년 안익수


일화 천마 클럽부문 주요기록[편집]

대회 주요 기록[편집]


대회명 순위 연도
국내대회
K리그 우승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준우승 1992, 2007, 2009
K리그 컵대회 우승 1992, 2002 (아디다스 컵), 2004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 1995, 2000 (아디다스 컵), 2006 (삼성 하우젠 컵)
FA컵 우승 1999, 2011
준우승 1997, 2000, 2009
국제대회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1996, 2010
준우승 2004
A3 챔피언스컵 우승 2004
준우승

팀 주요 기록[편집]


기록부문 이름 & 일자 상대팀 및 장소
창단 1호골 [[ ]]
창단 500호골 [[ ]]
창단 첫승
최다 득점승
최다 실점패
무패행진 K리그 무패행진 기록만 고려
최다관중
최고순위
최저순위


일화 천마 개인부문 주요 기록[편집]

개인 수상[편집]


기록부문 이름(연도)
K리그 MVP 신태용(2001), 김도훈(2003)
K리그 득점왕 신태용(1995,1996), 김도훈(2003)
K리그 도움왕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신태용(1992, 1993, 1994, 1995, 1996)
(2000, 2001, 2002, 2003),
김도훈(2003)
K리그 특별상 김도훈(2005)
K리그 신인왕 신태용(1992)
K리그 공로상 김도훈(2005)

개인 기록[편집]


기록부문 이름 상대팀, 일자 및 장소
1경기 최다 득점
연속골
통산 팀내 최다 득점자
통산 팀내 최다 도움
통산 팀내 최다 출장 경기 ( ~ )


출신 선수[편집]

일화 천마 출신(1989년 ~ 1995년)의 선수들의 목록은 분류:일화 천마의 선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안 일화 천마 출신(1996년 ~ 1999년)의 선수들의 목록은 분류:천안 일화 천마의 선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남 일화 천마 출신(2000년 ~ 2013년)의 선수들의 목록은 분류:성남 일화 천마의 선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대 주요 선수[5][편집]

이름 성남 소속 연도 통산 기록
(성남에서 뛴 기록만)
수상 경력
2000년대
김도훈 2003년 ~ 2005년 104경기 51골 23도움 2003 K리그 득점왕, 2004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구단 제반사항[편집]

홈구장[편집]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다. 1989년부터 1994년 사이에 동대문운동장은 일화 천마 축구단 이외에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가 모두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는데, 일화 천마의 인기가 가장 좋았다.[6]

2002년 4월에 완공된 탄천 종합 운동장2002 FIFA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개장 경기로 성남 일화 천마와 폴란드 대표팀간의 경기가 열려 성남 일화 천마의 홈 구장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성남시의 비 협조적인 태도로 성남 일화 천마는 계속 경기를 성남 모란 운동장에서 가져야만 했으나, 마침내 2005년부터 홈구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이름을 성남 제2 종합 경기장에서 탄천 종합 운동장으로 바꾼 이 경기장은 16,146개의 좌석을 갖춘 구장으로 총 수용인원이 19,000명이다. 한편 지난 2009년 지붕과 음향 시설 개보수 공사를 하여 거의 전 좌석에 지붕이 덮여져 있다. 당시 성남 일화 천마는 성남 모란 운동장으로 되돌아가 한 시즌을 보냈다.


엠블럼[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성남시의회록. 제3대 성남시의회 제83회 성남시의회(임시회)(폐회중) 사회복지위원회회의록 제2호 참조
  2. 2013시즌 종료 시점 기준. 즉, 성남 일화 천마의 해체 직전 마지막 선수단 명단을 기재한다.
  3. 1989년부터 2013년까지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기록을 모두 포괄한다.
  4. 실제 1995~1996 시즌의 우승은 1995년 12월 29일에 결정되었다.
  5. 입단 연도를 기준으로 과거부터 정렬하였다.
  6. 이유는 박종환 감독을 사랑하는(?) 아저씨 팬들이 경기마다 몰렸기 때문.


틀:ACL 우승 클럽

틀:AC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