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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 시절 == 보성전문 졸업 후에는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평양 축구단]]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였으나 만주사변 발발과 태평양전쟁 전황 악화 등으로 일체의 체육 행사가 금지됨에 따라 몇년간 축구 선수의 길을 걷지 못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ref>월간축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평양 곡산공업주식회사에서 일하며 보냈다고. 당시 절친인 [[우정환]] 씨와 함께 지냈었다고 한다.</ref> 하지만 광복 직후 군에 입대해 [[병참단]] 소속 중위이자 국군 축구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 축구 부활의 불씨를 지폈으며, 1947년에는 [[김용식]] 씨의 권유로 [[조선전업 축구단]]에 참가하여 [[1948년 런던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ref>이 때 그의 나이는 34세로 지금 기준으로 봐도 노장 축에 끼는 나이였지만, 태평양전쟁기 등을 거치면서 축구 선수의 맥이 끊겼던 탓에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점은 [[김용식]], [[이유형]], [[민병대]], [[박대종]] 등 당대 축구 선수들의 공통적인 애로 사항이었는데.. 그러나 이들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며 한국축구의 뿌리를 다지는데 크게 공헌한다.</ref> 이후 6.25 동란기를 거치면서 다시 군에 입대, [[병참단]] 소속으로 축구 선수와 군인 생활을 병행하였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과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1955년 겨울 [[멜버른 올림픽]] 선발전까지 참가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다 1955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ref>한국 나이로는 41세, 만 나이로 치면 40세가 넘었다. 확실한건 40세가 넘도록 국가대표를 소화하고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다녀오셨다는 것.</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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