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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치타스 시절 ===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서정원은 [[1992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확실시 되었으나, 구단간 계약금 담합에 불만을 품고 [[신태용]], [[정광석]], [[김병수]]와 함께 드래프트 거부를 선언했다. 천신만고 끝에 기존 계약금 연봉외 약 1억 2천만원의 계약금과 연봉을 추가로 받아 이 문제가 해결되었고, 서정원은 드래프트에 참가 당연히 1순위로 [[LG 치타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팀 사정이 좋지 않아 프로 첫 시즌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낙점된 서정원은 21경기에 출전하여 2골과 4도움으로 연착륙하였고, 6위였던 팀을 4위까지 끌어올리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93년부터 서정원은 LG에서 뛴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 1994년과 1995년에는 각 2경기 출장에 그치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국가대표 차출과 방위병 복무 때문이었다. 월드컵 예선과 월드컵 본선, 아시안컵 예선이 있던 3시즌 동안 서정원은 제집 드나들듯 대표팀에 들어가야 했고, 가뜩이나 홈경기만 출전할 수 있는 방위병 신분에 국가대표 소집이 걸려버리니 서정원은 LG의 경기에 출전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LG는 서정원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암흑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1995년 10월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국가대표 차출이 다소 완화되자, 서정원은 96년 안양 LG에서 27경기를 출전하면서 다시 핵심멤버로 자리잡는 듯 하였으나 1997년 부터, 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준비하면서 6경기만을 출전하게 되었다. 1997년 월드컵 예선이 끝나자 서정원은 해외진출을 선언하였고, 98년 이적료 100만달러에 프랑스 리그앙의 SC 스트라스부르크로 진출하게 되었다. 안양 구단은 계약조건에 따라 서정원에게 이적료의 절반인 50만달러를 주었고, 서정원은 국내복귀시 안양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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