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산 출신으로 수영중학교, [[동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경신고등학교]]로 스카우트 되어 활동한 뒤<ref>정확히는 동아고등학교 축구부 코치였던 [[박경화]] 씨가 경신고등학교 코치로 전임하자 지도자를 따라 오석재 선수도 상경하였던 것이라고 한다.</ref> [[건국대학교]]에 진학, 졸업한 선수이다. 동아고 시절부터 신장이 185cm에 육박하는 초장신 스트라이커로 주목을 받았으며, 경신고로 전학간 뒤 곧바로 청소년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아시아무대에서 활약하였다. 1976년에는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청소년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였지만, 4강전에서 [[북한 U-20]]을 상대로 분패하였던바 있다.<ref>여담으로 이 경기가 사상 첫번째 [[남북전]] 경기였다.</ref> 건국대학교에 진학해서는 1977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5골을 쏟아넣으며 대회 MVP와 득점왕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 + | 부산 출신으로 수영중학교, [[동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경신고등학교]]로 스카우트 되어 활동한 뒤<ref>정확히는 동아고등학교 축구부 코치였던 [[박경화]] 씨가 경신고등학교 코치로 전임하자 지도자를 따라 오석재 선수도 상경하였던 것이라고 한다.</ref> [[건국대학교]]에 진학, 졸업한 선수이다. 동아고 시절부터 신장이 185cm에 육박하는 초장신 스트라이커로 주목을 받았으며, 경신고로 전학간 뒤 곧바로 청소년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아시아무대에서 활약하였다. 1976년에는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청소년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였지만, 4강전에서 [[북한 U-19]]를 상대로 분패하였던바 있다.<ref>여담으로 이 경기가 사상 첫번째 [[남북전]] 경기였다.</ref> 건국대학교에 진학해서는 1977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5골을 쏟아넣으며 대회 MVP와 득점왕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