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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생활 == === 안양에서 프로 데뷔와 수비수로 보직 변경 === 2002년 [[김치곤]], [[우진석]] 등의 고교 졸업 및 대졸 선수와 함께 1억 7000만 원의 계약금의 조건으로 [[안양 LG 치타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94327 안양 LG, 중학중퇴생과 계약]</ref> 입단 첫해에는 유소년 시절과 마찬가지로 공격수로 기용되어 [[대전 시티즌]]과 경기에서 [[이영표]]의 도움을 받아 데뷔골에 넣고, 이후 경기에서 [[뚜따]]의 득점을 돕는 모습으로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기에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교체로 출전하거나 2군 리그에서 주포로 활동하면서 안양의 2002년 2군 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47&aid=0000015854 2002 프로축구 2군리그, 안양 우승]</ref> 이듬해 2003년부터 당시 안양의 사령탑인 [[조광래]] 감독의 권유로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기에 이르렀고, 등번호도 입단 첫해 배정받았던 7번에서 20번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출전할 것을 알렸으나, 전반기 내내 출전하지 못하였다가 7월부터 정규 주전으로 18경기에 출전하면서 수비수로의 가능성을 알렸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이정수 선수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마는데, 소속팀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이전]]을 강행한 2004년, [[조광래]] 감독은 신인 [[이정열]]과 브라질 출신 노장 수비수 [[쏘우자]]를 중용하였고,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동하였던 [[박정석]]이 두각을 나타내자 이 선수는 5월에 교체로 단 두 경기 출전하는 것에 그치고 말게 되었다. ===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과 수비수로 성장 === 완전히 주전 전력에서 제외된 이 선수는 2004년 6월을 끝으로 [[FC GS]]를 떠나 [[베르너 로란트]]<ref>로란트 감독은 2004년 8월을 끝으로 개인사의 이유로 자진 사임. 이후 인천은 [[장외룡]]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했다.</ref> 감독이 이끄는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인천에 입단한 이 선수는 불성실하고 거만한 행동을 보이고 입단 반년 만에 [[J리그]]의 우라와 레즈로 떠난 [[알파이]]의 공백을 메우는 대체 선수 격으로 입단하였으나, [[알파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였고, 전반기 동안 꼴찌를 기록하며 흔들리던 인천의 후반기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선수는 창단 멤버로 2004년 인천에 입단한 [[임중용]]과 [[김학철3|김학철]] 등의 주전 수비수들과 좋은 조화를 보였는데, 두 선수가 빠른 공격수를 상대하는 데 약점을 보인 것을 적극적이고 빠른 플레이가 가능했던 이 선수가 이를 보완한 것이었다.<ref>다만, [[김학철]] 선수는 빠른 수비수로 명성을 알린 선수였다. 하지만 노장 반열에 오르면서 장점인 스피드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ref> 게다가 다듬어지지 않아 안양 시절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수비 능력도 [[장외룡]] 감독의 조련 아래에서 빠르게 보완되며 무섭게 성장하는 수비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음에도 출전할 때마다 수준급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인천의 짠물 스리백의 주축으로 시즌 준우승의 돌풍의 주역이 되었고, 대표급 수비수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 수원으로 이적과 K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상 === 인천의 수비 핵으로 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2005년 부진을 보였던 [[차범근]]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연결되면서 인천을 떠나게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25191 수원 삼성, 수비수 이정수 영입]</ref> 수원 이적 후, 이 선수는 [[차범근]]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에 주전 수비수로 [[마토]], [[곽희주]] 등의 선수와 출격하였으나, 수원의 2005년 부진은 2006년 전반기까지 이어지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 수원이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을 진행하면서 후반기에 경기력이 급상승하였고, 전력이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비수인 이 선수의 활약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듬해 2007년에도 전반기부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으나, 2007년 5월 [[울산 현대]]와 경기를 끝으로 장기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면서 잔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ref>이 시기에 나온 것이 [[계란정수]]이다.</ref> 부상에서 회복한 2008년에는 포지션을 좌측 측면 수비수로 변경하여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한 수비를 보여주며 전반기 무패와 단 2실점만 내주는 막강한 수비라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였고, 여름 이후 수원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시달릴 때 중앙 수비로 복귀하여 [[최창용]] 등의 어린 수비수들을 이끌어 부진했던 수원의 여름을 지키기도 하였다. 이후 이 선수는 부상에서 회복한 [[마토]], [[곽희주]] 등의 가세로 힘을 얻어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에서 수원의 통산 4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이 선수 본인도 [[K리그]] 데뷔 이래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 일본과 카타르로 해외진출 === 2008년 수원의 우승 멤버로 맹활약한 이정수 선수는 시즌 종료와 함께 해외진출을 추진해 [[J리그 디비전1]]의 교토 상가로 이적하였다. 교토에 입성한 이 선수는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수비와 공격 모두 알짜 활약을 보였고, 이 활약으로 이듬해 [[J리그 디비전1]]에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팀 가시마 엔틀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가시마에서 전반기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는 동시에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가를 최고로 올리게 되었다. 이러한 활약은 중동까지 전해졌고, 이 선수의 활약을 지켜본 카타르의 알사드 SC가 이 선수의 이적을 추진하면서 가시마에서 반년 활약하고 카타르 무대에 입성하였다. 알사드에 입단한 이 선수는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팀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알사드 입단 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는데,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전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맞대결에서 감독 지시와 무관하게 무단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하여 거취가 불분명해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동료 선수들의 비호와 구단에서 이 행동을 이해하여서 무사히 이 사건을 넘겼고, 최대의 사건을 끝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하며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해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기도 하였다. 이후 주전 선수로 알사드에서 활약한 이 선수는 [[라울 곤살레스]]와 [[사비 에르난데스]] 등 세계적인 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활약하였으나, 2016년 1월부로 팀에서 리빌딩을 계획하며 [[아시아 쿼터]] 선수를 영입에 착수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선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하였으나, 현역 생활을 더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알사드에서 퇴단하였다.<ref>은퇴 권유와 관련해서 불화설은 없었다고 한다. 구단과 이 선수 모두 서로를 이해해주는 모습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ref> === 친정팀 수원으로 복귀 === 알사드에서 퇴단한 이정수 선수는 친정팀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는데, 이에 [[인천 유나이티드]]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과거 인터뷰에서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언급하였기에 이 선수의 수원 복귀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ref>[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13002205813§ion_code=20&cp=se&gomb=1 이정수, “수원에서 현역 은퇴하고 싶다”]</ref> 그러나 퇴단 후 한 달이 넘게 거취가 결정되지 않아 국내에 복귀하지 않고 [[중국 슈퍼리그]]에 입단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고, 이에 수원팬들은 [[에두]]에 이어 이 선수도 놓치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으나, 2016년 2월 29일 수원으로 입단을 확정 지어 8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를 확정지었다. 수년째 이어온 제정 감축으로 어려웠던 수원에 복귀를 선택한 이 선수는 팬들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며 금의환향하였다.<ref>여러 팀이 이정수 선수의 영입전에 가세하면서 몸값이 3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수원 구단 측도 이정수 선수의 결정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ref><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3030100022610001251&servicedate=20160302 돌아온 이정수 '의리 사나이' 막전막후 사연은?]</ref> 수원으로 복귀한 이 선수는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1라운드 [[성남 FC]]와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8년 만의 복귀전을 치렀지만 0-2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 수원은 극심한 부진 속에 노련한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점차 수비 조직력이 와해되면서 어려움을 겪는 험난한 복귀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이는 후반기 넘어서까지 이어져 간혹 공격 본능으로 득점에 성공하고 중요 경기에서 노련한 수비로 빛을 보기도 했지만, 동반 부진하는 수비진 앞에선 이정수 선수도 큰 힘을 쓰지 못하고 말았다. 그나마 시즌 초반부터 호흡이 좋고 제 역할을 다 하는 [[구자룡]] 선수나 큰 기대를 받지 못했으나 본 기량 이상을 보여준 [[곽광선]] 선수와 함께 가장 최선의 수비진으로 불리는 것이 위안거리. 하위 스플릿 전·후로는 [[서정원]] 감독이 백스리 전형으로 수비를 구성하고 스피드에서 불리한 조건을 지닌 이정수 선수를 중앙 커맨더로 수비 부담은 줄여주게 되면서 노련한 수비력을 보였고, 이 기세로 수원의 통산 4번째 [[FA컵]] 우승까지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ref>그러나 결승전에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는 것이 과인이 아닐 정도로 주역에서 역적이 될 뻔 했다. 이정수 선수는 1차전에 놀라운 수비 능력으로 [[데얀]]을 말 그대로 꽁꽁 묶어버리는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2차전에서 전반전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좋은 흐름의 맥을 끊어 놓았기 때문. 그나마 이정수 선수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다카하기]] 역시 이정수 선수가 퇴장을 당한지 10분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마찬가지로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해 균형(?)을 이룬 것이었다.</ref> === 시즌 중 은퇴 선언 === 그러나 2017년 수원은 지난해 겪었던 부진을 다시 겪는 상황이 되며 6라운드까지 5무 1패인 무숭 행진을 리그에서 이어가고 말았다. 이정수 선수는 초반에 주전으로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일이 잦았지게 되었고, 컨디션도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후 4월 16일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6라운드 [[광주 FC]]와 경기에서는 출전하지는 않았으나, 경기 종료 후에 이물질을 던지며 이 선수에게 욕설을 내뱉는 극성 팬과 충돌하고 말았고, 이틀 뒤인 4월 18일에 돌연 퇴단을 선언하면서 거취가 불분명해 졌다. 이정수 선수는 [[K리그]] 이외의 다른 팀으로 이적은 없다고 선언한 상황이라 은퇴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후 양측은 며칠간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정수 선수가 은퇴를 굳게 마음먹었던 상황이었기에 수원 구단도 2017년 4월 21일로 이를 수용하기로 하였다.<ref>[http://www.bluewings.kr/notice/838533 수원삼성블루윙즈, 이정수 선수 은퇴 의사 수용]</ref> 이에 대해 수원 팬들의 반응은 과격한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갑작스런 은퇴에 대한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 === 국가대표 생활 === 2008년 9월 10일,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對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북한]]과의 경기를 출장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A매치 데뷔 이후 국대 주전 수비수로 안착해 남아공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도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0년 6월 12일에 열린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B조 1차전,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전반 7분 [[기성용]]의 프리킥을 골로 연결시키며 대한민국의 본선 무대 첫골을 신고하였다.<ref>이 골은 역대 월드컵 본선에서 대한민국이 기록한 골 중 가장 최단 시간만의 득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ref> 이후 2010년 6월 23일에 열린 B조 3차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도 0:1로 끌려가는 가운데 [[기성용]]의 프리킥을 헤딩골로 연결시켜 본선 무대 2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이처럼 본선에서만 2골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행에 기여한 이정수는 이후로도 대표팀에 붙박이로 발탁되고 있는 중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와일드카드]]로 참가하는 것이 유력시 되었으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참가가 불발되었고 이정수 선수 대신에 [[김창수]] 선수가 와일드카드가 발탁되기도 하였다. === 플레이 스타일 === 전성기 시절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공중볼에 강점을 보인 바 있으며, 스피드가 좋은 편으로 상대를 끈질기게 압박하는 것에 능수능란하였다. 여기에 태클 능력도 준수해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그야말로 "벽"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런 스피드에서 강점은 많이 사라졌지만, 노련하게 위치를 잡아 볼만 빼내는 수비를 주로 보여주고 있으며 수원 복귀한 2016년에는 이정수 선수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구자룡]]과 특히 좋은 호흡을 보이기도 하였다. 전반적으로 전성기 시절 처럼 터프하고 빠른 수비는 기대하기 어렵고, 손을 자주 써 위험 지역에서 반칙을 내주는 등의 불안 요소가 있지만, 기본 수비 능력에 있어서는 2016년 수원 수비진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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