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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 바이트 추가됨 ,  2011년 8월 16일 (화)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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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1월 12일 목동 종합 운동장에서 펼쳐진 [[부천 SK]]와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신의손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다. 전반전 문전 혼전 중 그는 부상을 당하며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고, 대기 명단에 골키퍼를 올리지 못 한 안양 조광래 감독은 후반전에 임시로 공격수인 [[진순진]]에게 골키퍼 장갑을 맡기며 어렵게 경기를 펼쳤다. 그만큼 신의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 2000년 11월 12일 목동 종합 운동장에서 펼쳐진 [[부천 SK]]와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신의손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다. 전반전 문전 혼전 중 그는 부상을 당하며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고, 대기 명단에 골키퍼를 올리지 못 한 안양 조광래 감독은 후반전에 임시로 공격수인 [[진순진]]에게 골키퍼 장갑을 맡기며 어렵게 경기를 펼쳤다. 그만큼 신의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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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경기에서 신의손은 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했다. 재활까지 보통 6~7개월이 걸리는 부상이지만, 신의손은 단 3개월만에, 게다가 마흔 살의 나이에 훈련에 복귀했다.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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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 사리체프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자 일각에서는 국가대표를 위해 사리체프를 귀화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사리체프는 귀화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1997년 타지키스탄 국가대표에 본의 아니게 선발되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은 물건너가게 되었다. <ref>1997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의 A매치가 예정되어있던 타지키스탄은 당초 내한키로 했던 선수단 가운데 우즈베키스탄 프로축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불참, 국가대표 12명만이 내한했고 국내 프로축구에서 뛰는 사리체프(천안 일화)와 비탈리(전북)가 가세해 간신히 14명이 출전한 것. 따라서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대기 선수이던 비탈리를 투입키로 했던 타지키스탄은 후반 6분에 비탈리를 들여보낸뒤 여유 선수가 없자 경기 종료 10여분을 남기고 코치이면서 선수로 등록한 로자노프를 투입했다. 이런게 A매치로 인정되면서 사리체프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꿈은 날아갔다 </ref>
    
==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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