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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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올림픽 엠블럼


소개[편집]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올림픽을 말한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뮌헨참사의 여파로 보안유지비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사상 초유의 적자를 본 올림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축구위키인 풋케위키에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란, 올림픽 축구 종목에 한정하여 다룬다.


진행 과정과 결과[편집]

지역예선에 역대 최다인 91개국이 참가하였다. 올림픽 본선에는 16개국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나이지리아, 가나, 잠비아 불참함에 따라 13개국만이 본선에 참가하였다.[1]

13개팀은 A,B,C,D 4개조로 나뉘어 1차 조별예선을 치루었다. 전대회와 달리 2차 조별예선은 폐지되어 각 조 1,2위가 8강에 진출하여 토너먼트를 치루었다. 이 대회에서는 북한을 포함, 아시아 참가국 모두가 8강을 진출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이 중 이스라엘은 3무로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종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득점왕 : Andrzej Szarmach (폴란드) - 6골


한국의 참가[편집]

아시아 예선 일정과 대표팀 구성[편집]


몬트리올 올림픽 아시아지역 축구예선은 1,2,3조로 나누어서 행해졌으며 각 조 1위팀만이 올림픽 본선에 나설 수 있었다. 한국은 일본, 이스라엘, 대만, 필리핀과 함께 3조에 속하였다. 당시 3조 예선 경기는 일본 도쿄에서 치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일본 정부의 대만 선수단 입국 거부[2] 파문과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일본 적군파의 테러 위협등으로 3조 예선은 정상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때문에 FIFA는 3조를 다시 3-A, 3-B, 3-C로 나누어 A조는 일본과 필리핀, B조는 한국과 대만, C는 이스라엘로 하여 A조와 B조의 1위팀을 먼저 가려내고 그 다음 A조 1위, B조 1위, 이스라엘 총 3팀의 리그전을 통해 본선국을 가리기로 합의했다. 이에 한국은 1975년 11월 30일 몬트리올 올림픽 아시아예선 참가 국가대표를 구성한바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 단장
민병대
  • 감독
함흥철 (당시, 조흥은행 축구단 코치)
  • 코치
김정남 (당시, 외환은행 축구단 트레이너)
  • GK
권이운 (기업은행 축구단), 김희천 (한양대)
  • FB
김호곤 (육군), 장기문 (외환은행), 조영증 (중앙대), 황재만 (신탁은행 축구단), 박성화 (고려대), 최종덕 (고려대)
  • HB
이차만 (포항제철) , 김강남 (고려대), 박상인 (육군), 박병철 (국민은행 축구단)
  • FW
신현호 (한양대), 유동춘 (육군), 조동현 (기업은행), 차범근 (고려대), 이영무 (경희대), 김진국 (육군), 허정무 (연세대)


아시아 예선 탈락[편집]


아시아 3-B조 한국 vs 대만 경기는 홈 & 어웨이로 벌어져 1차전 대만 원정경기에서 한국이 2:0 승을 거둔데 이어, 홈에서도 3:0 완승을 거두며 손쉽게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이후, A조 1위 일본, B조 1위 한국, 이스라엘 3팀의 경기가 벌어졌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은 일본은 3:0으로 대파한데 이어, 한국도 3:1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종합 전적 4전 3승 1무로 올림픽 본선 티켓을 가져갔다. 한국은 일본은 무조건 이기고, 이스라엘과 최소 비긴다는 뻔한(?) 전략을 갖고있었지만, 서울에서의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당시 이스라엘 7번이었던 기데온 담티 (Gideon Damti) 선수에게 2골을 내주며 주저앉고 말았다.


결과 요약[편집]


  • 아시아 예선 탈락


같이 보기[편집]


참고사항[편집]

  1. 당시 아프리카 26개국은 당시 인종차별 정책을 자행하고 있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에 반발해 올림픽을 보이콧하였었다.
  2. 당시 일본은 중국과 외교관계 증진에 신경을 쓰느라 중국과 앙숙인 대만 선수단 입국에 난처를 표했던 것이다. 중국이 드러내놓고 대만 선수단의 일본 입국을 거부하라고 요청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