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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 | : 1998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
| :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표 | | :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표 |
− | :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대표 | + | : [[2011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
| : 2008년 ~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 : 2008년 ~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A매치]] 통산 54경기 출전 5득점)''' |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A매치]] 통산 54경기 출전 5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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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소년 생활 == | | == 유소년 생활 == |
− | 태성중학교, [[이천실고]] (현 이천제일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경희대 1학년 재학 시절인 1998년, 당시 경희대 감독이었던 [[박창선]] 씨의 부름을 받고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이동국]], [[김은중]], [[노병준]], [[정용훈]], [[설기현]] 등의 프로 무대와 대학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고, 2001년 제3회 동아시아 대회에서 대학팀으로 구성된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천수]], [[백영철]], 그리고 경희대 시절 동료 공격수인 [[정성훈]]과 함께 공격진에 발탁되었으나 서브 멤버에 그치고 말았다. | + | 태성중학교, [[이천실고]] (현 이천제일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경희대 1학년 재학 시절인 1998년, 당시 경희대 감독이었던 [[박창선]] 씨의 부름을 받아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이동국]], [[김은중]], [[노병준]], [[정용훈]], [[설기현]] 등의 프로 무대와 대학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고, 2001년 제3회 동아시아 대회에서 대학팀으로 구성된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천수]], [[백영철]], 그리고 경희대 시절 동료 공격수인 [[정성훈]]과 함께 공격진에 발탁되었으나 서브 멤버에 그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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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 생활 == | | == 프로 생활 == |
| === 안양에서 프로 데뷔와 수비수로 보직 변경 === | | === 안양에서 프로 데뷔와 수비수로 보직 변경 === |
− | 2002년 [[김치곤]], [[우진석]] 등의 고교 졸업 및 대졸 선수와 함께 1억 7000만 원의 계약금의 조건으로 [[안양 LG 치타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94327 안양 LG, 중학중퇴생과 계약]</ref> 입단 첫해에는 유소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공격수로 기용되어 [[대전 시티즌]]과 경기에서 [[이영표]]의 도움을 받아 데뷔골에 넣고, 이후 경기에서 [[뚜따]]의 득점을 돕는 모습으로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기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교체로 출전하거나 2군 리그에서 주포로 활동하면서 안양의 2002년 2군 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0015854 2002 프로축구 2군리그, 안양 우승]</ref> 이듬해 2003년부터 당시 안양의 사령탑인 [[조광래]] 감독의 권유로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기에 이르렀고, 등번호도 입단 첫해 배정받았던 7번에서 20번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출전할 것을 알렸으나, 전반기 내내 출전하지 못하였다가 7월부터 정규 주전으로 출전하며 시즌 18경기에 출전하면서 수비수로의 가능성을 알렸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이정수 선수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마는데, 소속팀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이전]]을 강행한 2004년, [[조광래]] 감독은 신인 [[이정열]]과 브라질 출신 노장 수비수 [[쏘우자]]를 중용하였고,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동하였던 [[박정석]]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점차 리저브 멤버로 밀려나는 양상이 되어 버렸고, 5월 두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 + | 2002년 [[김치곤]], [[우진석]] 등의 고교 졸업 및 대졸 선수와 함께 1억 7000만 원의 계약금의 조건으로 [[안양 LG 치타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94327 안양 LG, 중학중퇴생과 계약]</ref> 입단 첫해에는 유소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공격수로 기용되어 [[대전 시티즌]]과 경기에서 [[이영표]]의 도움을 받아 데뷔골에 넣고, 이후 경기에서 [[뚜따]]의 득점을 돕는 모습으로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기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교체로 출전하거나 2군 리그에서 주포로 활동하면서 안양의 2002년 2군 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0015854 2002 프로축구 2군리그, 안양 우승]</ref> 이듬해 2003년부터 당시 안양의 사령탑인 [[조광래]] 감독의 권유로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기에 이르렀고, 등번호도 입단 첫해 배정받았던 7번에서 20번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출전할 것을 알렸으나, 전반기 내내 출전하지 못하였다가 7월부터 정규 주전으로 18경기에 출전하면서 수비수로의 가능성을 알렸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이정수 선수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마는데, 소속팀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이전]]을 강행한 2004년, [[조광래]] 감독은 신인 [[이정열]]과 브라질 출신 노장 수비수 [[쏘우자]]를 중용하였고,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동하였던 [[박정석]]이 두각을 나타내자 이 선수는 5월에 교체로 단 두 경기 출전하는 것에 그치고 말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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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과 수비수로 성장 === | | ===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과 수비수로 성장 === |
− | 완전히 주전 전력에서 제외된 이 선수는 2004년 6월을 끝으로 [[FC GS]]를 떠나 [[베르너 로란트]]<ref>로란트 감독은 2004년 8월을 끝으로 개인사의 이유로 자진 사임. 이후 인천은 [[장외룡]]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ref> 감독이 이끄는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인천에 입단한 이 선수는 불성실하고 거만한 행동을 보이고 입단 반년 만에 [[J리그]]의 우라와 레즈로 떠난 [[알파이]]의 공백을 메우는 대체 선수 격으로 입단하였으나, [[알파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였고, 전반기 동안 꼴찌를 기록하며 흔들리던 인천의 후반기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선수는 창단 멤버로 2004년 인천에 입단한 [[임중용]]과 [[김학철3|김학철]] 등의 주전 수비수들과 좋은 조화를 보였는데, 두 선수가 빠른 공격수를 상대하는 데 약점을 보인 것을 적극적이고 빠른 플레이가 가능했던 이 선수가 이를 보완한 것이었다. 게다가 다듬어지지 않아 안양 시절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수비 능력도 [[장외룡]] 감독의 조련 아래에서 빠르게 보완되며 무섭게 성장하는 수비 유망주가 되었고,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음에도 출전할 때마다 수준급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2005년 인천 스리백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하며 시즌 준우승의 돌풍의 주역이 되었고, 대표급 수비수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 + | 완전히 주전 전력에서 제외된 이 선수는 2004년 6월을 끝으로 [[FC GS]]를 떠나 [[베르너 로란트]]<ref>로란트 감독은 2004년 8월을 끝으로 개인사의 이유로 자진 사임. 이후 인천은 [[장외룡]]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ref> 감독이 이끄는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인천에 입단한 이 선수는 불성실하고 거만한 행동을 보이고 입단 반년 만에 [[J리그]]의 우라와 레즈로 떠난 [[알파이]]의 공백을 메우는 대체 선수 격으로 입단하였으나, [[알파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였고, 전반기 동안 꼴찌를 기록하며 흔들리던 인천의 후반기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선수는 창단 멤버로 2004년 인천에 입단한 [[임중용]]과 [[김학철3|김학철]] 등의 주전 수비수들과 좋은 조화를 보였는데, 두 선수가 빠른 공격수를 상대하는 데 약점을 보인 것을 적극적이고 빠른 플레이가 가능했던 이 선수가 이를 보완한 것이었다. 게다가 다듬어지지 않아 안양 시절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수비 능력도 [[장외룡]] 감독의 조련 아래에서 빠르게 보완되며 무섭게 성장하는 수비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음에도 출전할 때마다 수준급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인천의 짠물 스리백의 주축으로 시즌 준우승의 돌풍의 주역이 되었고, 대표급 수비수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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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으로 이적과 K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상 === | | === 수원으로 이적과 K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상 === |
− | 인천의 수비 핵으로 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2005년 부진을 보였던 [[차범근]]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연결되었고, 인천을 떠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25191 수원 삼성, 수비수 이정수 영입]</ref> 수원 이적 후, 이 선수는 [[차범근]]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에 주전 수비수로 [[마토]], [[곽희주]] 등의 선수와 출격하였으나, 수원의 2005년 부진은 2006년 전반기까지 이어지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 수원이 대대적인 공격 리빌딩 작업을 진행하면서 경기력이 급상승하였고, 전력이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비수인 이 선수의 활약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듬해 2007년에 전반기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으나, 2007년 5월 [[울산 현대]]와 경기를 끝으로 장기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면서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ref>이 시기에 나온 것이 [[계란정수]]이다.</ref> 이후 2008년부터 부상에서 회복하였고, 포지션을 좌측 측면 수비수로 변경하여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한 수비를 보여주며 전반기 무패와 단 2실점만 내주는 막강한 수비라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였고, 여름 이후 수원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시달릴 때 홀로 부상 없이 중앙 수비수로 다시 자리를 옮겨 활약하였다. 수원은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이정수 선수와 [[마토]], [[곽희주]] 등의 선수가 시즌 끝 무렵에 전력에 복귀하면서 정상 전력을 회복하였고, 챔피언 결정전까지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가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에서 수원의 통산 4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이 선수 본인도 [[K리그]] 데뷔 이래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 + | 인천의 수비 핵으로 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2005년 부진을 보였던 [[차범근]]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연결되면서 인천을 떠나게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25191 수원 삼성, 수비수 이정수 영입]</ref> 수원 이적 후, 이 선수는 [[차범근]]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에 주전 수비수로 [[마토]], [[곽희주]] 등의 선수와 출격하였으나, 수원의 2005년 부진은 2006년 전반기까지 이어지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 수원이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을 진행하면서 후반기에 경기력이 급상승하였고, 전력이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비수인 이 선수의 활약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듬해 2007년에도 전반기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으나, 2007년 5월 [[울산 현대]]와 경기를 끝으로 장기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면서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ref>이 시기에 나온 것이 [[계란정수]]이다.</ref> 부상에서 회복한 2008년에는 포지션을 좌측 측면 수비수로 변경하여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한 수비를 보여주며 전반기 무패와 단 2실점만 내주는 막강한 수비라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였고, 여름 이후 수원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시달릴 때 중앙 수비로 복귀하여 [[최창용]] 등의 어린 수비수들을 이끌어 부진했던 수원의 여름을 지키기도 하였다. 이후 이 선수는 부상에서 회복한 [[마토]], [[곽희주]] 등의 가세로 힘을 얻어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에서 수원의 통산 4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이 선수 본인도 [[K리그]] 데뷔 이래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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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과 카타르로 해외진출 === | | === 일본과 카타르로 해외진출 === |
− | 2008년 수원의 우승 멤버로 맹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시즌 종료와 함께 해외진출을 모색하였고, [[J리그 디비전1]]의 교토 상가에 이적하였다. 교토에 입성한 이 선수는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수비와 공격 모두 알짜 활약을 보이며 이듬해 [[J리그 디비전1]]에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팀 가시마 엔틀러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전반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동시에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가를 최고로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활약은 중동까지 전해졌고, 이 선수의 활약을 지켜본 카타르의 알사드 SC가 이 선수의 이적을 추진하면서 가시마에서 반년 활약하고 카타르 무대에 입성하였다. 알사드에 입단한 이 선수는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팀에 적응을 마치고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알사드 입단 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는데,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맞대결에서 감독 지시와 무관하게 무단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해 거취가 불분명해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동료 선수들의 비호와 구단에서 이 행동을 이해하여서 무사히 이 사건을 넘겼고, 최대의 사건을 끝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해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기도 하였다. 이후 주전 선수로 알사드에서 활약한 이 선수는 [[라울 곤살레스]]와 [[사비 에르난데스]] 등 세계적인 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활약하였으나, 2016년 1월부로 팀에서 리빌딩을 계획하며 [[아시아 쿼터]] 선수를 영입에 착수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선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하였으나,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알사드에서 퇴단하였다.<ref>은퇴 권유와 관련해서 불화설은 없었다고 한다. 구단과 이 선수 모두 서로를 이해해주는 모습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ref> | + | 2008년 수원의 우승 멤버로 맹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시즌 종료와 함께 해외진출을 추진해 [[J리그 디비전1]]의 교토 상가로 이적하였다. 교토에 입성한 이 선수는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수비와 공격 모두 알짜 활약을 보였고, 이 활약으로 이듬해 [[J리그 디비전1]]에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팀 가시마 엔틀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가시마에서 전반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는 동시에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가를 최고로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활약은 중동까지 전해졌고, 이 선수의 활약을 지켜본 카타르의 알사드 SC가 이 선수의 이적을 추진하면서 가시마에서 반년 활약하고 카타르 무대에 입성하였다. 알사드에 입단한 이 선수는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알사드 입단 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는데,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맞대결에서 감독 지시와 무관하게 무단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하여 거취가 불분명해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동료 선수들의 비호와 구단에서 이 행동을 이해하여서 무사히 이 사건을 넘겼고, 최대의 사건을 끝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해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기도 하였다. 이후 주전 선수로 알사드에서 활약한 이 선수는 [[라울 곤살레스]]와 [[사비 에르난데스]] 등 세계적인 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활약하였으나, 2016년 1월부로 팀에서 리빌딩을 계획하며 [[아시아 쿼터]] 선수를 영입에 착수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선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하였으나,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알사드에서 퇴단하였다.<ref>은퇴 권유와 관련해서 불화설은 없었다고 한다. 구단과 이 선수 모두 서로를 이해해주는 모습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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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정팀 수원으로 복귀 === | | === 친정팀 수원으로 복귀 === |
− | 알사드에서 퇴단한 이정수 선수는 친정팀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이에 [[인천 유나이티드]]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과거 인터뷰에서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언급하였기에 이 선수의 수원 복귀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ref>[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13002205813§ion_code=20&cp=se&gomb=1 이정수, “수원에서 현역 은퇴하고 싶다”]</ref> 그러나 퇴단 후 한 달이 넘게 거취가 결정되지 않아 국내에 복귀하지 않고 [[중국 슈퍼리그]]에 입단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이에 수원팬들은 [[에두]]에 이어 이 선수도 놓치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으나, 2016년 2월 29일 수원으로 입단을 확정 지어 8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하였고, 수년째 이어온 제정 감축으로 어려웠던 수원에 복귀하는 선택을 해 팬들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며 금의환향하였다.<ref>여러 팀이 이정수 선수의 영입전에 가세하면서 몸값이 3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수원 구단 측도 이정수 선수의 결정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ref><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3030100022610001251&servicedate=20160302 돌아온 이정수 '의리 사나이' 막전막후 사연은?]</ref> 수원으로 복귀한 이 선수는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1라운드 [[성남 FC]]와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복귀전을 치렀으나, 팀 패배로 아쉬운 복귀전을 치르고 말았고, 이후 수원은 극심한 부진 속에 노련한 수비를 보여줬지만, 점차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 | 알사드에서 퇴단한 이정수 선수는 친정팀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는데, 이에 [[인천 유나이티드]]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과거 인터뷰에서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언급하였기에 이 선수의 수원 복귀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ref>[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13002205813§ion_code=20&cp=se&gomb=1 이정수, “수원에서 현역 은퇴하고 싶다”]</ref> 그러나 퇴단 후 한 달이 넘게 거취가 결정되지 않아 국내에 복귀하지 않고 [[중국 슈퍼리그]]에 입단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이에 수원팬들은 [[에두]]에 이어 이 선수도 놓치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으나, 2016년 2월 29일 수원으로 입단을 확정 지어 8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를 확정지었다. 수년째 이어온 제정 감축으로 어려웠던 수원에 복귀를 선택한 이 선수는 팬들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며 금의환향하였다.<ref>여러 팀이 이정수 선수의 영입전에 가세하면서 몸값이 3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수원 구단 측도 이정수 선수의 결정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ref><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3030100022610001251&servicedate=20160302 돌아온 이정수 '의리 사나이' 막전막후 사연은?]</ref> 수원으로 복귀한 이 선수는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1라운드 [[성남 FC]]와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8년 만의 복귀전을 치렀지만 0-2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 수원은 극심한 부진 속에 노련한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점차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험난한 복귀 시즌을 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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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레이 스타일 == | | == 플레이 스타일 == |
− | 전성기 시절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공중볼에 강점을 보인 바 있으며, 스피드가 좋은 편으로 상대를 끈질기게 압박하는 것에 능수능란하였다. 여기에 태클 능력도 준수해 컨디션이 좋으며 그야말로 "벽"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런 스피드에서 강점은 많이 사라졌지만, 노련하게 위치를 잡아 볼만 빼내는 수비를 주로 보여주고 있으며, 수원 복귀 후로는 스피드가 좋은 [[구자룡]]과 함께 출전하면 호흡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 | 전성기 시절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공중볼에 강점을 보인 바 있으며, 스피드가 좋은 편으로 상대를 끈질기게 압박하는 것에 능수능란하였다. 여기에 태클 능력도 준수해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그야말로 "벽"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런 스피드에서 강점은 많이 사라졌지만, 노련하게 위치를 잡아 볼만 빼내는 수비를 주로 보여주고 있으며 수원 복귀한 2016년에는 이정수 선수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구자룡]]과 특히 좋은 호흡을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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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피소드 == | | == 에피소드 == |
− | * [[부천 SK]]의 [[아고스]]에게 침 세례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아고스]]는 [[이상용]] 주심에게 즉각 퇴장을 명령받았는데, 이에 [[아고스]]는 이 선수가 먼저 몸싸움 과정에서 발로 가격하고 침을 뱉어 맞대응한 것이라 항변하였지만, [[이상용1|이상용]] 주심이 목격한 것이 [[아고스]]가 침을 뱉는것 뿐이라 아고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11724 부천 아고스 침뱉어 퇴장, '한국판 엘 하지 디우프?']</ref> | + | * [[부천 SK]]의 [[아고스]]에게 침 세례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아고스]]는 [[이상용1|이상용]] 주심에게 즉각 퇴장을 명령받았는데, 이에 [[아고스]]는 이 선수가 먼저 몸싸움 과정에서 발로 가격하고 침을 뱉어 맞대응한 것이라 항변하였지만, [[이상용1|이상용]] 주심이 목격한 것이 [[아고스]]가 침을 뱉는것 뿐이라 아고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11724 부천 아고스 침뱉어 퇴장, '한국판 엘 하지 디우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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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맞대결에서 [[최성환]]의 부상으로 [[염기훈]]이 내보낸 공을 넘겨 받은 팀 동료 [[마마두 니앙]]이 소유권을 수원에게 주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추가골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팀 동료들과 언쟁 후, 감독의 교체 사인도 없었는데 무단으로 경기에서 퇴장해 수원팬들에게는 찬사를, 소속팀 입장에선 논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정수 선수 퇴장 후, 감정이 격해진 관중이 난입해 가격당하는 대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양측 선수들은 자제력을 잃고 싸움판을 벌이며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고, 이성을 잃은 [[게인리히]], [[스테보]], [[고종수]] 코치 등이 알사드 선수들을 폭행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정수 선수는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로 동료의 비매너 득점에 수원에 한 골 내주자고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퇴장했다고 밝혔고, 자신도 알사드에서 거취가 어찌 될 지 모른다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하였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10190100152540013248&servicedate=20111019 수원-알사드 난투극, 이정수 끝까지 페어플레이 주장]</ref><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260&aid=0000000413 퇴출 각오하고 동료에게 분노한 이정수, 왜?]</ref><ref>다행인 것은 알사드의 구단주가 이를 이해해줬고, 동료들이 이정수 선수를 적극 옹호하면서 카타르 기자들에게서 보호해주며 더 좋은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카타르에서 롱런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ref> | + | *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나온 이정수 선수의 무단 퇴장 사건은 [[최성환]]의 부상으로 [[염기훈]]이 내보낸 공을 부상 치료 후 넘겨 받은 팀 동료 [[마마두 니앙]]이 소유권을 수원에게 주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추가골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이 선수는 동료들의 비신사적 행위를 말하며 수원에게 득점을 내주자고 언쟁하였으나,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경기장에서 퇴장하고 말았던 것으로 수원팬들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 소속팀 알사드에선 방출 위기설까지 나오고 말았다. 아수라장이 된 그 경기에서는 감정이 격해진 관중이 난입해 알사드의 골키퍼에게 가격당하는 대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양측 선수들은 자제력을 잃고 싸움판을 벌이고 말았고, 여기에 이성을 잃은 [[게인리히]], [[스테보]], [[고종수]] 코치 등이 알사드 선수들을 폭행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정수 선수는 경기장을 나오면서 인터뷰로 자신도 알사드에서 거취가 어찌 될 지 모른다는 인터뷰를 남기며 착잡한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10190100152540013248&servicedate=20111019 수원-알사드 난투극, 이정수 끝까지 페어플레이 주장]</ref><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260&aid=0000000413 퇴출 각오하고 동료에게 분노한 이정수, 왜?]</ref><ref>다행인 것은 알사드의 구단주가 이를 이해해줬고, 동료들이 이정수 선수를 적극 옹호하고 카타르 기자들로부터 보호해주는 행동으로 더 좋은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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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사드에 입단한 뒤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며 카타르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들의 적응을 돕는 역할을 자청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거의 현지인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전통복장을 입고 다니거나 식생활도 카타르인들과 비슷하게 먹을 정도였다고 하며, 동료들과 사이도 좋아 이 선수를 두고 "이브라힘 리"라는 아랍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에 이 선수도 이 애칭이 마음에 들어 유니폼 마킹을 "Ibrahim Lee"로 달고 출전하기도 하였다. | | * 알사드에 입단한 뒤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며 카타르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들의 적응을 돕는 역할을 자청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거의 현지인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전통복장을 입고 다니거나 식생활도 카타르인들과 비슷하게 먹을 정도였다고 하며, 동료들과 사이도 좋아 이 선수를 두고 "이브라힘 리"라는 아랍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에 이 선수도 이 애칭이 마음에 들어 유니폼 마킹을 "Ibrahim Lee"로 달고 출전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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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년 5월 배우 한태윤 씨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이후 2016년 6월 첫 딸을 출산하였는데,<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30100180670012517&servicedate=20160622 수원 베테랑수비수 이정수 '딸바보' 아빠됐다]</ref> 카타르의 수드인 도하를 딴 "이도하"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정수 선수의 카타르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으며, 아이의 성별이 결정 나기도 전에 이미 이름을 도하로 결정하였다고 한다.<ref>[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434123&cloc= 카타르 개척자 이정수 ”내 딸 이름은 이도하”]</ref> | + | * 2011년 5월 배우 한태윤 씨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이후 2016년 6월 첫 딸을 출산하였는데,<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30100180670012517&servicedate=20160622 수원 베테랑수비수 이정수 '딸바보' 아빠됐다]</ref>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를 딴 "이도하"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정수 선수의 카타르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아이의 성별이 결정나기 전부터 이미 이름을 도하로 정하였다고 한다.<ref>[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434123&cloc= 카타르 개척자 이정수 ”내 딸 이름은 이도하”]</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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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입단 후 등번호를 알사드에서 배정받았던 40번을 선택하였다. 이유는 이정수 선수가 40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와 카타르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 * 수원 입단 후 등번호를 알사드에서 배정받았던 40번을 선택하였다. 이유는 이정수 선수가 40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와 카타르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