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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시절 == === 유소년 시절 === === 프로 시절 === === 국가대표 시절 === 1995년 2월 19일, [[다이너스티컵]] 對 중국 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A매치 첫골은 1997년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對 [[홍콩]]전에서 기록하였다.<ref>다만 대한축구협회의 선수별 A매치 기록에는 최용수 선수의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 기록이 1995년 1월 31일, [[칼스버그컵]] 對 콜롬비아 전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칼스버그컵에 대한민국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양 팀 모두 A 국가대표팀이어야 한다는 A매치 개념상 이 경기는 A매치로 볼 수 없다.</ref> 이후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참가하여, 최종 예선에서만 [[카자흐스탄]] 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7골을 터트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4회 연속 진출의 1등 공신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자신의 장점인 파괴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ref>특히 [[벨기에]] 전에서 결정적 찬스를 놓친게 컸다. 이 때부터 찬스를 놓치지 않던 독수리의 명성에 금이가기 시작했다.</ref> 이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했고,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과 2002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미국과의 본선 조별리그 2차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한을 씻는데는 실패하였다. 한 때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유독 월드컵에서는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평. 2003년 동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뒤 다시 복귀를 노렸지만 이후 국가대표 유니폼과는 인연이 없었다. === 플레이 스타일 ===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의 집중력과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이 때문에 독수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수비 플레이시, 각종 반칙성 플레이와 허슬 축구가 대세였던 90년대 초중반 K리그에서, 상대 수비진들의 각종 플레이 패턴을 모두 파괴하며 골을 꽂아넣는 몇 안되는 국내파 공격수 중 한명으로 군림하였다. 이러한 장기는 J리그 진출 이후, 한층 더 빛을 발했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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