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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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티아고

치아구(Tiago, 1977년 12월 4일 ~ )는 브라질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9년 K리그에서 활동한 스트라이커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티아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프로필[편집]

  • 이름 : 치아구 조르지 오노리우 (Tiago Jorge Honório)
  • 국적 : 브라질 브라질
  • 출생일 : 1977년 12월 4일
  • 신체 : 194cm / 85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9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15 9 4 0 3 0
통산 K리그 15 9 4 0 3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선수 생활[편집]

K리그 이전[편집]

풋살 선수로 활약했던 티아고는 브라질 우니앙 아그리콜라 바바리엔시 유스 시절 축구선수로 전향한 뒤, 1997년 프로선수로 승격되어 데뷔를 하였다. 이후 중국 무대에 입성한 티아고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선전 핑안(現 선전 FC)에서 활약하였다. 티아고는 2001년 13골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물오른 득점 감각을 보여주었고, 이듬해 2002년에는 절정의 기량으로 16골을 득점하여 득점왕에 올랐다. 다음 시즌에는 팀 동료였던 리이(李毅, Li Yi, 1979.06.20 ~ )와 함께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티아고와 리이는 2003시즌 득점 1위와 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1][2] 중국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티아고는 J리그의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하였지만 부상에 시달리며 리그에서 10경기에 출전해 단 2골을 기록하는 부진을 겪었다.[3] 일본에서 부진으로 티아고는 브라질로 돌아게 되었고, 2006년부터 다시 중국 무대로 복귀하여 상하이 롄청(現 상하이 뤼디 선화[4])과 베이징 궈안을 거쳤다. 그러나 티아고는 과거 선전 시절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베이징 궈안에서 반시즌만에 퇴단하게 되었다. 티아고는 방출된 후 브라질 세리 A의 고이아스로 이적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베이징 궈안으로 2008년 임대 이적하여 복귀하였고, 그 시즌 이장수 감독이 이끄는 베이징 궈안에서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6골을 기록하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4골을 득점을 성공하는 무난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베이징 궈안에서의 임대 기간을 마친 티아고는 브라질 세리 B 소속의 상카에타누로 이적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편집]

2009년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전반기에서의 부진한 성적의 반등이 필요했었다. 또한 기존 공격수들의 빈곤한 득점력[5]을 채워줄 외국인 공격수의 영입도 절실하였다. 이에 따라 산드로 히로시와 함께 티아고를 상카에타누로 부터 6개월 임대 영입하였다. 티아고의 K리그 데뷔는 7월 4일에 있었던 성남 일화와 홈경기에 이루어졌다. 이 경기에서 티아고는 수비 지역에 있던 백지훈의 롱패스를 등으로 살짝 건드려 공의 경로를 바꾸어 상대 수비를 완벽히 속이고 단독 찬스를 만든 뒤, 가볍게 왼발 인사이드로 차 넣어 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성공 시켰다. 데뷔전에서 노련한 플레이로 단숨에 주전으로 도약한 티아고는 8월 1일에 있었던 FC GS와 펼쳐진 홈경기에서도 김대의가 수비 진영에서 길게 찬 롱볼을 가볍게 트래핑 하여 단독 찬스를 만들었고 지체 없이 바로 차 넣어서 팀의 추가골을 성공 시켰다. 그 뒤 리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경남 FC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하였다. 티아고는 2009 하나은행 FA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9 하나은행 FA CUP 4강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경기에서 전반 26분에 선취 득점을 성공 시켜서 팀의 3-0 대승과 결승행을 이끌었었고, 성남 일화와의 결승전에서도 전반전 라돈치치에게 실점하여 패색이 짙던 후반 약 42분에 성남의 밀집 수비 사이에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하여 김태윤으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내었고, 이를 에두가 성공시켜 연장전으로 이끌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승부차기에서는 티아고는 실축하였지만, 티아고의 다음 키커였던 김두현김대의가 승부차기에 성공하여 수원은 4-2로 승리하여 FA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티아고는 승부차기에서 실축은 하였지만 후반 종료 직전 과감한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활약으로 수원의 FA컵 우승에 기여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시즌 종료 후 티아고는 적지 않은 나이에 완전 이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으며, 2010년에는 티아고와 함께 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었다.


K리그 이후[편집]

수원에서 임대 복귀한 티아고는 2010년에 중국 무대의 첫 팀이었던 선전 FC[6]로 이적하였지만, 부진하여 하부리그에 있었던 청두 톈청으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티아고는 8경기에 나서서 6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으로 청두의 중국 슈퍼리그 승격에 이바지하였다. 청두의 승격에 기여한 티아고는 과거 산프레체 히로시마 시절 코치였던 마사나가 카게야마(影山 雅永, 1967.05.23 ~ )의 부름을 받고 그가 감독으로 있었던 J리그 디비전2의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 주 득점원으로 활약하였으나 다시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2012년 퇴단하였다. 2013년에 브라질로 돌아간 티아고는 인디펜덴테 지 리메이라에 소속된 것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194cm의 장신인 것에 비해 포스트 플레이는 썩 좋지 못했다. 대신 유연한 움직임과 볼 컨트롤이 인상적인 선수였다.


에피소드[편집]

  • 브라질 국적의 선수이지만, 브라질에서 보내온 시간보다 동아시아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내왔었다.
  • 리웨이펑과는 커리어 상 3번이나 같은 팀에 소속되었다고 한다. 티아고가 선전 핑안에 입단한 시절, 리웨이펑도 선저 소속으로 첫 인연을 시작한 것에 이어서 2006년 티아고가 상하이 롄청으로 이적하였을 당시 리웨이펑은 상하이 선화 소속이었는데 이 시기에 두 팀은 부분 통합을 진행하여 롄청에서 15명, 선화에서 15명으로 스쿼드로 시즌을 진행하였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또 리웨이펑과 재회하였고, 후에는 200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다시 만났다. 실제로도 차범근 감독이 여름 이적기간 동안에 영입할 노련한 외국인 공격수를 찾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을 때 리웨이펑은 차 감독에게 티아고를 적극 추천해주게 되었다. 그 후 티아고를 수원으로 불러들여 테스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차 감독도 티아고의 기량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그렇게 티아고의 임대 영입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 리그 4골과 FA컵에서 1골을 기록하여 총 5득점을 하여서 공격수로 좋은 기록은 아니었지만,[7] 공간을 만들려 노력하는 플레이로 나름 기여도가 좋았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당시 수원의 공격수들의 저조한 플레이와 둔한 움직임으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시간이 자난 시점에서도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 잦은 부상으로 현역 시절 커리어가 꾸준하지 못한 모습이다. 과거 중국에서도 부상 문제가 많았다고 하며, 첫 일본 무대에 입성하였을 때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후에 마지막 일본 무대였던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도 초반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다가 다시 부상으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고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되어서 컨디션 회복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97 ~ 2000 브라질 União Barbarense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세리 A2
2000 ~ 2003 중국 선전 핑앙 → 선전 젠리바오 중국 축구 갑급 A리그
2004 일본 산프레체 히로시마 J리그
2005 브라질 Atlético Paranaense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2006 중국 상하이 롄청 중국 슈퍼리그
2007 중국 베이징 궈안 중국 슈퍼리그
2007 브라질 Goiás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 2008 중국 베이징 궈안 중국 슈퍼리그 임대
2009 브라질 São Caetano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B
→ 2009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임대
2010 중국 선전 FC 중국 슈퍼리그
→ 2010 중국 청두 톈청 중국 갑급리그 임대
2011 ~ 2012 일본 파지아노 오카야마 J2리그
2013 브라질 Independente de Limeira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세리 A3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 리웨이펑 (중국에서부터 한국에서까지 인연이 깊은 동료)
  • 에두 (2009년 티아고와 호흡을 맞춘 공격수)


참고[편집]

  1. 티아고는 선전에서 마지막 시즌인 2003년에는 13골을 득점하여 득점부문 2위에 올랐으며, 동료였던 리이는 14골로 득점왕이 되었다. 하지만 팀 성적은 4위라는 아쉬움을 남겼었다. 티아고는 선전에서 총 88경기에 출전하여 44골을 득점하였다.
  2. 해당 시즌은 중국 축구 갑급 A리그 마지막 시즌이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로 재출범 하였다.
  3. 리그 이외에 J리그컵에서 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 일왕컵에서 1경기의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4. 2006년부터 부분 통합이 시작되었고, 2007년 상하이 선화와 완전 합병되었다.
  5. 서동현은 전반기 내내 무득점 행진에 시달리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하태균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으며, 2008년 우승을 이끌었던 에두 역시 전반기 동안 리그에서만 2득점에 그쳤다. 더욱이 이 선수들이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로 경기에 못 나오는 경우도 빈번해져서 2009시즌에는 이상호배기종 마저 본래의 포지션이 아닌 스트라이커 자리에 기용하는 전술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이러한 변화도 효과적이지 못하였다.
  6. 팀 명칭이 상당히 자주 바뀌는 팀이다. 그러한 이유로 티아고의 데뷔 시절 팀명하고 다르다. 또한 선전 FC라는 팀명도 변경되어 2014년까지 선전 홍쫜으로 불리다가 다시 2015년부터 선전 FC로 불리는 중이다.. 이 팀을 가장 편하게 부르는 방법은 선전 루비로 부르는 것이 제일 편한 방법일 것이다.
  7.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득점 기록이지만, 문제는 에두를 제외한 다른 공격진들의 극심한 부진으로 김두현과 함께 수원 내 2009시즌 득점 공동 2위에 오르게 되었다. 2009년 수원이 얼마나 득점력이 빈곤하였는지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