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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3일 (월) 00:47
[[File:한국합판.JPG|섬네일|한국합판 CI. 축구단 유니폼에도 기안되었었다.]]
'''한국합판'''(韓國合板)은 전북 군산소재의 목재회사로 1970년부터 1972년 3월까지 축구단을 운영하였다. 한국합판은 후에 세풍그룹으로 성장하여 전북지역의 유력한 대기업이 되었으나 1998년 부도처리 되었다.
== 한국합판 (세풍) ==
1953년 창업주 고판남이 성냥제조업체 시작하였으나 1960년대 가발과 함께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던 합판을 수출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ref> 당시 한국은 세계 제1의 합판 수출국으로 한 때 전세계 합판시장의 83%를 장악하기도 하였다.</ref> 합판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1973년 고려제지(세대제지)를 인수하여 합판사업이 사양길에 접어 들었을 때에는 제지사업을 하면서 한 때 신문용지사업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사세를 확장시켜 세풍그룹으로 발전했다. 전북지역 민방인 전주방송을 인수하기도 했으며 무리한 [[F1]] 그랑프리대회의 유치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결국 1998년 부도처리 되었다. 전주방송 등 은 계열분리되고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파산 및 워크아웃상태가 되며 그룹은 공중분해되었다. 후에 F1 자동차 경기대회(고대원) 및 전주방송(고대용) 인수 과정에서의 뇌물비리가 밝혀져서 사주형제(고판남의 손자들)가 구속되었다.
== 한국합판 축구단 ==
1969년 8월 창단하여<ref>1970년 3월에 창단해 해체했다는 언론기사가 있지만 월간축구 1970년 7월호에 1968년 8월 창단으로 나와있다.1969년 제17회 대통령배 쟁탈 전국 축구대회에 출전한 이력이 있고 1970년 6월에 열린 18회 대통령배 쟁탈 전국축구대회에서 한국합판을 창단 10개월밖에 안됐다고 소개된만큼 이 쪽이 더 신빙성이 있다.</ref> 꾸준히 실업축구연맹의 대회에 참여했다. 68년 군산시내에서 직장인 축구대회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실업팀까지 창단하게 된다. 선수들은 8시부터 근무하여 12시에 업무를 마치고 2시부터 5시까지 연습을 하는게 일과였다. 축구팀에 별도로 지원되는 예산이 없어서 사내매점 이익금으로 축구단 운영비를 충당했다. 1972년 초 유이한 지방팀인 [[제일모직]] 축구단이 해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해 3월 30일 해체되었다. 국가대표를 지낸 유명한 축구선수도 없었고 호남지역 최초의 실업팀이라는 의미만 있다.
== 같이 보기 ==
== 참고 ==
<references/>
[[분류:실업축구단]]
[[분류:군산시]]
[[분류:해체된 축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