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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생활 = == 2000년 이전 == 선수 생활 정리 후 한동안 해설자, 방송 진행자, 사업가(!)<ref>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허정무 씨는 은퇴 후 '조양플라스틱' 이라는 공장을 차리고 전 소속팀이었던 현대의 지원 속에 사업을 시작하였던바 있다. 상당히 벌이가 좋았던 편이었는데, 후에 화재로 공장이 전소하면서 사업을 잠시 접었다가 현재는 허정무 씨의 부인이 되시는 최미나 씨의 주도 아래 향수수입회사를 설립, 운영 중에 있다.</ref> 로 활동하며 축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던 허정무 씨는 199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임명된데 이어, [[1991년]]부터 [[포항제철 아톰즈]]에 코치로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걷게된다.<ref>당시 허정무 씨를 코치로 데려오기 위해 포철이 들인 돈은 계약금만 5천만원에 연봉 3천2백만원이었다. 당시 K리그 주전급들 월급이 150만원이던 시절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호조건이었던 셈.</ref> 이후 [[1993년]] [[포항제철 아톰즈]] 감독으로 승격하였으며, 같은해 [[아디다스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1995년]] 시즌 도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하여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 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 2000년 이후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 [[2006년]]과 [[2007년]] 팀의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를 이끌었고, [[2006년]] [[FA컵 (대한민국)|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2007년 12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와 [[핌 베어백]]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 2010년 월드컵 == {{본문|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도전사}} ==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 2010년 8월 22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2010년 9월 4일 부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서 첫 경기를 치루었으며, [[부산 아이파크]]와의 데뷔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으며 두번째 경기인 [[광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마저 후반 45분에 동점골을 먹히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다. 다만 3번째 경기인 [[대구 FC]]와의 22라운드 경기에서 4-1로 완승하며 인천에서의 첫 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23라운드 [[FC GS]]전에서는 0-2로 무너지며 인천 부임후 첫 패배를 당했다. 2011시즌은 6승 14무 10패로 13위를 기록하였다. 2012 시즌에는 리그 8위에 들어가지 못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였다. 2012시즌을 앞두고, 유니폼 발표회가 있었는데 전통적인 청색-검은색 조합을 버린 것에 대해, {{인용문2|세계적인 팀들도 유니폼이 많이 바뀐다. '''파란색을 전통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유니폼을 결정하면서 파란색이 인천시의 색이라고 해서 그 색상을 바탕으로 하고 나머지는 디자인에 맡겼다.<ref>관련기사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7083</ref>}} 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유니폼 변경에 대해 감독의 발언이 어느 정도 위치를 점할 수는 있으나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은 채,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팬들 위에 군림하려는 감독의 모습이 썩 좋게 비추어지지 않는다. 특히 파란색을 전통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팬들의 의견과 인천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밖에.. 결국, 불안불안하게 2012시즌을 출발한 허정무호는 성적도 1승 1무 4패로 급전직하하며, 모든 인천 팬들의 신임을 잃게되었고, 결국 허정무는 2012년 4월 10일부로 자진 사퇴를 결정하였다. == 인천 감독직 사퇴 이후 == 한동안 잠잠하다 2013년 3월, [[정몽규]] 회장을 중심으로 제52대 대한축구협회 임원진이 출범하자 [[허정무]] 씨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ref>대한축구협회는 1명의 협회장, 5명의 부회장, 분과위원장 2명, 이사진 8명으로 임원진을 구성한다. 허 부회장의 경우는 고등, 대학, 실업, 프로를 관장하는 성인리그 담당 부회장 직을 맡았다.</ref>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지원하는 부회장으로서의 중책을 맡아 활동하였는데, 브라질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2014년 7월 10일 전격 사퇴하였다. 이후 2015년 1월 [[한국프로축구연맹]]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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