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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드래프트]]에서 [[부산 대우 로얄즈]]에 4순위로 지명되었다.<ref>당시, 드래프트 4순위는 각 기업이 후원하는 대학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고, 대우가 후원하던 [[아주대학교]] 축구부 소속인 권해창 선수가 4순위로 뽑힐 수 있었다.</ref> 데뷔 첫 해부터 조커로 기용된 권해창 선수는 빠른 발을 이용한 부산의 공격 활로를 트는 역할을 전담하였으나, 1997년 사타구니가 아파오는 희귀한 병에 걸리면서 시련을 맞이한다. 당시 국내 의료진은 권해창 선수의 병명을 파악하지 못했고 권선수는 조금만 뛰어도 통증이 오는 상태를 극복할 수 없어 은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때 구단의 배려로 일본에서 검진 후 수술을 받은 권선수는 98년 하반기 재활끝에 2년여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고 이후 99년 [[대한화재 리그컵]] 준결승전에서 천금같은 동점골이자 데뷔 5년만의 데뷔골을 성공시키며 부산에서 줄곧 활약하였다.
 
[[1995년 드래프트]]에서 [[부산 대우 로얄즈]]에 4순위로 지명되었다.<ref>당시, 드래프트 4순위는 각 기업이 후원하는 대학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고, 대우가 후원하던 [[아주대학교]] 축구부 소속인 권해창 선수가 4순위로 뽑힐 수 있었다.</ref> 데뷔 첫 해부터 조커로 기용된 권해창 선수는 빠른 발을 이용한 부산의 공격 활로를 트는 역할을 전담하였으나, 1997년 사타구니가 아파오는 희귀한 병에 걸리면서 시련을 맞이한다. 당시 국내 의료진은 권해창 선수의 병명을 파악하지 못했고 권선수는 조금만 뛰어도 통증이 오는 상태를 극복할 수 없어 은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때 구단의 배려로 일본에서 검진 후 수술을 받은 권선수는 98년 하반기 재활끝에 2년여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고 이후 99년 [[대한화재 리그컵]] 준결승전에서 천금같은 동점골이자 데뷔 5년만의 데뷔골을 성공시키며 부산에서 줄곧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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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로 매각되었고 팀명칭도 [[부산 아이콘스]]로 개칭, 대우 인사를 쳐내는데 분주했던 현산측은 권해창 선수를 2000시즌 종료후 은퇴식 한번 안치루어주고 방출시켜 많은 비난을 받았던바 있다. 선수 생활 정리 후에는 고향인 함안으로 돌아가 함안 안의초등학교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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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 대우 로얄즈는 현대산업개발로 매각되었고 팀명칭도 [[부산 아이콘스]]로 개칭, 대우 인사를 쳐내는데 분주했던 현산측은 권해창 선수를 2000시즌 종료후 은퇴식 한번 안치루어주고 방출시켜 많은 비난을 받았던바 있다. 선수 생활 정리 후에는 고향인 함양으로 돌아가 함양 안의초등학교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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