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줄: |
2번째 줄: |
| '''티아고'''(Tiago, 1977년 12월 4일 ~ ) 는 브라질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9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반시즌 활동한 스트라이커이다. | | '''티아고'''(Tiago, 1977년 12월 4일 ~ ) 는 브라질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9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반시즌 활동한 스트라이커이다. |
| | | |
− | 입단 당시 '''티아고'''로 등록 되었으나, 후에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한 [[티아고2]]와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티아고3]]이 존재 함으로, '''티아고1'''으로 작성. | + | 입단 당시 '''티아고'''로 등록되었으나, 후에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한 [[티아고2]]와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티아고3]]이 존재 함으로, '''티아고1'''으로 작성. |
| | | |
| | | |
20번째 줄: |
20번째 줄: |
| * 국적 : {{국기그림|브라질}} '''브라질''' | | * 국적 : {{국기그림|브라질}} '''브라질''' |
| | | |
− | * 출생지 : {{국기그림|브라질}} 상 파울루 주 아메리카나(Americana, São Paulo) | + | * 출생지 : {{국기그림|브라질}} 상파울루 주 아메리카나(Americana, São Paulo) |
| | | |
| * 출생일 : 1977년 12월 4일 | | * 출생일 : 1977년 12월 4일 |
48번째 줄: |
48번째 줄: |
| | | |
| == K리그 이전 == | | == K리그 이전 == |
− | 브라질 우니앙 아그리콜라 바바리엔시(União Agrícola Barbarense) 유스 시절을 보낸 티아고는 1997년 프로 선수로 승격 되어 데뷔를 하였다.<ref>풋살 선수에서 축구 선수로 전향하였다고 한다.</ref> 이후 중국 무대에 입성한 티아고는 2000년 부터 2003년 까지 선전 핑안(現 선전 FC)에서 리이(李毅, Li Yi)와 함께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중국에서 마지막 시즌인 2003년에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하였다.<ref>중국 축구 갑급 A리그 마지막 득점왕이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로 재출범 하였다. 티아고는 중국에서 총 80경기에 출전하여 44골을 득점하였다.</ref> | + | 브라질 우니앙 아그리콜라 바바리엔시(União Agrícola Barbarense)에서 유스 시절을 보낸 티아고는 1997년 프로 선수로 승격되어 데뷔를 하였다.<ref>풋살 선수에서 축구 선수로 전향하였다고 한다.</ref> 이후 중국 무대에 입성한 티아고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선전 핑안(現 선전 FC)에서 리이(李毅, Li Yi)와 함께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선전에서 마지막 시즌인 2003년에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하였다.<ref>중국 축구 갑급 A리그 마지막 득점왕이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로 재출범 하였다. 티아고는 선전에서 총 80경기에 출전하여 44골을 득점하였다.</ref> |
| | | |
− | 중국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티아고는 J리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하였고, 리그에서 10경기에 나서서 2골을 기록하였고 J리그컵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 일왕컵에서 1경기의 출전 기록하였지만, 부상으로 제대로 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었다. 부상으로 인하여 일본에서의 기록은 중국에서의 화려한 기록에 비하여 못하다는 평이었다. | + | 중국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티아고는 J리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하였지만, 리그에서 10경기에 출전해서 단 2골을 기록하는 부진을 겪었다.<ref>J리그컵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 일왕컵에서 1경기의 출전.</ref>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잦은 부상이었고, 이로 인하여 제대로 된 경기를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였다. |
| | | |
− | 이후 브라질로 복귀하였고 2006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상하이 롄청(現 상하이 뤼디 선화<ref>2007년 상하이 선화와 합병되었다.</ref>)과 베이징 궈안에서 활약하였다. 중국 복귀 후 활약 또한 처음 중국 무대에 입성하였을 때 보다도 아쉬운 활약이었었고, 베이징 궈안에서 반시즌 만에 브라질의 고이아스(Goiás)로 이적하였으나, 다시 베이징 궈안으로 2008년 임대를 떠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하고 리그에서 6골을 기록하는 무난한 활약을 하였다.
| + | 일본에서 부진으로 티아고는 브라질로 복귀하였고, 2006년에는 다시 중국 무대로 복귀하여 상하이 롄청(現 상하이 뤼디 선화<ref>2007년 상하이 선화와 합병되었다.</ref>)에서 한 시즌 활약한 뒤,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였지만, 티아고는 처음 중국 무대에 입성하였을 때보다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좋지 못한 평가와 함께 티아고는 베이징 궈안에서 반시즌 만에 퇴단하게 되었다. 티아고는 방출된 후 브라질의 고이아스(Goiás)로 이적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베이징 궈안으로 2008년 임대 이적하여 복귀하였고, 그 시즌 베이징 궈안에서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6골을 기록하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득점을 성공하는 무난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
| | | |
− | 베이징 궈안에서 임대 기간을 마친 티아고는 브라질의 상카에타누(São Caetano)로 이적하였다. | + | 베이징 궈안에서의 임대 기간을 마친 티아고는 브라질의 상카에타누(São Caetano)로 이적하였다. |
| | | |
| | | |
| == K리그 == | | == K리그 == |
− | 2009년 여름,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전반기에서의 부진한 성적과 기존 공격수들의 빈곤한 득점력<ref>서동현은 전반기 내내 무득점 행진에 시달리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하태균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으며, 2008년 우승을 이끌었던 에두 또한 전반기 동안 리그에서만 2득점에 그쳤다. 더욱이 이 선수들이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로 경기에 못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2009시즌에는 [[이상호2|이상호]]와 [[배기종]] 마저 본래의 포지션이 아닌 공격수 자리에 기용하는 전술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이러한 변화도 효과적이지 못하였다.</ref>을 채워줄 외국인 공격수로 [[산드로2|산드로 히로시]]와 함께 상카에타누로 부터 임대 영입되었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23번. | + | 2009년 여름,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전반기에서의 부진한 성적의 반등이 필요했었다. 또한 기존 공격수들의 빈곤한 득점력<ref>[[서동현]]은 전반기 내내 무득점 행진에 시달리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하태균]]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으며, 2008년 우승을 이끌었던 [[에두]] 역시 전반기 동안 리그에서만 2득점에 그쳤다. 더욱이 이 선수들이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로 경기에 못 나오는 경우도 빈번해져서 2009시즌에는 [[이상호2|이상호]]와 [[배기종]] 마저 본래의 포지션이 아닌 스트라이커 자리에 기용하는 전술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이러한 변화도 효과적이지 못하였다.</ref>을 채워줄 외국인 공격수의 영입도 절실하였다. 이에 따라 [[산드로2|산드로 히로시]]와 함께 티아고를 상카에타누(São Caetano)로 부터 임대 영입하게 되었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23번. |
| | | |
− | 티아고의 K리그 데뷔는 7월 4일에 있었던 [[성남 일화]]와 홈 경기에 이루어졌다. 이 경기에서 티아고는 수비지역에 있던 [[백지훈]]의 롱패스를 등으로 살짝 건드려 받아서 공의 경로를 바꾸어 수비를 완벽히 속이고 단독 찬스를 만든 뒤, 가볍게 왼발 인사이드로 차 넣어 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성공 시켰다. <ref>당시 만 31세의 티아고는 이렇게 가볍게 수비를 속이는 모습에서 노련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ref> 이후 리그에서 계속 선발 출전하면서 주전으로 도약한 티아고는 8월 1일에 있었던 [[FC GS]]와 펼쳐진 홈경기에서도 [[김대의]]가 수비진영에서 길게 찬 롱볼을 가볍게 트래핑하여 단독 찬스를 만들었고 지체 없이 바로 차 넣어서 팀의 추가골을 성공 시켰다. 그 뒤 리그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하였다. | + | 티아고의 K리그 데뷔는 7월 4일에 있었던 [[성남 일화]]와 홈경기에 이루어졌다. 이 경기에서 티아고는 수비 지역에 있던 [[백지훈]]의 롱패스를 등으로 살짝 건드려 받아서 공의 경로를 바꾸어 수비를 완벽히 속이고 단독 찬스를 만든 뒤, 가볍게 왼발 인사이드로 차 넣어 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성공 시켰다. <ref>당시 만 31세의 티아고는 이렇게 가볍게 수비를 속이는 모습에서 노장다운 노련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ref> 이후 리그에서 계속 선발 출전하면서 주전으로 도약한 티아고는 8월 1일에 있었던 [[FC GS]]와 펼쳐진 홈경기에서도 [[김대의]]가 수비 진영에서 길게 찬 롱볼을 가볍게 트래핑 하여 단독 찬스를 만들었고 지체 없이 바로 차 넣어서 팀의 추가골을 성공 시켰다. 그 뒤 리그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하였다. |
| | | |
− | 티아고는 FA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FA컵 4강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경기에서도 전반 26분에 선취 득점을 성공 시켜서 팀의 3-0 대승과 결승행을 이끌었었고, [[성남 일화]]와의 결승전에서도 [[라돈치치]]에게 전반에 실점하여 패색이 짙던 후반 약 42분에 밀집 수비 사이에서 돌파를 시도하여 페널티킥을 얻어내었고 이를 [[에두]]가 성공시켜 연장전으로 이끌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승부차기에 돌입하였고 티아고는 실축하였지만, [[김두현[[과 [[김대의]]가 승부차기에 성공하여 팀의 2-4 승부차기 승리에 기여하였다. | + | 티아고는 FA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FA컵 4강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경기에서도 전반 26분에 선취 득점을 성공 시켜서 팀의 3-0 대승과 결승행을 이끌었었고, [[성남 일화]]와의 결승전에서도 [[라돈치치]]에게 전반에 실점하여 팀의 패색이 짙던 후반 약 42분에 성남의 밀집 수비 사이에서 돌파를 시도하여 [[김태윤]]으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내었고, 이를 [[에두]]가 성공시켜 연장전으로 이끌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승부차기에서는 티아고는 실축하였지만, 티아고의 다음 키커였던 [[김두현]]과 [[김대의]]가 승부차기에 성공하여 수원은 2-4로 승리하여 FA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티아고는 승부차기에서 실축은 하였지만, 후반 종료 직전 과감한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활약으로 수원의 FA컵 우승에 기여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
| | | |
− | 2009시즌이 종료한 후 티아고는 적지 않은 나이에 완전 이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으며, 2010시즌에는 티아고와 함께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 + | 2009시즌이 종료한 후 티아고는 적지 않은 나이에 완전 이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으며, 2010시즌에는 티아고와 함께 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었다. |
| | | |
| | | |
| | | |
| == K리그 이후 == | | == K리그 이후 == |
− | 수원에서 임대 복귀한 티아고는 2010년에 중국 무대의 첫 팀이었던 선전 FC<ref>팀 명칭이 상당히 자주 바뀌는 팀이다. 그러한 이유로 티아고의 데뷔 시절 팀명하고 다르다. 또한 선전 FC라는 팀명도 변경되어 2014년까지 선전 홍쫜으로 불리다가 다시 2015년 부터 선전 FC로 불리는 중이다.. 이 팀을 가장 편하게 부르는 방법은 '''선전 루비'''로 부르는 것이 제일 편한 방법일 것이다.</ref>로 이적하였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청두 톈청으로 임대 이적하여 팀의 중국 슈퍼리그 승격에 기여하였다. 후에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시절 코치로 인연이 있었던 마사나가 카게야마 감독(影山 雅永, Masanaga Kageyama)의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이적하여 두 시즌 활약하였다. | + | 수원에서 임대 복귀한 티아고는 2010년에 중국 무대의 첫 팀이었던 선전 FC<ref>팀 명칭이 상당히 자주 바뀌는 팀이다. 그러한 이유로 티아고의 데뷔 시절 팀명하고 다르다. 또한 선전 FC라는 팀명도 변경되어 2014년까지 선전 홍쫜으로 불리다가 다시 2015년부터 선전 FC로 불리는 중이다.. 이 팀을 가장 편하게 부르는 방법은 '''선전 루비'''로 부르는 것이 제일 편한 방법일 것이다.</ref>로 이적하였지만, 부진하여 하부리그에 있었던 청두 톈청으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티아고는 8경기에 나서서 6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으로 청두의 중국 슈퍼리그 승격에 기여하였다. 청두의 승격에 기여한 티아고는 다음 시즌에는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이적한 팀은 2004년 산프레체 히로시마 시절, 코치로 인연이 있었던 마사나가 카게야마(影山 雅永, Masanaga Kageyama)가 감독으로 있는 J2의 파지아노 오카야마였다.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는 두 시즌 활약하고 퇴단하였다. |
| | | |
− | 2013년, 브라질의 인디펜덴테 지 리메이라Independente de Limeira)에 소속된 것을 마지막으로 축구활르 벗은 것으로 보인다. | + | 2013년, 브라질의 인디펜덴테 지 리메이라Independente de Limeira)에 소속된 것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보인다. |
| | | |
| | | |
| == 플레이 스타일 == | | == 플레이 스타일 == |
− | 신장이 장신이나, 포스트 플레이에 적합한 선수는 아니었고 스피드가 느린 문제점이 있었다. 대신, 간결한 볼트래핑과 노련한 플레이가 장점이었다. | + | 신장이 장신이지만, 포스트 플레이에 적합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스피드가 느린 문제점이 있었다. 대신, 간결한 볼 트래핑과 노련한 플레이가 장점이었다. |
| | | |
| | | |
| | | |
| == 에피소드 == | | == 에피소드 == |
− | * 브라질에서 커리어 보다 동아시아에서 대부분을 보내왔다. | + | * 브라질 국적의 선수이지만, 브라질에서 보내온 시간보다 동아시아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내왔었다. |
| | | |
− | * 리그 4골과 FA컵에서 1골을 기록하여 총 5득점을 하여서 공격수로 좋은 기록은 아니었지만,<ref>문제는 높지 않는 득점 기록이지만, 다른 선수들이 삽질하여 김두현과 함께 수원 내 2009시즌 득점 공동 2위에 오른다. 2009시즌, 수원이 얼마나 득점력이 빈곤하였는지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ref> 공간을 만들려 노력하는 플레이로 나름 기여도가 좋았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당시 수원의 공격수들의 저조한 플레이와 둔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후에도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 + | * 리그 4골과 FA컵에서 1골을 기록하여 총 5득점을 하여서 공격수로 좋은 기록은 아니었지만,<ref>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득점 기록이지만, 문제는 [[에두]]를 제외한 다른 공격진들이 워낙 삽질이 심하여서 [[김두현]]과 함께 수원 내 2009시즌 득점 공동 2위에 오르게 되었다... 2009시즌에 수원이 얼마나 득점력이 빈곤하였는지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ref> 공간을 만들려 노력하는 플레이로 나름 기여도가 좋았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당시 수원의 공격수들의 저조한 플레이와 둔한 움직임으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시간이 자난 시점에서도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
| | | |
− | * 잦은 부상으로 커리어가 꾸준하지 못한 모습이다. 과거 중국에서도 부상 문제가 많았다고 하며, 첫 일본 무대에 입성하였을 때도 부상으로 발목을 잡았다. 후에 마지막 일본 무대였던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도 초반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다가 다시 부상으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나이도 고령이라서인지 폼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 + | * 잦은 부상으로 현역 시절 커리어가 꾸준하지 못한 모습이다. 과거 중국에서도 부상 문제가 많았다고 하며, 첫 일본 무대에 입성하였을 때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후에 마지막 일본 무대였던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도 초반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다가 다시 부상으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되어서 폼 회복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