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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 제 1회 전조선축구대회는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정규대회였기 때문에 공인(?)된 [[심판]]이 경기를 주관한 첫번째 대회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대회 심판은 한국축구 1호심판으로 알려진 [[서병희]] 씨가 맡았으며, 선수들에게는 일본 [[아사히신문|아사히신문사]]에서 제작한 축구규칙을 급히 한역해 나누어주어 규칙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급히 추진되는 통에 혼선이 잦았고, 이게 파울이냐 아니냐로 매경기마다 멱살잡이가 일어났다는 후문. 결국 1회 대회는 결승전도 못해보고 중단되고 말았다. 딴게아니라 규칙 때문에 서로 경기 더러워서 안해먹겠다고 선수단을 철수시켰기 때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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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회 전조선축구대회는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정규대회였기 때문에 공인(?)된 [[심판]]이 경기를 주관한 첫번째 대회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대회 심판은 한국축구 1호심판으로 알려진 [[서병희]] 씨가 맡았으며, 선수들에게는 일본 [[아사히신문|아사히신문사]]에서 제작한 축구규칙을 급히 한역해 나누어주어 규칙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급히 추진되는 통에 혼선이 잦았고, 이게 파울이냐 아니냐로 매경기마다 멱살잡이가 일어났다는 후문. 결국 1회 대회는 결승전도 못해보고 중단되고 말았다. 딴게아니라 규칙 때문에 서로 경기 더러워서 안해먹겠다고 선수단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 중등부 준우승팀인 중앙고보 수비수였던 채만식은 풍자소설가로 유명한 채만식 씨이다. 중앙고보 시절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문학, 스포츠, 예술을 아우르는 팔방미인이었다고
 
*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 중등부 준우승팀인 중앙고보 수비수였던 채만식은 풍자소설가로 유명한 채만식 씨이다. 중앙고보 시절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문학, 스포츠, 예술을 아우르는 팔방미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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