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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제철 돌고래]] || 1983 ||3 ||0|| 0||0 ||0||0 | | | [[포항제철 돌고래]] || 1983 ||3 ||0|| 0||0 ||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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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owspan=9|[[현대 호랑이]] || 1984 ||26 ||1|| 0||2 ||1||0 | + | |rowspan=9| [[현대 호랑이]] || 1984 ||26 ||1|| 0||2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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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도 !! 팀 !! 경력 | | ! 연도 !! 팀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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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5 ~ 1997 ||rowspan="2"| [[수원 삼성 블루윙즈]] || 트레이너 | + | | 1995 ~ 1997 ||rowspan="2"| {{팀/수원}} || 트레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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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2001 || 코치 | | | 1998 ~ 2001 ||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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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2004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코치 | | | 2003 ~ 2004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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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5 ~ 2010 || [[전북 현대 모터스]] || 감독 | + | | 2005 ~ 2010 || {{팀/전북}} ||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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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2013.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감독 | | | 2012 ~ 2013.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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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팀 !! 연도 !! 승 !! 무 !! 패 !! 리그 !! 컵대회 !! FA컵 !! ACL | | !소속팀 !! 연도 !! 승 !! 무 !! 패 !! 리그 !! 컵대회 !! FA컵 !! AC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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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owspan=11|[[전북 현대 모터스]] || 2005<ref>[[조윤환]] 감독이 05시즌 중반에 경질된뒤 잔여경기를 지휘해 얻은 성적이다.</ref> || 2 || 3 || 7 || 12위|| 12위 ||bgcolor=gold| '''우승''' || | + | |rowspan=11| {{팀/전북}} || 2005<ref>[[조윤환]] 감독이 05시즌 중반에 경질된뒤 잔여경기를 지휘해 얻은 성적이다.</ref> || 2 || 3 || 7 || 12위|| 12위 ||bgcolor=gold| '''우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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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11 || 13 || 15 || 11위 || 6위 ||16강 || bgcolor=gold| '''우승''' | | | 2006 || 11 || 13 || 15 || 11위 || 6위 ||16강 || bgcolor=gold|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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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1984년, 신생 프로 축구팀이었던 [[현대 호랑이]]에 창단 멤버로 참가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한 플레이 덕분인지 [[현대 호랑이]]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현대에서 9시즌 동안 활약하며 1986년 프로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프로축구 베스트 11에 4회 선정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청소년대표 경력 하나 없는 그에게 늦은 나이인 28세에 국가대표팀으로 처음 선발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88 서울 올림픽, 90 이탈리아 월드컵 등 큰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1992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ref>이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갓 현대 감독으로 데뷔한 차범근과 고참 선수인 최강희 사이의 나이차는 6살밖에 나지않아 차범근 감독의 선수단 장악에 있어 최강희가 껄끄러운 상대였음이 당연했을듯. (관련기사 참고 :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16832])</ref> | | 그리고 1984년, 신생 프로 축구팀이었던 [[현대 호랑이]]에 창단 멤버로 참가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한 플레이 덕분인지 [[현대 호랑이]]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현대에서 9시즌 동안 활약하며 1986년 프로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프로축구 베스트 11에 4회 선정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청소년대표 경력 하나 없는 그에게 늦은 나이인 28세에 국가대표팀으로 처음 선발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88 서울 올림픽, 90 이탈리아 월드컵 등 큰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1992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ref>이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갓 현대 감독으로 데뷔한 차범근과 고참 선수인 최강희 사이의 나이차는 6살밖에 나지않아 차범근 감독의 선수단 장악에 있어 최강희가 껄끄러운 상대였음이 당연했을듯. (관련기사 참고 :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16832])</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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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 == | | ==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 == |
| 스피드가 빠른데다 활동량도 엄청나고 게다가 체력까지 좋았다고 한다. 직접 본 입장이 아니라.. 그의 플레이를 보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90분 동안 쉬지않고 찰거머리처럼 수비하러 뛰어다니는 선수였다고 한다. 얼마나 끈질기게 수비를 했던지 최강희 선수가 막고 있는 측면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 | 스피드가 빠른데다 활동량도 엄청나고 게다가 체력까지 좋았다고 한다. 직접 본 입장이 아니라.. 그의 플레이를 보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90분 동안 쉬지않고 찰거머리처럼 수비하러 뛰어다니는 선수였다고 한다. 얼마나 끈질기게 수비를 했던지 최강희 선수가 막고 있는 측면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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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이후 == | | == 은퇴 이후 == |
− | 은퇴 후 독일, 잉글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였다. 선수 시절의 스승이었던 [[김호]]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호]] 감독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원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간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복귀하였다.<ref>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았는데 대표팀 코치 생활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듯, 이후에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국대는 성격상 안맡는다고 밝힘.</ref> 그 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 + | 은퇴 후 독일, 잉글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였다. 선수 시절의 스승이었던 [[김호]]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호]] 감독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원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간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복귀하였다.<ref>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았는데 대표팀 코치 생활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듯, 이후에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국가대표는 성격상 안맡는다고 밝힘.</ref> 그 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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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2005년 여름 [[조윤환]]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전격 선임되었다. 몇년간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전북이었기 때문에 그의 감독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5년 '팀도 아니었던' 전북을 이끌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더니, 2006년에는 얇은 선수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러번의 역전승을 통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을 데려다가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찾게 해주는 '''재활공장장'''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설득해 클하우스 건립을 이끌어 내는 등 축구 외적인 면에서 팀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 받아 2011 시즌이 끝난 뒤에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위기에 빠진 국가대표 팀 구원을 위해 부임<DEL>납치</DEL>했다. | + | 그리고 2005년 여름 [[조윤환]]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전격 선임되었다. 몇년간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전북이었기 때문에 그의 감독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5년 '팀도 아니었던' 전북을 이끌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더니, 2006년에는 얇은 선수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러번의 역전승을 통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을 데려다가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찾게 해주는 '''재활공장장'''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설득해 클하우스 건립을 이끌어 내는 등 축구 외적인 면에서 팀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 받아 2011 시즌이 끝난 뒤에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위기에 빠진 국가대표 팀 구원을 위해 부임<DEL>납치</DEL>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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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본인도 계속 고사했던 국가대표 팀으로의 부임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떠나면서 전북은 수석코치였던 [[이흥실]]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고 팀을 이끌게 했으나 2011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국가대표로 부임한 최강희 본인은 기자회견에서 '''시한부 감독임'''을 못박음으로써 레임덕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국가대표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국가대표팀에서는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경기력이나 성적면에서도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다. 소방수로 투입되어 어떻게든 월드컵 본선무대에 올려놓기는 했으나, 이란과의 3차 예선 최종전에서 이란의 감독 [[케이로스]]에게 주먹감자를 먹는 등 많은 흑역사를 만들었다. | | 문제는 본인도 계속 고사했던 국가대표 팀으로의 부임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떠나면서 전북은 수석코치였던 [[이흥실]]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고 팀을 이끌게 했으나 2011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국가대표로 부임한 최강희 본인은 기자회견에서 '''시한부 감독임'''을 못박음으로써 레임덕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국가대표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국가대표팀에서는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경기력이나 성적면에서도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다. 소방수로 투입되어 어떻게든 월드컵 본선무대에 올려놓기는 했으나, 이란과의 3차 예선 최종전에서 이란의 감독 [[케이로스]]에게 주먹감자를 먹는 등 많은 흑역사를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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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갖고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으로 복귀할 계획이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원정 경기를 관람한 이후 곧바로 팀으로 복귀해 감독직에 올랐다. 계약기간은 3년 6개월로 2016년까지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후 팀을 장악하면서 연승으로 이끄는 등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듯 했으나 [[울산 현대]] 원정에서 결정적인 오심으로 패배한 이후 동력이 상당히 약해져 결국 3위로 리그를 마무리 했으며, [[하나은행 FA컵 2013|2013 FA컵]] 결승에서도 안방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는 등 뒷심이 많이 약한 시즌을 보냈다. | |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갖고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으로 복귀할 계획이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원정 경기를 관람한 이후 곧바로 팀으로 복귀해 감독직에 올랐다. 계약기간은 3년 6개월로 2016년까지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후 팀을 장악하면서 연승으로 이끄는 등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듯 했으나 [[울산 현대]] 원정에서 결정적인 오심으로 패배한 이후 동력이 상당히 약해져 결국 3위로 리그를 마무리 했으며, [[하나은행 FA컵 2013|2013 FA컵]] 결승에서도 안방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는 등 뒷심이 많이 약한 시즌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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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시즌 역시 초반에 많이 삐걱댔고, 야심차게 영입한 [[김남일]]도 심각한 부진과 부상으로 왜 영입했냐는 소리를 들었고,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무참히 깨지고 탈락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후 월드컵 휴식기를 통해 서아시아에서 군 입대를 위해 돌아온 [[신형민]]을 영입하는 등의 재정비를 거친 후 팀 조직력을 끌어올리더니, 18라운드에 1위에 오르고 그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후반기에 9경기 연속 무실점 연승을 거두는 등 이전 닥공과는 색다른 팀컬러를 보여줬다. | + | 2014 시즌 역시 초반에 많이 삐걱댔고, 야심차게 영입한 [[김남일]]도 심각한 부진과 부상으로 왜 영입했냐는 소리를 들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무참히 깨지고 탈락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후 월드컵 휴식기를 통해 [[알 자지라]]에서 군 입대를 위해 돌아온 [[신형민]]을 영입하는 등의 재정비를 거친 후 팀 조직력을 끌어올리더니, 18라운드부터 1위에 오르고 그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후반기에 9경기 연속 무실점 연승을 거두는 등 이전 닥공과는 색다른 팀컬러를 보여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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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시즌은 2014 시즌을 이끌었던 주축인 [[이승기]], [[정혁]], [[신형민]]이 한꺼번에 입대하고, [[김남일]]마저 일본으로 이적했음에도 별다른 미드필더 보강이 없고 오히려 [[권경원]]을 이적시키는 등, [[에두]], [[에닝요]], [[유창현]], [[김형일]] 등 빅 네임들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점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이 나왔다. 이에 아예 공격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구성해 상대를 공격으로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시즌 극초반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먹히는 듯 했으나 [[가시와 레이솔]] 원정 패배, [[전남 드래곤즈]] 원정패배 등에서 부하가 걸린 허리가 무너졌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등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불안감도 투톱이 계속해서 출장하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 했으나 리그 21라운드 쯤에 [[에두]]가 [[허베이 화샤싱푸]]에서의 거액의 오퍼를 받고 이적하고, [[에닝요]]가 계약해지하면서 팀 전체 그림이 흔들렸다. 이에 발빠르게 [[루이스3|루이스]], [[이근호]], [[우르코 베라]]를 영입하면서 진화에 나섰고, 위태위태하면서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면서 [[K리그]] 최다 리그 우승 감독에 올랐다. 위기관리 능력과 동기부여 능력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 + | 2015 시즌은 2014 시즌을 이끌었던 주축인 [[이승기]], [[정혁]], [[신형민]]이 한꺼번에 입대하고, [[김남일]]마저 일본으로 이적했음에도 별다른 미드필더 보강이 없고 오히려 [[권경원]]을 이적시키는 등, [[에두]], [[에닝요]], [[유창현]], [[김형일]] 등 빅 네임들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적이지 못한 스쿼드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이 나왔다. 이에 아예 공격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구성해 상대를 공격으로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시즌 극초반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먹히는 듯 했으나 [[가시와 레이솔]] 원정 패배, [[전남 드래곤즈]] 원정패배 등에서 부하가 걸린 허리가 무너졌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 불안감도 투톱이 계속해서 출장하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 했으나 리그 21라운드 쯤에 [[에두]]가 [[허베이 화샤싱푸]]에서의 거액의 오퍼를 받고 이적하고, [[에닝요]]가 계약해지하면서 팀 전체 그림이 흔들렸다. 이에 발빠르게 [[루이스3|루이스]], [[이근호]], [[우르코 베라]]를 영입하면서 진화에 나섰고, 위태위태하면서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면서 [[K리그]] 최다 리그 우승 감독에 올랐다. 위기관리 능력과 동기부여 능력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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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시즌 전라북도청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 출정식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와 2020년까지 추가 4년 계약을 맺었다.
| + | 2016년 2월 14일 전라북도청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시즌 출정식에서 국내 최고 대우로 [[전북 현대 모터스]]와 2020년까지 추가 4년 계약을 맺었다. 'VISION 2020 프로젝트'의 중심축으로써 선수단 운영 뿐 아니라 유소년 육성 등의 클럽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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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시절 측면에서 뛰어서 그런지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상당히 중시 하는듯. <del>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윙덕후다.</del> | | * 선수시절 측면에서 뛰어서 그런지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상당히 중시 하는듯. <del>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윙덕후다.</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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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년 말 [[장윤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공격에 관해서는 별다른 지시가 없고, 수비에 관해서 대인마크를 중심으로 수비 시의 간격조정에 대해서 선수단 전체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del>그래서 2013년 중반 이후 공격 전개가 그렇게 답답했...</del> | + | * 2015년 말 [[장윤호]]의 인터뷰<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17&aid=0002692196&redirect=true 제2의 이재성 꿈꾸는 전북의 미래, 장윤호]</ref>에 따르면 공격에 관해서는 별다른 지시가 없고, 수비에 관해서 대인마크를 중심으로 수비 시의 간격조정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지도한다고 한다. <del>그래서 2013년 중반 이후 공격 전개가 그렇게 답답했...</d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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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 == | | == 에피소드 == |
− | * 선수시절 취미는 놀랍게도 만화 그리기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고 있는지는 불명. 여기에 게임도 즐겨하시는듯. 스타크래프트 주종족은 테란이라고 한다. | + | * 선수시절 취미는 놀랍게도 만화 그리기였다고 한다. 선수시절에는 곧잘 캐리커쳐를 그렸다는데 지금도 그리고 있는지는 불명. <del>이 때문에 차범근 감독과의 관계가 하나 더 드러나기도...</del> 여기에 게임도 즐겨하시는듯. 스타크래프트 주종족은 테란이라고 한다. 성향은 '닥공'을 외치는 축구와 달리 '우주방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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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놀라운 역전승으로 아시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한 최강희 감독을 두고 중국 언론에서는 '''[[강희대제]]'''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 * 2006년 놀라운 역전승으로 아시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한 최강희 감독을 두고 중국 언론에서는 '''[[강희대제]]'''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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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광희]] (이름이 비슷한 선수) | | * [[최광희]] (이름이 비슷한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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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차범근]]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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