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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형두.jpg|섬네일|150픽셀|경남 시절 전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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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형두.jpg|섬네일|150픽셀|경남 단장 시절 전형두]]
 
'''전형두'''(1955년 5월 13일 ~ 2013년 3월 25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인]]이다.
 
'''전형두'''(1955년 5월 13일 ~ 2013년 3월 25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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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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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FC 이전 ==
 
== 경남 FC 이전 ==
전형두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함안 가야초등학교, 함안중학교를 거쳐 마산공고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농산물유통업에 뛰어들어 재력을 갖추게 된 그는 1991년 만 34세의 젊은 나이에 마산시축구협회 회장직을 맡으며 경남 축구계 주요 인사로 떠올랐다. 이후 1995년, 경상남도축구협회장에 선임되며 경남 축구행정의 최일선에 서게 된다. 전씨는 경남축구협회장으로 [[무학기]]를 창설하며 경남지방을 대표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로 만들었으며, [[경남 FC]]의 창단을 위해 사재를 털어가며 노력했다. 거기에 [[함안대산고등학교]]에 여자 축구부를 창단하고, 2007년 [[FIFA U-17 월드컵]]을 유치하는 한편, 영남권축구센터를 창원에 유치하는 등<ref>오늘날의 [[창원축구센터]]가 그것이다.</ref> 경남 축구를 여러모로 이끈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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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함안 가야초등학교, 함안중학교를 거쳐 마산공고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농산물유통업에 뛰어들어 재력을 갖추게 된 전씨는, 1991년 만 34세의 젊은 나이에 마산시축구협회 회장직을 맡으며 경남 축구계 주요 인사로 떠올랐다. 이후 1995년, 경상남도축구협회장에 선임되며 경남 축구행정의 최일선에 서게 된다. 이후 경남축구협회장 재직하며 [[무학기전국축구대회]]를 만들어내어 경남 지방을 대표하는 전국 규모의 축구 대회로 키워내는데 성공하였으며, [[경남 FC]]의 창단을 위해 사재를 털어가며 노력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함안대산고등학교]]에 여자 축구부를 창단하고, 2007년 [[FIFA U-17 월드컵]]을 유치하는 한편, [[영남권축구센터]]를 창원에 유치하는 등<ref>오늘날의 [[창원축구센터]]가 그것이다.</ref> 경남 축구를 여러모로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경남 FC ==
 
== 경남 FC ==
2005년 경남 FC의 단장으로 취임, 초대 대표이사인 박창식씨를 보좌하였으며, 2007년에는 경남 FC 대표이사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대표이사 선임 후 껄끄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당시 리그 4위로 [[K리그 챔피언십]] 진출을 확정지었던 경남 [[박항서]] 감독이 [[산청군]] [[인조잔디]] 구장 업체 선정에 개입하였다는 스캔들이 터지면서 전형두와 마찰을 빚었던 것. 거기에 경영 문제도 겹치자 전씨가 박감독을 고의적으로 흔드는 것으로 판단한 경남팬들이 퇴진 운동을 벌이는 등 거센 항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전씨는 시즌 종료 후 박항서 감독과 함께 나란히 사임하였다. 후임자는 [[김영만 (언론인)|김영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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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경남 FC의 단장으로 취임, 초대 대표이사인 박창식 씨를 보좌하였으며, 2007년에는 경남 FC의 제2대 대표이사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대표이사 선임 후 껄끄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당시 리그 4위로 [[K리그 챔피언십]] 진출을 확정지었던 경남 [[박항서]] 감독이 [[산청군]] [[인조잔디]] 구장 업체 선정에 개입하였다는 스캔들이 터지면서 전형두와 마찰을 빚었던 것. 여기에 경영 문제도 겹치자 전씨가 박감독을 고의적으로 흔드는 것으로 판단한 경남팬들이 전형두 이사 퇴진 운동을 벌이는 등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결국 전씨는 시즌 종료 후 박항서 감독과 함께 나란히 사임하였으며, 경남의 제3대 대표이사로는 [[김영만 (언론인)|김영만]]씨가 부임하고, [[조광래]] 감독이 사령탑에 오르면서 소동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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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김두관]] 도지사의 부임 후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고, 김영만 대표이사가 사임하면서 다시 공석이 된 경남 FC 대표이사직에 앉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팬들의 반발을 샀다. 경남 팬들은 [[경남 FC 서포터즈 연합회]]를 중심으로 내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러한 비판 속에서도 전형두는 국내 최초로 구단이 직접 운영하는 상설 매장 [[GFC-메가스토어]]를 개장하고, [[K리그컵 2011]] 3위를 이루어 내는 등 팀을 잘 이끈 면도 보여주었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시기, "리그 승강제로 승부조작을 근절해야한다."고 발언하였으며,<ref>관련기사 : 경남FC대표이사 "리그승강제로 승부조작 근절해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091751]</ref><ref>다른 구단에 비해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자체 구단 특성 상 승강제가 도입되면 상대적으로 강등당할 확률이 높은 구단이었지만 전형두 대표이사의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 또한 승강제 논의가 있던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는 시도민구단 수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팬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정상적인 승강제가 되려면 지금 1부에서 4팀은 내려가야 한다"고 역설하였고, 강등팀이 2개 팀으로 확정되자 프로연맹 이사직에서 사퇴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160152.htm (스포츠서울-위원석) 전형두, 한 '지역축구 지킴이'를 추억함]</ref> 이후 그는 2012년 중후반 건강상의 이유로 경남 FC 대표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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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씨는 [[김두관]] 도지사 부임 후, [[조광래]] 감독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의 영전, 김영만 대표이사 사임 등의 기회를 맞이하며 제4대 경남 FC 대표이사에 앉게 되며 경남 FC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남 팬들의 반발을 샀다. 당시 경남 팬들은 [[경남 FC 서포터즈 연합회]]를 중심으로 내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였던 것. 하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 전형두는 국내 최초로 구단이 직접 운영하는 상설 매장 [[GFC-메가스토어]]를 개장하고, [[K리그컵 2011]] 3위를 이루어 내는 등 팀을 잘 이끄는 면을 보여주었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시기, "리그 승강제로 승부조작을 근절해야한다."고 발언하였으며,<ref>관련기사 : 경남FC 대표이사 "리그 승강제로 승부조작 근절해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091751]</ref><ref>다른 구단에 비해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자체 구단 특성 상 승강제가 도입되면 상대적으로 강등당할 확률이 높은 구단이었지만, 전형두 대표이사의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del>하지만 전형두 이후 경남 FC에 부임한 인간이 심판 매수를 통해 승부조작을 벌인건 아이러니..</del></ref> 또한 승강제 논의가 있던 [[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시도민구단 수장 중 유일하게 "팬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정상적인 승강제가 되려면 지금 1부에서 4팀은 내려가야 한다"며 승강제 확대를 역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강등팀이 1시즌 1+1개 팀으로 확정되자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직에서 사퇴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soccer/1160152.htm (스포츠서울-위원석) 전형두, 한 '지역축구 지킴이'를 추억함]</ref> 이후 그는 2012년 중후반 건강상의 이유로 경남 FC 대표 이사직에서도 사임하며 축구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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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여러 차례 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경남을 생각하고 기틀을 잡은 주요 인사 중 한명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후 2013년 11월 17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고인을 기리는 '제주거북농산 제 1회 전형두기 축구대회' 개최되었다. 제주거북농산 영농조합법인에서 주최하고 표선면축구연합회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참가 대상은 순수 아마추어 축구팀으로 한정되어 있다. 청년부와 장년부 경기로 나뉘어 치루어지고 있으며, 2014년 6월에도 2회 대회에 총 25개팀이 참가하는 등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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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여러 차례 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경남을 생각하고 기틀을 잡은 주요 인사 중 한명이었다는 평. 이후 2013년 11월 17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고인을 기리는 '제주거북농산 제 1회 전형두기 축구대회' 개최되었다. 제주거북농산 영농조합법인에서 주최하고 표선면축구연합회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참가 대상은 순수 아마추어 축구팀으로 한정되어 있다. 청년부와 장년부 경기로 나뉘어 치르고 있으며, 2014년 6월에도 2회 대회에 총 25개 팀이 참가하는 등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여기에 전형두 씨의 이름을 딴, '수국 전형두 기념사업회'재단법인으로 설립되어, 수국(守國)장학회를 통해 매년 도내 축구선수 6 ~ 8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국생활교실 운영축구대회 개최와 유소년축구교실도 추진하려는 계획을 잡는등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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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수국 전형두 경남축구협회회장의 장학재단 설립을 목표로 2014년 9월 17일 '수국 전형두 기념사업회'의 개소식이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서 거행되었다. 행사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를 비롯하여 '수국 전형두 기념사업회'의 임원 및 유가족등 50여명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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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회는 오는 11월께 재단법인으로 설립해 고 전형두 회장의 축구 사랑 정신을 기리고, 축구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경남축구발전을 꾀하게 된다. 또 고인의 호를 딴 가칭 수국 (守國)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도내 축구선수 6~8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국생활교실 운영축구대회 개최와 유소년축구교실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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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국배 생활 축구대회’(가칭)를 개최해 저변을 넓히고, 지역 출신 지도자인 이흥실 코치를 활용해 ‘이흥실 축구교실’(가칭)을 열고 유소년 축구단인 ‘이흥실FC’(가칭)을 창단해 유망주 양성도 이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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