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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시절 == [[파일:최진한1.jpg|200픽셀|섬네일|럭키금성 시절 최진한<br/><del>어째 지금이 더 젊어보여..</del>]] 명지대학교 졸업 후, 당시 [[진주시]]에 연고가 있던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한 그는 럭키금성<ref>LG 치타스 포함</ref>에서 보낸 7시즌동안 151경기에 출장, 21득점 15도움을 기록하며 대활약하였다. 1986시즌 후반부 3골을 터뜨리며 팀의 후기 리그 우승에 기여하지만,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포항제철 아톰즈]]의 우승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제대로 된 선수 관리 체계가 잡히지 않아 선수 혼자 재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기에 재활이 더디어 더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는 1989년 럭금의 주장을 맡은 뒤, 1990시즌에는 [[윤상철]]과 함께 18골 7도움을 합작<ref>최진한의 기록은 27경기 6골 5도움 '''0경고 0퇴장'''</ref>하며 럭금의 창단 후 첫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1990시즌 MVP까지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1990시즌 최고의 활약을 뒤로 하고 91시즌을 맞이하려던 최선수에게 큰 시련이 닥치게된다. 당시 K리그 구단들은 1984년 제정한 프로선수 관리세칙에 의거해 '''한팀에 입단한 선수는 6년간 소속팀을 바꿀 수 없다.'''는 규정과 함께, '''설사 특정 선수의 6년 계약이 만료된다하여도 원 소속팀이 해당 선수와의 재계약 포기 이전까지는 다른팀이 선수와 협상할 수 없고, 설사 협상한다해도 그 계약금은 3천만원으로 이하로 한다.''' 는 이면적 담합을 구성했었고, 이러한 선수의 FA 권리 행사를 원천봉쇄하는 악규정을 근거삼아 럭키금성은 최선수와의 연봉협상에서 낮은 연봉 인상폭을 제시했던 것. 이에 강력 반발한 최선수는 럭금에서 태업을 벌였고,<ref>91년 1월 일본진출까지 선언했었으나, 무산되었던바 있다.</ref> 결국 1991년 7월 럭키금성은 최선수의 방출을 선언한다. 무직 선수가 된 최선수를 노린 팀은 [[유공 코끼리]]. 하지만 유공은 최선수의 연봉 인상 요구를 럭금과 마찬가지로 무시했고, 이에 상심한 최선수는 은퇴까지 고려하다 동년 7월 31일 유공에 입단하기로 결심한다. 씁쓸한 항복선언이었던 셈. 이후 그는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 18경기에 나서 12골을 기록하면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92시즌, [[김정남]]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고, 당시 코치로 일하던 [[박성화]] 씨가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팀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는 1992년 11월 18일, [[대우 로얄즈]]와 의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명목상 은퇴 경기로 처리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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