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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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관

황보관(1965년 3월 1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8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에서 선수로 활동 후 J리그로 건너가 감독, 유소년 총감독, 단장 등 여러 경력을 쌓아오며 지일파의 선봉으로 통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황보관
  • 출생일 : 1965년 3월 1일
  • 유스클럽 : 서울대학교 졸업
  • 신체 : 179cm / 72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87년 ~ 199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88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대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 아시아 예선 대표
(통산 A매치 37경기 출장 / 10골)
  • 수상 경력
1988년 K리그 신인왕 수상
1988년 K리그 대상 시즌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
1994년 K리그 대상 시즌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유공 코끼리 유공 코끼리 1988 23 2 7 5 3 0
1989 8 2 2 1 0 0
1990 7 4 0 0 0 0
1991 22 7 3 2 2 0
1992 35 10 6 4 2 0
1993 18 2 2 3 1 0
1994 28 5 15 7 2 2
1995 30 6 9 5 2 0
통산 (K리그) - 171 38 44 27 12 2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팀명 직책
1999년 대한민국 U-20 트레이너
1999 ~ 2010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총괄담당
감독대행
2010년 12월 ~ 2011년 4월 FC GS FC GS 4대 감독.
그리고 폭풍 경질
2011년 ~ 2014년 7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2015년 ~ 현재 국가대표팀 지원팀장 → 기술교육실장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C GS FC GS 2011 1 3 3 시즌중 경질 (~'11.04.26.)
통산 (K리그) - 1 3 3 승률 14.2%
승무패 통산 기록은 K리그와 리그컵 기록 포함. 2013년 3월 1일 시점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황보관 선수는, 서울체고를 졸업하고[1] 서울대학교 축구부로 체육 특기생 신분으로 입학하였다. 당시 서울대는 타 대학과 마찬가지로 체육 특기자 자격으로 고교 축구부 선수들을 모집 운영하였으나, 축구부 운영 방식은 타대학과 완전히 달랐다. 정규 수업을 모두 수강한 후 저녁에만 1~2시간 훈련하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조직력이나 훈련량이 아마추어 축구 동호회 수준에 불과했고 당연히도 각급 대회에서 성적도 보잘것 없었던 것.[2]

이와 같이 절대적인 약팀의 상징처럼 통했던 서울대 축구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빛나던 순간이 있었으니, 1986년 전국 축구선수권대회에서 강호 고려대학교를 4:1로 꺽는 대파란을 일으킨 사건이 그것이다. 신연호, 김판근, 송주석88 올림픽대표팀 멤버가 주축이었던 고려대를 떡주무르듯 가지고논 서울대의 경기 운영은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특히 홀로 고려대 축구부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몰아넣었던 한 선수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다. 그 주인공이 바로 황보 관이었던 것이다. 고대 격파 사건(?) 이듬해인 1987년부터 황보관 선수는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K리그[편집]

1988년 드래프트에서 유공 코끼리에 지명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한 황보관은, 김정남 감독의 과감한 기용에 힘입어 신인 시절부터 대활약하였다. 데뷔 시즌에만 7골 5도움을 뽑아내며 신동철에 이어 팀내 득점 2위, 리그 내 도움 랭크 1위에 기록되는 수훈을 발휘하였던 것. 이후 이회택 감독이 이끄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로 발탁된 황보관은 2년동안 소속팀보다는 국가대표 합숙 훈련에 매진하며 시간을 보냈다.[3] 하지만 그토록 공을 들였던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본선에서 3경기 3패 1득 6실이라는 성적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후, 황보관 선수는 91시즌을 앞두고 무릎인대 파열 부상까지 당하면서 한동안 슬럼프에 가까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94시즌 가을, 황보관 선수는 다시금 비상하게 된다. 91년 10월부터 11월까지 4경기 연속골, 1경기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2달 동안 7골을 쏟아넣는 괴력을 발휘했던 것. 이 때 황보관의 원맨쇼 덕분에 유공은 막판까지 일화 천마와 우승 경쟁을 벌일 수 있었다.

94시즌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유공의 에이스로 대활약한 황보관을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일본이었다. 당시 JFL에 참가를 눈앞에 두고있던 오이타 트리니타는 황보관 영입을 위해 1년 가까이 공을 들였고, 결국 오이타는 1995년 12월 연봉 2천만엔 (당시 한화로 1억 5천만원)이라는 호조건으로 황보관을 데려가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오이타에서 3년간 활동하며 97시즌 JFL 득점왕 및 올스타에 등극하기도 했던 황보관은 98시즌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1987년 서울대 시절부터 국가대표 화랑에 발탁되었으며 당시, 강신우를 이은 2호 서울대 출신 국가대표로 화제를 모았다. 실력 또한 출중한 편이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대표로 이회택 당시 국가대표 감독에게 낙점되었으며 본선 조별예선 2차전 對 스페인전과 3차전 對 우루과이 전에 선발출장하였다. 특히 스페인 전에서 1990년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유일한 득점을 프리킥 상황에서 꽂아넣으면서 캐논슈터 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당시 황보관 선수가 기록한 골의 시속이 114km 로 당시까지 역대 월드컵 최고 시속골이었다. (98년에 깨지지만..)[4]


지도자 생활[편집]

2011 시즌을 앞두고 FC GS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가 2011년 4월 26일 불명예 퇴진했다. GS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기록까지 합해 3승 4무 4패를 기록.. 기록만 봐서는 나쁘지 않은듯 싶기도 하지만,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했거니와 난지도 팬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적으로는 J리그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일파인지라 행정적인 면이나 유소년 시스템 측면에서는 유능할거라는게 주변의 추측. 결국 GS 감독 경질 후 대한축구협회에 몸담게되면서 행정적인 업무에 종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한축구협회에 들어간지 불과 5개월여 만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기술위원장 자리를 꾀차며 두각을 나타내는중. 하지만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에 평가가 과히 좋지 못했으며, 결국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의 부진한 성적을 내는등 여러가지 문제가 불거지자, 허정무 부회장 및 홍명보 감독과 함께 동반 사퇴하며 기술위원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지원팀장, 기술교육실 실장을 맡는등 여전히 KFA 내에서 활동 중이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황보가 성이고 이름이 이다. 때문에 FC GS에서 부진할때 차두리 선수의 우루사 CF를 패러디해서 '(황보)관 때문이야~' 가 알싸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1학년때까지 계성고등학교 축구부였으나 팀이 해체함에 따라 서울체고로 전학하였다.
  2. 대신, 서울대 축구부 생들은 모두 정규과정을 이수한 덕분에 어렵지않게 교사 자격증을 보유할 수 있었다. 황보 관 씨도 교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 때문에 1989시즌 유공의 첫번째 우승 당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4. 황보관 선수 골 동영상 링크는 요기로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