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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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이정수
ⓒPhoto by @_13mm

이정수 (1980년 1월 8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2년부터 2017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던 중앙 수비수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이정수
  • 출생일 : 1980년 1월 8일
  • 신체 : 184cm / 74kg
  • 국가대표 경력
1998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대표
2011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2008년 ~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A매치 통산 54경기 출전 5득점)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 2경기 출전)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2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K리그 11 12 1 2 0 1
2003 18 1 1 0 2 0
2004 FC GS FC GS 2 2 0 0 0 0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 20 1 0 0 9 0
2005 17 3 1 1 1 0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36 7 2 0 5 0
2007 10 2 0 0 6 0
2008 24 0 1 1 7 0
2016 클래식 27 5 3 0 9 0
2017 3 1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168 34 9 4 39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5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7.07 ~ 현재 대한민국 동국대학교 코치


유소년 생활[편집]

태성중학교, 이천실고 (현 이천제일고),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경희대 1학년 재학 시절인 1998년, 당시 경희대 감독이었던 박창선 씨의 부름을 받아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이동국, 김은중, 노병준, 정용훈, 설기현 등의 프로 무대와 대학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고, 2001년 제3회 동아시아 대회에서 대학팀으로 구성된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천수, 백영철, 그리고 경희대 시절 동료 공격수인 정성훈과 함께 공격진에 발탁되었으나 서브 멤버에 그치고 말았다.


프로 생활[편집]

안양에서 프로 데뷔와 수비수로 보직 변경[편집]

2002년 김치곤, 우진석 등의 고교 졸업 및 대졸 선수와 함께 1억 7000만 원의 계약금의 조건으로 안양 LG 치타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였다.[1] 입단 첫해에는 유소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공격수로 기용되어 대전 시티즌과 경기에서 이영표의 도움을 받아 데뷔골에 넣고, 이후 경기에서 뚜따의 득점을 돕는 모습으로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기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교체로 출전하거나 2군 리그에서 주포로 활동하면서 안양의 2002년 2군 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2] 이듬해 2003년부터 당시 안양의 사령탑인 조광래 감독의 권유로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기에 이르렀고, 등번호도 입단 첫해 배정받았던 7번에서 20번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출전할 것을 알렸으나, 전반기 내내 출전하지 못하였다가 7월부터 정규 주전으로 18경기에 출전하면서 수비수로의 가능성을 알렸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이정수 선수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마는데, 소속팀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이전을 강행한 2004년, 조광래 감독은 신인 이정열과 브라질 출신 노장 수비수 쏘우자를 중용하였고,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동하였던 박정석이 두각을 나타내자 이 선수는 5월에 교체로 단 두 경기 출전하는 것에 그치고 말게 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과 수비수로 성장[편집]

완전히 주전 전력에서 제외된 이 선수는 2004년 6월을 끝으로 FC GS를 떠나 베르너 로란트[3] 감독이 이끄는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인천에 입단한 이 선수는 불성실하고 거만한 행동을 보이고 입단 반년 만에 J리그의 우라와 레즈로 떠난 알파이의 공백을 메우는 대체 선수 격으로 입단하였으나, 알파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였고, 전반기 동안 꼴찌를 기록하며 흔들리던 인천의 후반기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선수는 창단 멤버로 2004년 인천에 입단한 임중용김학철 등의 주전 수비수들과 좋은 조화를 보였는데, 두 선수가 빠른 공격수를 상대하는 데 약점을 보인 것을 적극적이고 빠른 플레이가 가능했던 이 선수가 이를 보완한 것이었다.[4] 게다가 다듬어지지 않아 안양 시절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수비 능력도 장외룡 감독의 조련 아래에서 빠르게 보완되며 무섭게 성장하는 수비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음에도 출전할 때마다 수준급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인천의 짠물 스리백의 주축으로 시즌 준우승의 돌풍의 주역이 되었고, 대표급 수비수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수원으로 이적과 K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상[편집]

인천의 수비 핵으로 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2005년 부진을 보였던 차범근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연결되면서 인천을 떠나게 되었다.[5] 수원 이적 후, 이 선수는 차범근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에 주전 수비수로 마토, 곽희주 등의 선수와 출격하였으나, 수원의 2005년 부진은 2006년 전반기까지 이어지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 수원이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을 진행하면서 후반기에 경기력이 급상승하였고, 전력이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비수인 이 선수의 활약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듬해 2007년에도 전반기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으나, 2007년 5월 울산 현대와 경기를 끝으로 장기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면서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6] 부상에서 회복한 2008년에는 포지션을 좌측 측면 수비수로 변경하여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한 수비를 보여주며 전반기 무패와 단 2실점만 내주는 막강한 수비라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였고, 여름 이후 수원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시달릴 때 중앙 수비로 복귀하여 최창용 등의 어린 수비수들을 이끌어 부진했던 수원의 여름을 지키기도 하였다. 이후 이 선수는 부상에서 회복한 마토, 곽희주 등의 가세로 힘을 얻어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에서 수원의 통산 4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이 선수 본인도 K리그 데뷔 이래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일본과 카타르로 해외진출[편집]

2008년 수원의 우승 멤버로 맹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시즌 종료와 함께 해외진출을 추진해 J리그 디비전1의 교토 상가로 이적하였다. 교토에 입성한 이 선수는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수비와 공격 모두 알짜 활약을 보였고, 이 활약으로 이듬해 J리그 디비전1에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팀 가시마 엔틀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가시마에서 전반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는 동시에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가를 최고로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활약은 중동까지 전해졌고, 이 선수의 활약을 지켜본 카타르의 알사드 SC가 이 선수의 이적을 추진하면서 가시마에서 반년 활약하고 카타르 무대에 입성하였다. 알사드에 입단한 이 선수는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알사드 입단 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는데,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맞대결에서 감독 지시와 무관하게 무단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하여 거취가 불분명해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동료 선수들의 비호와 구단에서 이 행동을 이해하여서 무사히 이 사건을 넘겼고, 최대의 사건을 끝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해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기도 하였다. 이후 주전 선수로 알사드에서 활약한 이 선수는 라울 곤살레스사비 에르난데스 등 세계적인 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활약하였으나, 2016년 1월부로 팀에서 리빌딩을 계획하며 아시아 쿼터 선수를 영입에 착수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선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하였으나,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알사드에서 퇴단하였다.[7]


친정팀 수원으로 복귀[편집]

알사드에서 퇴단한 이정수 선수는 친정팀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는데, 이에 인천 유나이티드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과거 인터뷰에서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언급하였기에 이 선수의 수원 복귀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8] 그러나 퇴단 후 한 달이 넘게 거취가 결정되지 않아 국내에 복귀하지 않고 중국 슈퍼리그에 입단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이에 수원팬들은 에두에 이어 이 선수도 놓치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으나, 2016년 2월 29일 수원으로 입단을 확정 지어 8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를 확정지었다. 수년째 이어온 제정 감축으로 어려웠던 수원에 복귀를 선택한 이 선수는 팬들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며 금의환향하였다.[9][10] 수원으로 복귀한 이 선수는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1라운드 성남 FC와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8년 만의 복귀전을 치렀지만 0-2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 수원은 극심한 부진 속에 노련한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점차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험난한 복귀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이는 후반기 넘어서까지 이어져 간혹 공격 본능으로 득점에 성공하고 중요 경기에서 노련한 수비로 빛을 보기도 했지만, 동반 부진하는 수비진 앞에선 이정수 선수도 큰 힘을 쓰지 못하고 말았다. 그나마 시즌 초반부터 호흡이 좋고 제 역할을 다 하는 구자룡 선수나 큰 기대를 받지 못했으나 본 기량 이상을 보여준 곽광선 선수와 함께 가장 최선의 수비진으로 불리는 것이 위안거리. 하위 스플릿 전·후로는 서정원 감독이 백스리 전형으로 수비를 구성하고 스피드에서 불리한 조건을 지닌 이정수 선수를 중앙 커맨더로 수비 부담은 줄여주게 되면서 노련한 수비력을 보였고, 이 기세로 수원의 통산 4번째 FA컵 우승까지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11]


시즌 중 은퇴 선언[편집]

그러나 2017년 수원은 지난해 겪었던 부진을 다시 겪는 상황이 되며 6라운드까지 5무 1패인 무숭 행진을 리그에서 이어가고 말았다. 이정수 선수는 초반에 주전으로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일이 잦았지게 되었고, 컨디션도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후 4월 16일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6라운드 광주 FC와 경기에서는 출전하지는 않았으나, 경기 종료 후에 이물질을 던지며 이 선수에게 욕설을 내뱉는 극성 팬과 충돌하고 말았고, 이틀 뒤인 4월 18일에 돌연 퇴단을 선언하면서 거취가 불분명해 졌다. 이정수 선수는 K리그 이외의 다른 팀으로 이적은 없다고 선언한 상황이라 은퇴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후 양측은 며칠간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정수 선수가 은퇴를 굳게 마음먹었던 상황이었기에 수원 구단도 2017년 4월 21일로 이를 수용하기로 하였다.[12] 이에 대해 수원 팬들의 반응은 과격한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갑작스런 은퇴에 대한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2008년 9월 10일,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對 북한과의 경기를 출장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A매치 데뷔 이후 국대 주전 수비수로 안착해 남아공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도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0년 6월 12일에 열린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B조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전반 7분 기성용의 프리킥을 골로 연결시키며 대한민국의 본선 무대 첫골을 신고하였다.[13] 이후 2010년 6월 23일에 열린 B조 3차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도 0:1로 끌려가는 가운데 기성용의 프리킥을 헤딩골로 연결시켜 본선 무대 2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이처럼 본선에서만 2골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행에 기여한 이정수는 이후로도 대표팀에 붙박이로 발탁되고 있는 중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는 것이 유력시 되었으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참가가 불발되었고 이정수 선수 대신에 김창수 선수가 와일드카드가 발탁되기도 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성기 시절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공중볼에 강점을 보인 바 있으며, 스피드가 좋은 편으로 상대를 끈질기게 압박하는 것에 능수능란하였다. 여기에 태클 능력도 준수해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그야말로 "벽"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런 스피드에서 강점은 많이 사라졌지만, 노련하게 위치를 잡아 볼만 빼내는 수비를 주로 보여주고 있으며 수원 복귀한 2016년에는 이정수 선수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구자룡과 특히 좋은 호흡을 보이기도 하였다. 전반적으로 전성기 시절 처럼 터프하고 빠른 수비는 기대하기 어렵고, 손을 자주 써 위험 지역에서 반칙을 내주는 등의 불안 요소가 있지만, 기본 수비 능력에 있어서는 2016년 수원 수비진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이다.


지도자 생활[편집]

2017년 7월부터 동국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안효연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부천 SK아고스에게 침 세례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아고스이상용 주심에게 즉각 퇴장을 명령받았는데, 이에 아고스는 이 선수가 먼저 몸싸움 과정에서 발로 가격하고 침을 뱉어 맞대응한 것이라 항변하였지만, 이상용 주심이 목격한 것이 아고스가 침을 뱉는것 뿐이라 아고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14]
  •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나온 이정수 선수의 무단 퇴장 사건은 최성환의 부상으로 염기훈이 내보낸 공을 부상 치료 후 넘겨 받은 팀 동료 마마두 니앙이 소유권을 수원에게 주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추가골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이 선수는 동료들의 비신사적 행위를 말하며 수원에게 득점을 내주자고 언쟁하였으나,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경기장에서 퇴장하고 말았던 것으로 수원팬들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 소속팀 알사드에선 방출 위기설까지 나오고 말았다. 아수라장이 된 그 경기에서는 감정이 격해진 관중이 난입해 알사드의 골키퍼에게 가격당하는 대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양측 선수들은 자제력을 잃고 싸움판을 벌이고 말았고, 여기에 이성을 잃은 게인리히, 스테보, 고종수 코치 등이 알사드 선수들을 폭행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정수 선수는 경기장을 나오면서 인터뷰로 자신도 알사드에서 거취가 어찌 될 지 모른다는 인터뷰를 남기며 착잡한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다.[15][16][17]
  • 알사드에 입단한 뒤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며 카타르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들의 적응을 돕는 역할을 자청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거의 현지인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전통복장을 입고 다니거나 식생활도 카타르인들과 비슷하게 먹을 정도였다고 하며, 동료들과 사이도 좋아 이 선수를 두고 "이브라힘 리"라는 아랍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에 이 선수도 이 애칭이 마음에 들어 유니폼 마킹을 "Ibrahim Lee"로 달고 출전하기도 하였다.
  • 2011년 5월 배우 한태윤 씨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이후 2016년 6월 첫 딸을 출산하였는데,[18]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를 딴 "이도하"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정수 선수의 카타르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아이의 성별이 결정나기 전부터 이미 이름을 도하로 정하였다고 한다.[19]
  • 수원 입단 후 등번호를 알사드에서 배정받았던 40번을 선택하였다. 이유는 이정수 선수가 40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와 카타르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낚시광으로도 유명하다. 카타르 시절에도 개인 요트에서 낚시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며, 자신이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유명한 낚시꾼이 되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 이정수 선수는 2016년 악의적 기사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발단은 여름에 이정수 선수가 부상으로 전력에 이탈하게 되면서 휴가를 받아 가족 여행을 간 것이었는데, 이를 두고 부상이 없음에도 거짓으로 휴가를 받아냈다는 기사의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는 그 유명한 A·B·C 파동으로 "A"로 거론된 선수가 이정수 선수.[20] 이후 밝혀진 바로는, 부상은 사실이었고 이후 원정 경기까지 찾아가 경기를 관람하고 휴식기에 휴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2016년 첫 딸을 출산하고 휴가도 없이 지낸 것을 고려해 보면 못 갈 휴가도 아니었던 것이었다. 한동안 이정수 선수는 이에 대해 침묵하다가 FA컵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 짓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사의 악의적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섭섭함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2.01 ~ 2004.01 안양 LG 치타스 안양 LG 치타스 K리그
2004.02 ~ 2004.06 FC GS FC GS K리그
2004.07 ~ 2005.12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2006.01 ~ 2008.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09.01 ~ 2009.12 일본 교토 상가 FC J리그 디비전1
2010.01 ~ 2010.07 일본 가시마 앤틀러스 J리그 디비전1
2010.08 ~ 2016.01 카타르 알사드 SC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6.02 ~ 2017.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안양 LG, 중학중퇴생과 계약
  2. 2002 프로축구 2군리그, 안양 우승
  3. 로란트 감독은 2004년 8월을 끝으로 개인사의 이유로 자진 사임. 이후 인천은 장외룡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4. 다만, 김학철 선수는 빠른 수비수로 명성을 알린 선수였다. 하지만 노장 반열에 오르면서 장점인 스피드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5. 수원 삼성, 수비수 이정수 영입
  6. 이 시기에 나온 것이 계란정수이다.
  7. 은퇴 권유와 관련해서 불화설은 없었다고 한다. 구단과 이 선수 모두 서로를 이해해주는 모습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8. 이정수, “수원에서 현역 은퇴하고 싶다”
  9. 여러 팀이 이정수 선수의 영입전에 가세하면서 몸값이 3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수원 구단 측도 이정수 선수의 결정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10. 돌아온 이정수 '의리 사나이' 막전막후 사연은?
  11.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는 것이 과인이 아닐 정도로 주역에서 역적이 될 뻔 했다. 이정수 선수는 1차전에 놀라운 수비 능력으로 데얀을 말 그대로 꽁꽁 묶어버리는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2차전에서 전반전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좋은 흐름의 맥을 끊어 놓았기 때문. 그나마 이정수 선수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다카하기 역시 이정수 선수가 퇴장을 당한지 10분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마찬가지로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해 균형(?)을 이룬 것이었다.
  12. 수원삼성블루윙즈, 이정수 선수 은퇴 의사 수용
  13. 이 골은 역대 월드컵 본선에서 대한민국이 기록한 골 중 가장 최단 시간만의 득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14. 부천 아고스 침뱉어 퇴장, '한국판 엘 하지 디우프?'
  15. 수원-알사드 난투극, 이정수 끝까지 페어플레이 주장
  16. 퇴출 각오하고 동료에게 분노한 이정수, 왜?
  17. 다행인 것은 알사드의 구단주가 이를 이해해줬고, 동료들이 이정수 선수를 적극 옹호하고 카타르 기자들로부터 보호해주는 행동으로 더 좋은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18. 수원 베테랑수비수 이정수 '딸바보' 아빠됐다
  19. 카타르 개척자 이정수 ”내 딸 이름은 이도하”
  20. B의 경우는 팀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심 없이 이미 다른 곳을 알아보는 선수와 C의 경우는 지나친 음주를 지적한 것이었다. 기사가 올려졌을 당시에는 이를 두고 성토하는 팬들이 많았고, 팀 성적도 곤두박칠치다 못해 강등권에 허덕이고 있을 때라 기사의 파장은 상당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정수 선수의 경우 악의성이 돋보이고 C의 경우는 "술을 많이 마신다 → 음주운전이라도 할 것 같다"와 같이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B로 지목된 인물은 맹비난을 받았다. 해당 기사가 비판받는 이유는 비약과 악의성이라고 봐야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