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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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국가대표 감독 시절
함흥철

함흥철 (1930년 11월 17일 ~ 2000년 9월 11일)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한국축구 1세대 수문장이자 한국프로축구 초대 우승 감독이라는 불멸의 타이틀을 거머쥔 전설.



프로필[편집]

  • 이름 : 함흥철
  • 출생일 : 1930년 11월 17일
  • 사망일 : 2000년 9월 11일
  • 국가대표 경력
1954년 ~ 196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예선ㆍ본선 대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56년 AFC 아시안컵 아시아예선ㆍ본선 대표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60년 로마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60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64년 도쿄 올림픽 아시아예선ㆍ본선 대표
(통산 A매치 55경기 출장 69실점)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선수 생활[편집]

해방 직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 때만 해도 포지션은 풀백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당시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이창석 씨의 권유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1] 이후로는 골키퍼로 활약하였다. 한양공고 재학 도중 6.25 사변이 터지자 군에 입대하였으며, 이후 헌병감실 소속 선수 겸 대한민국 국가대표 1세대 수문장으로 1964년 전반기까지 활동한 뒤, 1964년 도쿄 올림픽 참가를 기점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대한중석에 입사하였다. 대한중석에서도 1967년까지 현역 골키퍼 겸 코치로 활동하였다.


지도자 생활[편집]

1969년 창단한 조흥은행 축구단 코치[2]를 맡아, 1981년까지 활약하였다. 조흥은행 감독을 맡는 와중에도 틈틈히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1972년/74년/78년 3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를 맡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는데.. 1981년 3월 조흥은행 축구단 감독 직을 사임한 뒤, 잠시 쉬다가 풍생고등학교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3] 이후 풍생고를 8개월여간 지도하다, 1982년 2월 할렐루야 프로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4] 1983년 수퍼리그에서 스타 플레이어들을 카리스마 있게 지휘하며 초대 프로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팀 형편이 어려워지는 와중에도 1985시즌까지 할렐루야 지휘봉을 맡아 활동하다, 할렐루야의 아마 전환과 함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98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GK 코치[5]로 부임하여 오연교, 조병득 선수를 지도하였고 1990년에는 유공 코끼리의 2군 감독 겸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여 유대순, 이문영을 지도하는등 활동을 이어가다 이후로는 유공 코끼리 고문,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단장[6] 등을 맡으며 지도자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망[편집]

추석 연휴였던 2000년 9월 11일, 설악산 등반 도증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다.[7] 고인의 장례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뤄졌고 고인의 유언에 따라 경기도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납골당에 모셔진다.


에피소드[편집]

94 월드컵 당시 최인영(우)을 지도하는 함흥철 단장(좌)
  • 자기 관리에 있어서 매우 철저하여,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과 동일하게 체력 훈련을 수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흥은행 축구단 코치 시절에는 군입대ㆍ퇴장ㆍ부상 등으로 경기에 나설 골키퍼가 없는 경우, 함코치가 선수 등록을 하고 경기를 소화하기도 하였을 정도.. 이 때문인지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 풍채를 자랑했다. 당장 옆에 첨부한 사진을 보라. 1994년 당시 월드컵대표팀 단장을 맡으던 시절의 함흥철 씨 모습인데, 최인영 선수와 체구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언뜻봐서는 40대 언저리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 풍채이셨는데, 당시 함흥철 씨의 나이는 65세였다.
  •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하셨다고 한다. 김정석 씨의 회고[8]에 따르면 차태성최정민 씨와 함께 1960년 로마 올림픽 출전권 박탈 사건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을 정도. 이외에도 흑역사가 있는데, 1971년 12월 3월 전국축구선수권, 신탁은행 vs 조흥은행 경기에서 이우현 주심이 조흥은행의 이철재 감독에게 '욕설 좀 그만 하라'고 항의하자, 옆에 있던 함흥철 코치가 냅다 주먹을 날려 이우현 주심을 실신시키는 대형 사고를 냈던 것이 그것. 이로 인해 함흥철 코치는 2년간 자격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9] 하지만 얼마안가 자격 정지 기간이 1년으로 줄어들었고, 이후 국가대표 감독도 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위의 일은 금세 잊혀졌다. 이외에 1991년 6월에는 이상권 주심을 심판실까지 찾아가 구타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10]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이 시점에 정확히 언제인지는 불명확하나, 한양공고 재학 시절이던 1950년께부터 이미 골키퍼로 활동한 기록이 남아있다. 관련기사 : [1]
  2. 당시만 해도 감독은 본사에서 내려보내는 높으신 분이, 코치는 축구인이 맡는 경우가 흔했다. 때문에 함흥철 씨가 사실상 감독직 역할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3. 여기에는 함흥철 씨의 한양공고 후배이자 당시 풍생고 교장이었던 홍사흥 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4. 처음에는 코치로 부임하였으나, 1달여만에 감독으로 승격했다.
  5. 당시에는 골키퍼 전담 코치라 불렸으며, 한국 축구 역사상 첫번째 GK 코치 임명 사례였다.
  6. 이 당시 최인영 선수를 따로 개인 지도해주기도 하셨다. 근데 최선수가 알까기를 범해서 까였으니 안습..
  7. 사고가 난 구간은 용아장성이라 하여, 설악산 등산로 내에서 사고가 빈번하기로 악명이 높은 구간이다. 이후 관리소 측은 해당 등산로를 폐쇄하였지만,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아랑곳않고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관련 기사 : "통제구역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8. [2] 영상 6분께부터 얘기가 나온다.
  9. 관련 기사 : [3]
  10. 관련 기사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