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방위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9개월 가량을 방위병으로 나머지 1년 남짓한 기간은 [[상무]]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보낸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강조]] 당시 상무 감독이 힘을 써준 덕분이라고. 상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1992년 [[아시안컵]] 예선전 대표로도 발탁되기도 하였으며<ref>다만 92년 아시안컵 예선은 [[대한축구협회]]의 무리수로 인해, 실업팀과 대학팀 선수로만 구성되었고 덕분에(?) 김동해 선수도 뽑힌 것이었다. 결국 경험미숙을 드러낸 아시안컵 대표팀은 [[태국]]에 지며 본선에도 못올라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ref> 92년 가을 전역 후 원소속팀에 돌아와 곧바로 주전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하지만 93년부터 김선수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ref>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다. 다만 고질적인 불면증 때문에 기복이 있어, 대표팀하고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ref> 결국 95시즌 무렵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96시즌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건, 은퇴를 앞두고 [[김호]] 감독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1년간 수원에서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 처음에는 방위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9개월 가량을 방위병으로 나머지 1년 남짓한 기간은 [[상무]]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보낸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강조]] 당시 상무 감독이 힘을 써준 덕분이라고. 상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1992년 [[아시안컵]] 예선전 대표로도 발탁되기도 하였으며<ref>다만 92년 아시안컵 예선은 [[대한축구협회]]의 무리수로 인해, 실업팀과 대학팀 선수로만 구성되었고 덕분에(?) 김동해 선수도 뽑힌 것이었다. 결국 경험미숙을 드러낸 아시안컵 대표팀은 [[태국]]에 지며 본선에도 못올라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ref> 92년 가을 전역 후 원소속팀에 돌아와 곧바로 주전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하지만 93년부터 김선수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ref>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다. 다만 고질적인 불면증 때문에 기복이 있어, 대표팀하고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ref> 결국 95시즌 무렵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96시즌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건, 은퇴를 앞두고 [[김호]] 감독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1년간 수원에서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