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80년 [[고려대학교]]의 코치로 취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 출범한 [[슈퍼리그]] 클럽 [[대우 로얄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1987시즌을 앞두고 [[장운수]] 총감독이 사임하며 감독 자리에 오른다. 그가 37세일 때로,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3&no=1297894 (MK스포츠) 역대 최연소 사령탑 ‘파격 신화’, 이차만 감독은 누구]</ref>그는 감독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1989년에는 3위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대우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국가 대표팀 코치 겸임을 거쳐 [[1990 FIFA 월드컵]] 대표팀 감독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1992년 잠시 대우로 돌아왔다가 사임했고, 1996년 다시 대우 감독이 되어 [[아디다스컵]] 3위를 기록한 뒤 1997년 K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및 [[프로스펙스컵]] 석권으로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1998년 [[필립모리스컵]] 우승, 1999년 리그 준우승과 [[대한화재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99시즌을 끝으로 사임한 이차만은 2004년 [[부경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부임, [[윤빛가람]] 등을 키워내며 부경고를 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05년 1월 18일에는 [[정규풍]], [[김주성]] 등과 [[대한축구협회]] 50대 집행부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편, 2008년 심판 판정에 대한 극심한 항의로 2009년 1월에 3년의 자격정지를 당했고, 같은 해 4월 사면되었다.<ref>[http://news.sbs.co.kr/sports/section_sports/sports_read.jsp?news_id=N1000572583 (SBS) 축구협회, 27명 사면…이운재도 족쇄 풀려]</ref> 야인 생활을 하던 그는 2014년을 앞두고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 | 1980년 [[고려대학교]]의 코치로 취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 출범한 [[슈퍼리그]] 클럽 [[대우 로얄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1987시즌을 앞두고 [[장운수]] 총감독이 사임하며 감독 자리에 오른다. 그가 37세일 때로,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3&no=1297894 (MK스포츠) 역대 최연소 사령탑 ‘파격 신화’, 이차만 감독은 누구]</ref>그는 감독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1989년에는 3위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대우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국가 대표팀 코치 겸임을 거쳐 [[1990 FIFA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던 그는 1992년 잠시 대우로 돌아왔다가 사임했고, 1996년 다시 대우 감독이 되어 [[아디다스컵]] 3위를 기록한 뒤 1997년 K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및 [[프로스펙스컵]] 석권으로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1998년 [[필립모리스컵]] 우승, 1999년 리그 준우승과 [[대한화재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99시즌을 끝으로 사임한 이차만은 2004년 [[부경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부임, [[윤빛가람]] 등을 키워내며 부경고를 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05년 1월 18일에는 [[정규풍]], [[김주성]] 등과 [[대한축구협회]] 50대 집행부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편, 2008년 심판 판정에 대한 극심한 항의로 2009년 1월에 3년의 자격정지를 당했고, 같은 해 4월 사면되었다.<ref>[http://news.sbs.co.kr/sports/section_sports/sports_read.jsp?news_id=N1000572583 (SBS) 축구협회, 27명 사면…이운재도 족쇄 풀려]</ref> 야인 생활을 하던 그는 2014년을 앞두고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