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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7월 1일 (금) 10:53
백승철(白承哲, 1975년 3월 9일 - )은 [[포항 스틸러스]]에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활약했던 선수다.
의료사고로 선수생활을 일찍 접은 비운의 선수로 잘 알려져있으며 현재 [[운봉공고]] 코치로 재직중이다.
== 유소년 시절 ==
[[영등포공고]]를 거쳐서 영남대에 입학했다. 당시의 영등포공고는 약체팀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고, 대학진학 실패 위기까지 놓였지만, 다행히 지인의 추천으로 영남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포항 스틸러스와의 연습게임을 통해서 기량을 인정받게 되었다.
== 포항 시절 ==
백승철은 영남대를 졸업한 [[1998년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었고, 4순위로 당시 연고구단이었던 포항의 지명을 받게 되었다. 당시 포항에서는 [[포철공고]]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동국]]이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승철은 착실한 훈련을 통해서 공격만을 추구하던 스트라이커에서 열심히 뛰는 스트라이커로 변신, 기량을 쌓아 나갔고, 장기인 정확한 슈팅을 바탕으로 [[박성화]] 감독의 휘호아래 1군 리저브 멤버로 활약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1998년 초에 열린 아디다스컵과 필립모리스컵을 거치면서 2골-2도움으로 팀의 감초 역할을 했던 백승철은 7월부터 시작된 정규리그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7월 18일 [[안양 LG]]와의 개막전과 22일 [[울산 현대]]와의 2차전에서 연속골을 터트렸고, 전북과의 5차전에서도 1골을 추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마침 1998 프랑스월드컵이 끝난 뒤 불어 닥친 엄청난 축구열기와 함께 백승철은 팀 동료 이동국과 함께 포항의 젊은 스타로 폭발적 인기를 구가했다. 이 여파로 백승철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박성화 감독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 남은 정규리그 7경기에서 6골-1도움을 기록하며, 포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대 존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포항 시절의 백미는 역시 98년 플레이오프였다. 당시 포항은 [[전남 드래곤즈]]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연장승부까지 가는 접전으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고, 팀의 주축이었던 [[박태하]], [[고정운]]이 경고누적으로, 공격수인 이동국은 아시아 청소년대회 차출로 합류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반면에 울산은 [[정정수]], [[김현석]] 등이 포진한 최고의 전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반 16분 울산의 정정수에게 선제골을 내준 포항은 후반 12분 김명곤의 골로 따라붙었고, 후반 44분에는 최문식이 역전골을 터트리며 극적으로 승부를 마무리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인저리 타임이 적용되었던 후반 48분, 울산 김종건에게 헤딩슛을 내주며 2-2 동점을 허용했다. 포항 선수들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포항팬들은 허탈감에 사로잡혔을 후반 50분 무렵 그 시점에서 얻은 귀중한 프리킥 찬스. 포항의 키커는 당연히 벼락 슈터 백승철이었다. 백승철은 서효원이 밀어준 볼을 달려들면서 벼락같은 슈팅을 때렸고, 이 골은 골대 안에 빨려들어가며 결승골이 되었다. <ref> 백승철에 대해서 모르는 운봉공고 학생들에게 이 골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준다고 한다.</ref> 포항은 2차전에서 [[김병지]]의 희대의 헤딩골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백승철도 동료인 이동국에게 밀려 신인왕 타이틀을 놓쳤지만,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되며 백승철이란 이름을 각인 시켰다.
[[파일:백승철.jpg|200픽셀|오른쪽|섬네일|98 플레이오프에서 골을 넣고 포효하는 백승철]]
== 부상, 그리고 의료사고 ==
1998년 최고의 한해를 보낸 백승철이었지만 1999년 시즌은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운 채로 시작됐다. 호주 동계훈련에서 점프하다 떨어지며 발목을 다친 백승철은 그 후유증으로 상당 기간 고생해야 했고, 리그 초반 경기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6월에는 99 코리아컵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백승철은 몸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합류를 결심했고, 이는 부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ref> 백승철은 99년 부천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지만, 그 전에도 부상은 백승철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ref> 처음에는 1-2주정도 쉬면 괜찮은 부상이었지만, 당시 치열한 플레이오프 싸움을 벌였던 포항을 위해 백승철은 출전을 감행했고 결국, 무릎 인대와 십자인대가 손상된 상태였다. 여기서 백승철은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게 되는데,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지 않고, 포항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수술 실패로 백승철의 무릎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ref> 당시 수술을 한 의사도 큰 병원에 갔어야 했다고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ref> 백승철은 결국 수도권에 있는 모병원으로 옮겼지만, 오히려 그 곳에서의 수술로 인해 치명타를 맞고 말았다. 수술 과정에서 외부 병균에 감염되어 무릎 전체에 문제가 생긴 것. 병원 측에서는 수술에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이미 백승철의 무릎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다 참고 현실을 받아들인 백승철은 2년동안 긴 재활에 들어갔다. 안해본 재활이 없을정도로 백승철은 절박했다. 테이핑 치료로 유명한 일본에 가서 3개월동안 재활에 매달렸지만, 결국 백승철의 무릎은 돌아오지 못했다.
== 은퇴, 그 이후 ==
한순간의 실수로 축구선수 생활을 은퇴한 백승철은 1년간 방황하면서 지냈다. 특히 축구하고는 일체 연을 끊고 살았다. 하지만,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백승철은 운봉공고의 [[문영래]] 감독의 제의로 운봉공고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운봉공고에서 코치로 지내고 있다.
== 에피소드 ==
* 백승철은 슈팅을 때릴때 허벅지 근육보다는 무릎과 발목의 힘을 이용해 슈팅을 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슈팅의 정확도는 높았지만, 부상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백승철도 그 위험을 비껴가지 못했다.
== 같이보기 ==
*[[김경일]] (비운의 선수)
== 참조 ==
<references/>
[[분류: 영등포공고의 선수]][[분류: 영남대학교의 선수]][[분류: 포항 스틸러스의 선수]][[분류: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