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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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정 (1915년 4월 21일 ~ 2000년?[1])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박규정
  • 출생일 : 1915년 4월 21일
  • 사망일 : 2000년?
  • 신체 : 169cm / 66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 대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ㆍ본선 대표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48년 ~ 1955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7경기 출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학창 시절[편집]

평양 출신으로 평양 광성고등학교[2]와 서울 보성전문을 졸업하였다. 광성고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하였는데, 당대 평양 지역에서 명성을 날리며 보성전문에 스카우트 되었을 정도였다고.. 보성전문 시절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1935년 발족한 조선축구협회대표팀의 멤버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성인 시절[편집]

보성전문 졸업 후에는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평양 축구단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였으나 만주사변 발발과 태평양전쟁 전황 악화 등으로 일체의 체육 행사가 금지됨에 따라 몇년간 축구 선수의 길을 걷지 못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3] 하지만 광복 직후 군에 입대해 병참단 소속 중위이자 국군 축구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 축구 부활의 불씨를 지폈으며, 1947년에는 김용식 씨의 권유로 조선전업 축구단에 참가하여 1948년 런던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4] 이후 6.25 동란기를 거치면서 다시 군에 입대, 병참단 소속으로 축구 선수와 군인 생활을 병행하였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1955년 겨울 멜버른 올림픽 선발전까지 참가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다 1955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5]


지도자 시절[편집]

선수 생활 정리 후, 1959년 제 1회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감독 데뷔 무대에서 한국팀의 우승을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6] 이후 1962년께부터 헌병감실 코치, 육군사관학교 코치 등을 맡으며 군인팀 육성에 주력하였으며 간간히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으며 이곳저곳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였다.

그러다 1969년 창단한 한국신탁은행 축구단김용식 씨와 함께 지도자로 선임되어 1973년 무렵까지 활동하였으며, 이후 1976년 무렵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한국 축구 지도자로써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에피소드[편집]

  • 김용식 씨의 직속 후배로 보성전문 시절 이래, 신탁은행 축구단까지 많은 세월을 김용식 씨와 함께하였다. 김용식 씨는 훗날 경향신문과의 회고 인터뷰에서 5명의 벗을 소개하였는데, 이 중 한명이 박규정 씨였으며[7] 그를 가리켜 '자신의 분신'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같이 보기[편집]

  • 박대종 (이름이 비슷한 동시대 선수)


외부 링크[편집]

[1] (KFA 박규정 기록)


참고[편집]

  1. 대한축구협회/위키백과 등에는 1924년생으로 기재되어있으나, 1935년 조선축구협회대표팀에 보성전문 소속인 박규정 씨 선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점, 월간축구 1971년 8월호 인터뷰에서 박규정 씨는 1955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였고, 당시 그의 나이 41세라고 명시한 점 등을 볼 때 1914년~1915년생이 맞는 것으로 보여졌다. 이후 본 문서 서술자와 언론사의 문의 등으로 대한축구협회가 재조사한 결과, 박규정 선생의 출생연월일이 1915년 4월 21일로 수정된바 이를 반영한다. 덧붙여 위키백과에는 2000년 사망으로 기재되어있는데, 출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 아시는 분이 추가 바란다.
  2. 평양에 홀 선교사가 1894년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로, 6.25 동란 등을 겪으며 교사가 남한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하여 있다. 다만 현재는 축구부를 운영하지 않는듯.
  3. 월간축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평양 곡산공업주식회사에서 일하며 보냈다고. 당시 절친인 우정환 씨와 함께 지냈었다고 한다.
  4. 이 때 그의 나이는 34세로 지금 기준으로 봐도 노장 축에 끼는 나이였지만, 태평양전쟁기 등을 거치면서 축구 선수의 맥이 끊겼던 탓에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점은 김용식, 이유형, 민병대, 박대종 등 당대 축구 선수들의 공통적인 애로 사항이었는데.. 그러나 이들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후학 양성에도 매진하며 한국축구의 뿌리를 다지는데 크게 공헌한다.
  5. 한국 나이로는 41세, 만 나이로 치면 40세가 넘었다. 확실한건 40세가 넘도록 국가대표를 소화하고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다녀오셨다는 것.
  6. 다만 당시 한국 대표팀은 전임 감독제가 아니라, 대회를 앞두고 그때 그때 대표팀이 소집되고 대회 기간 한정 감독/코치가 선임되는 구조였던지라, 박감독도 우승을 이끈 뒤 곧바로 지휘봉을 내려놓고 대한축구협회 총무부장으로 행정 업무에 복귀해야만 했다.
  7. 나머지 4명은 채금석, 김성간, 이유형, 민병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