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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예선 == [[File:1954극동.jpg|섬네일|250px|극동지역예선 경기을 앞두었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모습. 월간축구 1972년 12월호에 게재된 [[최광석]] 씨 소장 사진이다.]] 첫 월드컵 본선 참가를 위해 한국 대표팀은 극동지역 예선전을 거쳐야만 했다. 이 때 한국의 예선 상대국은 [[일본]] 이었는데, 원칙적으로 [[FIFA]]의 규정에 따라 일본과의 예선은 [[홈&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져야만 했다. 그러나 1954년이면 일제강점기로부터 한국이 독립한지 불과 10년도 안되었던 시절이라, 일본 선수들이 한국땅에 들어와 경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심지어 한국 선수들이 일본에 가서 경기를 하는 것도 못마땅히 여길 정도였는데..<ref>왜냐하면 국외로 선수단이 나가 경기를 하려면 체류비 등 외화가 필요한데, 당시 이승만 정부는 외화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만약 한국팀이 일본에게 질 경우, 그게 무슨 망신이냐. 숫제 경기를 안하는게 낫지 않겠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팀의 승리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었던 셈.</ref> 자칫 지역예선이 한국의 기권으로 끝날 위기에서 재일대한체육회 신희 씨와 재일사업가 정건영 씨는 이승만 대통령을 적극 설득했고,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 [[이유형]] 씨는 '''반드시 일본을 이기고 돌아오겠다. 만약 일본을 이기지 모하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전달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일본에서 2경기 모두 치른다'는 전제하에 예선전 참가 허가가 떨어졌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사된 54년 월드컵 극동지역 예선은 1954년 3월 7일과 14일 도쿄 메이진진구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ref>여담으로 이 경기가 최초의 [[한일전]]이었다.</ref> 극동지역 예선 1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GK [[홍덕영]] / FB : [[박규정]], [[이종갑]] / HB : [[이상의]], [[민병대]], [[강창기]] / FW : [[최광석]], [[성낙운]], [[최정민]], [[정남식]], [[박일갑]]을 출전시켰으며, 1차전에서 선취골을 일본에 내주긴했으나 한국팀은 5골을 퍼부으며 1차전을 5:1로 마무리했다. 이어진 2차전에서는 일본이 거칠게 경기를 진행하면서 [[김지성]] 선수의 이빨이 부러지는 등 사고가 있었으나 한국은 주눅들지 않으며 경기를 진행해 2:2 무승부로 1승 1무의 성적으로 극동지역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참가하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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