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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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1973년 9월 10일 ~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의 스트라이커 출신 지도자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성명 : 최용수
  • K리그 등록명 : 최용수
  • 출생일 : 1973년 9월 10일
  • 신체 조건 : 184cm / 79kg
  • 현 소속 클럽 : 선수 생활 은퇴
  • 국가대표 경력
1992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9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 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 대표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2003년 동아시안축구선수권대회 본선 대표
1995년 ~ 200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대한민국 대한민국 (통산 A매치 69경기 27골)
  • K리그 기록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LG 치타스 1994 35 10 10 7 2 0 0
1995 28 1 11 2 5 0 0
안양 LG 치타스 1996 22 7 5 2 2 0 0
1999 27 5 14 4 2 0 0
2000 34 10 14 10 6 0 0
FC GS 2006 2 2 0 0 0 0 0
통산 (K리그) - 148 35 54 26 17 0 0
K리그 기록은 리그컵 포함. 2013년 12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경력
2006 FC GS 플레잉코치 → 코치
2011 수석코치 → 감독대행
2012 ~ 현재 감독


선수 시절[편집]

유소년 시절[편집]

프로 시절[편집]

국가대표 시절[편집]

1995년 2월 19일, 다이너스티컵 對 중국 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A매치 첫골은 1997년 월드컵 아시아 1차예선 對 홍콩전에서 기록하였다.[1] 이후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참가하여, 최종 예선에서만 카자흐스탄해트트릭을 포함해 7골을 터트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4회 연속 진출의 1등 공신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자신의 장점인 파괴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2] 이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했고,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과 2002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미국과의 본선 조별리그 2차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한을 씻는데는 실패하였다. 한 때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써 이름을 날렸지만 유독 월드컵에서는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평. 2003년 동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뒤 다시 복귀를 노렸지만 이후 국가대표 유니폼과는 인연이 없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의 집중력과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이 때문에 독수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수비 플레이시, 각종 반칙성 플레이와 허슬 축구가 대세였던 90년대 초중반 K리그에서, 상대 수비진들의 각종 플레이 패턴을 모두 파괴하며 골을 꽂아넣는 몇 안되는 국내파 공격수 중 한명으로 군림하였다. 이러한 장기는 J리그 진출 이후, 한층 더 빛을 발했다는 평.

지도자 생활[편집]

업적[편집]



이야깃거리[편집]

  • 1998년 월드컵 이후, 서정원 등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잇달아 이루어지면서 최용수 선수도, 최호규 에이전트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해외진출을 모색하였던바 있다. 그러다 1999년 2월, 김도근 선수와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이적료 500만 달러, 연봉 70만 달러의 조건으로 입단하는데 합의하였다며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터졌는데..[3] 만인의 기대를 안고, 잉글랜드로 출국한 최용수는 정작 웨스트햄 측으로부터 우리는 그런 제의를 한적도 들은적도 없다는 통보를 들어야했다. 결국 1주일 동안 웨스트햄 2군에서 두 선수는 간단한 테스트만 보다가 조용히 귀국하였고, 이것이 그 유명한 최용수 웨스트햄 사건이었다. 최용수 하면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이며 본인에게는 흑역사로 기억되는 에피소드일듯.
  •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투르크메니스탄, 베트남, 일본을 상대로 3경기 연속 경기당 2골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고있다. 다만 투르크메니스탄 전에서는 최용수가 2골을 넣고도 3골을 실점해 대한민국이 역전패를 당했고, 더군다나 방콕 아시안게임은 8강전에서 태국의 Thawatchai Damrong-Ongtrakul에게 역사적인 중거리 골든골을 헌납하며 져버린 흑역사 대회로 취급되어, 최용수 선수의 위 대기록이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다만 대한축구협회의 선수별 A매치 기록에는 최용수 선수의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 기록이 1995년 1월 31일, 칼스버그컵 對 콜롬비아 전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칼스버그컵에 대한민국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양 팀 모두 A 국가대표팀이어야 한다는 A매치 개념상 이 경기는 A매치로 볼 수 없다.
  2. 특히 벨기에 전에서 결정적 찬스를 놓친게 컸다. 이 때부터 찬스를 놓치지 않던 독수리의 명성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3. 김도근 선수의 경우 이적료 150만 달러에, 연봉 50만 달러로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