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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산(K리그) || - ||47||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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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선수기록|ID=19980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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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프로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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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소속팀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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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 || rowspan=2| {{팀|포항|1985}} || 선수 겸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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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 ~ 1990? ||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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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시절 ==
== 유소년 시절 ==
대전상고와 [[한양대학교]]를 나온 선수로, 대전상고 3학년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독특한데, 친구가 대전상고 축구부 선수라 잠깐 구경나가서 볼을 차고 놀고있던 김철수씨를 당시 대전상고 감독이었던 [[최은택]] 씨가 보고, 축구부 입단을 권유하면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이후 최은택 감독을 따라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여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전상고와 [[한양대학교]]를 나온 선수로, 대전상고 3학년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독특한데, 친구가 대전상고 축구부 선수라 잠깐 구경나가서 볼을 차고 놀고있던 김씨를 당시 대전상고 감독이었던 [[최은택]] 씨가 보고, 축구부 입단을 권유하면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이후 최은택 감독을 따라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여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던 김철수 선수를 스카우트 한 곳은 [[포항제철]]이었다. 포철의 주축 선수이자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김선수는 1976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자책골]]을 기록한 충격으로, 갑자기 군입대를 선택했고 이후 [[해군 축구단]]<ref>이전 버전에서는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한 것으로 되어있었으나, 해병대 축구단은 1973년 해군 축구단으로 이미 흡수된 상태였기 때문에 해군 축구단이 맞다.</ref>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해군 축구단 감독이었던 [[박세학]] 씨가 이 때 김철수 선수의 재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대학교 4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던 김철수 선수를 스카우트 한 곳은 [[포항제철]]이었다. 포철의 주축 선수이자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김선수는 1976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자책골]]을 기록한 충격으로, 갑자기 군입대를 선택했고 이후 [[해군 축구단]]<ref>이전 버전에서는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한 것으로 되어있었으나, 해병대 축구단은 1973년 해군 축구단으로 이미 흡수된 상태였기 때문에 해군 축구단이 맞다.</ref>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해군 축구단 감독이었던 [[박세학]] 씨가 이 때 김철수 선수의 재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이처럼 군생활을 통해 반전을 기회를 마련한 김선수는 이후 포항제철로 돌아와 꾸준히 활약하였으며, 1983년 포항제철이 [[수퍼리그]]에 참가한 이후에는 주장을 역임하며 포항제철 내 최고참으로서의 역할에 매진하였다. 특히 수비진을 리딩하는 기술이 빼어났다고 하며, 덕분에 1983년에는 32살의 나이로 [[한일정기전]] 국가대표로 발탁, 7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기도 하였다. 이후 1986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으며,<ref>신문 기사 등에는 85시즌 종료 후, [[트레이너]]로 임명되었다고 게재되어있다. 그런데 86시즌에도 김철수 선수의 출장 기록이 있는걸로 봐서는 86시즌은 플레잉코치를 소화한듯.</ref> 선수 생활 종료 후에는 [[포항제철 아톰즈]]의 트레이터, 코치 등으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군생활을 통해 반전을 기회를 마련한 김선수는 이후 포항제철로 돌아와 꾸준히 활약하였으며, 1983년 포항제철이 [[수퍼리그]]에 참가한 이후에는 주장을 역임하며 포항제철 내 최고참으로서의 역할에 매진하였다. 특히 수비진을 리딩하는 기술이 빼어났다고 하며, 덕분에 1983년에는 32살의 나이로 [[한일정기전]] 국가대표로 발탁, 7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기도 하였다. 이후 1986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으며,<ref>신문 기사 등에는 85시즌 종료 후, [[트레이너]]로 임명되었다고 게재되어있다. 그런데 86시즌에도 김철수 선수의 출장 기록이 있는걸로 봐서는 86시즌은 플레잉 코치를 소화한듯.</ref> 선수 생활 종료 후에는 [[포항제철 아톰즈]]의 트레이너, 코치 등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989시즌에는 [[1990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느라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던 [[이회택]] 감독을 대신해 포항제철 축구단을 지휘하기도 했다.<ref>하지만 당시 감독 대행직을 따로 준게 아니라, 포철 코치들이 집단 지도 체제를 구성했던 탓에 제대로 된 리더십 발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바로 직전해 리그 우승팀이었던 포철은 89시즌 6개팀 중 4위에 그쳤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