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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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해(1966년 3월 16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동해
  • 출생일 : 1966년 3월 16일
  • 신체 : 178cm / 72kg
  • 국가대표 경력
1988년 88 올림픽대표, 국가대표 B팀
199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럭키금성 황소 럭키금성 황소 1989 23 16 0 2 0 0
1990 8 8 0 0 0 0
LG 치타스 LG 치타스 1992 10 6 0 1 2 0
1993 33 8 4 0 3 0
1994 30 12 2 5 3 0
1995 25 11 3 1 6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 10 3 0 1 2 0
통산 (K리그) - 139 64 9 10 16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7월 4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팀명 직책
태성중학교 코치
태성고등학교
청구고등학교
재현고등학교 감독
2005년 9월 ~ 2006년 경남 FC 코치
2007년 ~ 2008년 대구 FC 코치 → 수석코치
2011년 상주 상무 수석코치
2013년 SK 유나이티드 U-18팀 감독


유소년 생활[편집]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 시문초, 청구중, 청구고등학교를 나왔다. 청구고 시절 故 이수철, 박창현 씨와 함께 활약하였으며 이 때의 활약을 발판삼아 박창현, 노경환 등과 함께 한양대학교로 진학해 활동하였다. 한양대 시절에는 88 올림픽대표팀충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후 한양대를 졸업한 뒤 실업팀과 은행팀들의 제의를 물리치고 프로 행을 결심하게 된다.


K리그[편집]

1989년 드래프트에서 2차선발로 럭키금성 황소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1] 데뷔 첫 해에는 그럭저럭 활약하였지만, 1990시즌 최순호, 조민국 등 쟁쟁한 공격자원이 많았던 탓에 김선수는 후보 멤버로 밀리고 마는 수모를 겪었다.[2] 이후 1991년을 앞두고 김선수는 입대영장이 날아오면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방위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9개월 가량을 방위병으로 나머지 1년 남짓한 기간은 상무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보낸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강조 당시 상무 감독이 힘을 써준 덕분이라고. 상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1992년 아시안컵 예선전 대표로도 발탁되기도 하였으며[3] 92년 가을 전역 후 원소속팀에 돌아와 곧바로 주전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하지만 93년부터 김선수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4] 결국 95시즌 무렵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96시즌 수원 삼성으로 이적한건, 은퇴를 앞두고 김호 감독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1년간 수원에서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지도자 생활[편집]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태성중학교, 태성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모교인 청구고등학교 코치, 재현고등학교 감독을 역임하다 경남 FC 코치로 부임하며 K리그 지도자로 인연을 처음 맺었다. 이후 대구 FC상주 상무에서는 수석코치를 역임하며 K리그 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경력[편집]

  • 1989 ~ 1995 : 럭키금성 황소 → LG 치타스 / K리그
  • 1996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럭금 입단 이전까지는, 한양대학교 축구부 감독 출신인 이회택 씨가 이끄는 포항제철 아톰즈로 입단할 것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차선발에서 포철은 박창현 씨를 지명하였고, 2차선발에서는 럭금보다 포철이 후순위 지명권을 가진터라 럭금이 먼저 김동해 선수를 지명해가버려 김선수의 포철행은 무산되었던바 있다.
  2. 하지만 이 당시 출범한 초대 2군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긴 했다고 한다.
  3. 다만 92년 아시안컵 예선은 대한축구협회의 무리수로 인해, 실업팀과 대학팀 선수로만 구성되었고 덕분에(?) 김동해 선수도 뽑힌 것이었다. 결국 경험미숙을 드러낸 아시안컵 대표팀은 태국에 지며 본선에도 못올라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다. 다만 고질적인 불면증 때문에 기복이 있어, 대표팀하고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