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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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감독 최강희

최강희(1959년 4월 12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이다.

선수 생활 은퇴 후 1993년부터 현재까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의 지휘봉을 잡아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2012년부터 2013년 6월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였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강희
  • 출생일 : 1959년 4월 12일
  • 유스클럽 : 우신고등학교 졸업
  • 신체 : 174cm / 68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대표
1988년 아시안컵 대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대표
1988년 ~ 199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3경기 출장)
  • 수상 경력
1985년 K리그 대상 모범상 수상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대회 MVP[1]
1985년, 1986년, 1991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수상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선수 기록 (실업 포함)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돌핀스 포항제철 돌핀스 1983 3 0 0 0 0 0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1984 26 1 0 2 1 0
1985 21 0 0 2 0 0
1986 31 1 0 3 1 0
1987 25 0 3 6 3 0
1988 20 1 0 2 1 0
1989 9 0 0 0 1 0
1990 13 1 2 3 2 1
1991 37 5 5 4 2 0
1992 20 6 0 0 1 0
통산 (K리그) - 205 15 10 22 12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9월 23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경력
1995 ~ 1997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트레이너
1998 ~ 2001 코치
2003 ~ 200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코치
2005 ~ 2010 Teamlogo jbfc2018.png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2012 ~ 2013.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2013.6 ~ 현 재 Teamlogo jbfc2018.png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 주요 수상 경력
연도 경력
2005년 전북 현대 모터스 대한민국 FA컵 우승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09년 K리그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1년 K리그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4년 K리그 클래식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5년 K리그 클래식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6년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컵대회 FA컵 ACL
Teamlogo jbfc2018.png 전북 현대 모터스 2005[2] 2 3 7 12위 12위 우승
2006 11 13 15 11위 6위 16강 우승
2007 12 12 12 8위 조별예선 16강 8강
2008 17 8 14 4위 4강 8강 -
2009 19 8 7 우승 조별예선 4강 -
2010 22 7 9 3위 준우승 8강 8강
2011 20 9 4 우승 8강 16강 준우승
2013 12 6 6 3위 - 준우승 -
2014 24 9 5 우승 - 4강 16강
2015 22 7 9 우승 - 16강 8강
2016
통산 (K리그) - 161 82 89 K리그 및 K리그 클래식 우승 4회,
FA컵 우승 1회, ACL 우승 1회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5년 11월 12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서울 용두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중학교때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축구를 3년간 쉬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국대회도 우승하는등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신고 시절 술, 담배를 하면서 좋지못한 모습을 보여 대학진학에 실패하였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였다고 한다.[3] 하지만 최강희 영입을 위해 한일은행이 우신고 선수를 9명이나 받아줬던걸 보면 실력 하나는 확실했던듯.


프로 생활[편집]

1979년 고졸 후, 실업팀인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여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병역의무 수행을 위해 육군 충의팀에 3년간 복무하였으며, 전역 후 1983년 한일은행 축구단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당시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이었던 김호를 만나 본격적으로 축구에 눈을 뜨게 된다. 83년 한일은행을 비롯한 여러 실업축구팀들은 실업축구대회 일정이 없는 기간동안, 수퍼리그에 참가하는 프로팀들에게 선수를 임대시키고는 했는데 최강희 선수는 포항제철에 임대되어 3경기 출장하기도 하였다. 수퍼리그에서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한일은행에서의 최선수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며 1983년 팀을 실업선수권 정상에 등극시키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84년, 신생 프로 축구팀이었던 현대 호랑이에 창단 멤버로 참가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한 플레이 덕분인지 현대 호랑이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현대에서 9시즌 동안 활약하며 1986년 프로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프로축구 베스트 11에 4회 선정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청소년대표 경력 하나 없는 그에게 늦은 나이인 28세에 국가대표팀으로 처음 선발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88 서울 올림픽, 90 이탈리아 월드컵 등 큰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1992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4]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편집]

스피드가 빠른데다 활동량도 엄청나고 게다가 체력까지 좋았다고 한다. 직접 본 입장이 아니라.. 그의 플레이를 보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90분 동안 쉬지않고 찰거머리처럼 수비하러 뛰어다니는 선수였다고 한다. 얼마나 끈질기게 수비를 했던지 최강희 선수가 막고 있는 측면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 후 독일, 잉글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였다. 선수 시절의 스승이었던 김호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호 감독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원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간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복귀하였다.[5] 그 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2005년 여름 조윤환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전격 선임되었다. 몇년간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전북이었기 때문에 그의 감독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5년 '팀도 아니었던' 전북을 이끌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더니, 2006년에는 얇은 선수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러번의 역전승을 통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을 데려다가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찾게 해주는 재활공장장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설득해 클하우스 건립을 이끌어 내는 등 축구 외적인 면에서 팀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 받아 2011 시즌이 끝난 뒤에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위기에 빠진 국가대표 팀 구원을 위해 부임납치했다.

문제는 본인도 계속 고사했던 국가대표 팀으로의 부임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떠나면서 전북은 수석코치였던 이흥실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하고 팀을 이끌게 했으나 2011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국가대표로 부임한 최강희 본인은 기자회견에서 시한부 감독임을 못박음으로써 레임덕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국가대표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국가대표팀에서는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경기력이나 성적면에서도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다. 소방수로 투입되어 어떻게든 월드컵 본선무대에 올려놓기는 했으나, 이란과의 3차 예선 최종전에서 이란의 감독 케이로스에게 주먹감자를 먹는 등 많은 흑역사를 만들었다.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갖고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으로 복귀할 계획이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원정 경기를 관람한 이후 곧바로 팀으로 복귀해 감독직에 올랐다. 계약기간은 3년 6개월로 2016년까지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후 팀을 장악하면서 연승으로 이끄는 등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듯 했으나 울산 현대 원정에서 결정적인 오심으로 패배한 이후 동력이 상당히 약해져 결국 3위로 리그를 마무리 했으며, 2013 FA컵 결승에서도 안방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는 등 뒷심이 많이 약한 시즌을 보냈다.

2014 시즌 역시 초반에 많이 삐걱댔고, 야심차게 영입한 김남일도 심각한 부진과 부상으로 왜 영입했냐는 소리를 들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무참히 깨지고 탈락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후 월드컵 휴식기를 통해 알 자지라에서 군 입대를 위해 돌아온 신형민을 영입하는 등의 재정비를 거친 후 팀 조직력을 끌어올리더니, 18라운드부터 1위에 오르고 그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후반기에 9경기 연속 무실점 연승을 거두는 등 이전 닥공과는 색다른 팀컬러를 보여줬다.

2015 시즌은 2014 시즌을 이끌었던 주축인 이승기, 정혁, 신형민이 한꺼번에 입대하고, 김남일마저 일본으로 이적했음에도 별다른 미드필더 보강이 없고 오히려 권경원을 이적시키는 등, 에두, 에닝요, 유창현, 김형일 등 빅 네임들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적이지 못한 스쿼드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이 나왔다. 이에 아예 공격적으로 4-4-2 포메이션을 구성해 상대를 공격으로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시즌 극초반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먹히는 듯 했으나 가시와 레이솔 원정 패배, 전남 드래곤즈 원정패배 등에서 부하가 걸린 허리가 무너졌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 불안감도 투톱이 계속해서 출장하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 했으나 리그 21라운드 쯤에 에두허베이 화샤싱푸에서의 거액의 오퍼를 받고 이적하고, 에닝요가 계약해지하면서 팀 전체 그림이 흔들렸다. 이에 발빠르게 루이스, 이근호, 우르코 베라를 영입하면서 진화에 나섰고, 위태위태하면서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면서 K리그 최다 리그 우승 감독에 올랐다. 위기관리 능력과 동기부여 능력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16년 2월 14일 전라북도청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시즌 출정식에서 국내 최고 대우로 전북 현대 모터스와 2020년까지 추가 4년 계약을 맺었다. 'VISION 2020 프로젝트'의 중심축으로써 선수단 운영 뿐 아니라 유소년 육성 등의 클럽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감독 스타일[편집]

  • 닥치고 공격. 수비불안의 리스크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격전술로 일관. 3장의 교체카드는 거의 모든경기에 늘 3명의 공격수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지금처럼 스쿼드가 좋지 않은 시절에는 전형적인 카운터 전술이 많았다. 빠른 윙백이나 윙포를 이용해서 카운터를 노리는 경기가 많았다. 뭐 지금은 미들장악부터 시작하고 닥공하지만;;
  • 선수시절 측면에서 뛰어서 그런지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상당히 중시 하는듯.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윙덕후다.
  • 2015년 말 장윤호의 인터뷰[6]에 따르면 공격에 관해서는 별다른 지시가 없고, 수비에 관해서 대인마크를 중심으로 수비 시의 간격조정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지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2013년 중반 이후 공격 전개가 그렇게 답답했...


에피소드[편집]

  • 선수시절 취미는 놀랍게도 만화 그리기였다고 한다. 선수시절에는 곧잘 캐리커쳐를 그렸다는데 지금도 그리고 있는지는 불명. 이 때문에 차범근 감독과의 관계가 하나 더 드러나기도... 여기에 게임도 즐겨하시는듯. 스타크래프트 주종족은 테란이라고 한다. 성향은 '닥공'을 외치는 축구와 달리 '우주방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 2006년 놀라운 역전승으로 아시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한 최강희 감독을 두고 중국 언론에서는 강희대제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또다른 별명은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연습구장과 숙소가 있는 완주군 봉동읍의 이름을 딴 봉동이장이다. 이유는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스스럼 없이 대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 여서 그런듯 하다. 글 쓸때 본인을 이장이라고 자꾸 하는걸보면 이 별명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다.
  • 경기장에서는 골을 넣든 먹든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유명하다.[7] 선수들 긴장시키려고 그런다는데 과연. 하지만 경기장에서의 언제나 굳은 표정과 달리 인터뷰 등에서는 상당히 재치있는 달변가이다.
  • 여담으로 절대 (더이상) 늙지않는 동안의 소유자. 현역 선수시절 얼굴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있다. 옆의 사진을 보라. 1990년에 찍은 사진이다. ㄷㄷㄷ..


경력[편집]

  • 1980 ~ 1982 : 충의 (육군) / 실업축구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K리그 컵대회 MVP라 생각하면된다.
  2. 조윤환 감독이 05시즌 중반에 경질된뒤 잔여경기를 지휘해 얻은 성적이다.
  3. 이후 1987년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으면서 최강희 씨는 술, 담배를 일절 끊고 축구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이후 1988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4. 이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갓 현대 감독으로 데뷔한 차범근과 고참 선수인 최강희 사이의 나이차는 6살밖에 나지않아 차범근 감독의 선수단 장악에 있어 최강희가 껄끄러운 상대였음이 당연했을듯. (관련기사 참고 : [1])
  5. 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았는데 대표팀 코치 생활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듯, 이후에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국가대표는 성격상 안맡는다고 밝힘.
  6. 제2의 이재성 꿈꾸는 전북의 미래, 장윤호
  7. 일명 차봉남이라고... 가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