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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왕선재]] 당시 대전 감독은 내부적으로 박건영 선수를 1순위로 지명하자고 점찍어 뒀었다고 말하며 박건영을 예상대로 지명할 수 있었던데 대하여 만족감을 표시한바 있다. 다만 이런 기대감과 별개로 당시 대전의 팀 상황이 매우 좋질 않았다. 2011년 전대미문의 [[K리그 승부조작]] 사태로 대전 선수단 내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고, 이에 박선수도 1군 데뷔 기회를 갖긴 했는데.,  선수단 케미가 박살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기가 이루어질리 만무했고 2011년 7월 9일과 7월 16일 연거푸 박선수가 선발 출장한 경기에서 대전의 '''0:7, 1:7'''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혹독한 1군 데뷔 무대를 가졌던 것.. 결국 이 여파 때문이었는지 2012시즌에도 벤치에만 몇차례 앉았을뿐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였고, 결국 2013년 5월 대전과의 계약을 조기 해지하며 프로 생활을 정리하였다.  
 
[[2011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왕선재]] 당시 대전 감독은 내부적으로 박건영 선수를 1순위로 지명하자고 점찍어 뒀었다고 말하며 박건영을 예상대로 지명할 수 있었던데 대하여 만족감을 표시한바 있다. 다만 이런 기대감과 별개로 당시 대전의 팀 상황이 매우 좋질 않았다. 2011년 전대미문의 [[K리그 승부조작]] 사태로 대전 선수단 내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고, 이에 박선수도 1군 데뷔 기회를 갖긴 했는데.,  선수단 케미가 박살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기가 이루어질리 만무했고 2011년 7월 9일과 7월 16일 연거푸 박선수가 선발 출장한 경기에서 대전의 '''0:7, 1:7'''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혹독한 1군 데뷔 무대를 가졌던 것.. 결국 이 여파 때문이었는지 2012시즌에도 벤치에만 몇차례 앉았을뿐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였고, 결국 2013년 5월 대전과의 계약을 조기 해지하며 프로 생활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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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포항시에서 생활체육 축구팀에서 활동 중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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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포항시 생활체육 축구팀에서 활동 중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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