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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해방 직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 때만 해도 포지션은 [[풀백]]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당시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이창석 씨의 권유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대한민국 국가대표 1세대 수문장으로 활약하였다.



== 지도자 생활 ==
1969년 창단한 [[조흥은행 축구단]] 감독을 맡아, 1981년까지 활약하였다. 그러다 1981년 3월 조흥은행 축구단 감독직을 사임한 뒤, 잠시 쉬다가 [[풍생고등학교]]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ref>여기에는 함흥철 씨의 한양공고 후배이자 당시 풍생고 교장이었던 홍사흥 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ref>


== 사망 ==
추석 연휴였던 2000년 9월 11일, 설악산 등반 도증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다.<ref>사고가 난 구간은 용아장성이라 하여, 설악산 등산로 내에서 사고가 빈번하기로 악명이 높은 구간이다. 이후 관리소 측은 해당 등산로를 폐쇄하였지만,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아랑곳않고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관련 기사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11012125611959|설악산사무소 "통제구역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ref> 고인의 장례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뤄졌고 고인의 유언에 따라 경기도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납골당에 모셔진다.


== 에피소드 ==
* 자기 관리에 있어서 매우 철저하여,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과 동일하게 체력 훈련을 수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흥은행 축구단 코치 시절에는 군입대ㆍ퇴장ㆍ부상 등으로 골키퍼들이 경기를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함코치가 선수 등록을 하고 경기를 소화하기도 하였을 정도.. 이 때문인지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 풍채를 자랑했다.

*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하셨다고 한다. [[김정석]] 씨의 회고<ref>[http://tv.naver.com/v/1469850] 영상 6분께부터 얘기가 나온다.</ref>에 따르면 [[차태성]]ㆍ[[최정민]] 씨와 함께 [[1960년 로마 올림픽 출전권 박탈]] 사건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을 정도. 이외에도 흑역사가 있는데, 1971년 12월 3월 [[전국축구선수권]], [[신탁은행]] vs [[조흥은행]] 경기에서 [[이우현]] 주심이 조흥은행의 이철재 감독에게 '욕설 좀 그만 하라'고 항의하자, 옆에 있던 함흥철 코치가 냅다 주먹을 날려 이우현 주심을 실신시키는 대형 사고를 냈던 것이 그것. 이로 인해 함흥철 코치는 2년간 자격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ref>관련 기사 : [http://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7B%22mode%22%3A1%2C%22sort%22%3A0%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10%2C%22keyword%22%3A%22%EC%9D%B4%EC%9A%B0%ED%98%84%22%2C%22status%22%3A%22success%22%2C%22startIndex%22%3A1%2C%22page%22%3A1%2C%22startDate%22%3A%221971-01-01%22%2C%22endDate%22%3A%221971-12-31%22%2C%22selsectionId%22%3A%22107%22%7D]</ref>


== 같이 보기 ==
* [[홍덕영]]


== 참고 ==
<references/>


[[분류:1931년생]][[분류:2000년 사망]][[분류:전설적인 선수]][[분류:실업축구 지도자]][[분류: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지도자]][[분류:학원축구 지도자]][[분류:사망한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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