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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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짓는 골을 성공시킨 허정무

허정무(許丁茂, 1955년 1월 13일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허정무
  • 출생일 : 1955년 1월 13일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신체 : 176cm / 74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76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8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86년 FIFA 멕시코 월드컵 본선 대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6년 ~ 198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101경기 출장 30골)
  • 수상 경력
1979년 체육훈장 백마장
1984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수상
1986년 체육훈장 거상장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자책
현대 호랑이 1984 23 3 3 2 3 0 0
1985 5 0 1 0 0 0 0
1986 11 2 1 3 1 0 0
통산 (K리그) - 39 5 5 5 4 0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1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89 ~ 199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너
1991 ~ 1992 포항제철 아톰즈 코치
1993 ~ 1995 감독
1993 ~ 199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1995 감독
1995 ~ 1998 전남 드래곤즈
1998 ~ 200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4 코치
2005 ~ 2007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07 ~ 2010.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0.9 ~ 2012.4 인천 유나이티드


  • 주요 기록
한국인 감독 최초 FIFA 월드컵 16강 진출 감독 (2010년)
대한민국 FA컵 우승 3회 (1997년, 2006년, 2007년)
1997년 FA컵 지도자상 수상
2006년 FA컵 최우수 지도자상 수상
2007년 제21회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감독상 수상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포항제철 아톰즈 1993 12 14 9 4위 우승 -
1994 14 13 9 3위 7위 -
1995 16 13 6 준우승 7위 -
전남 드래곤즈 1996 9 9 12 6위 9위 -
1997 17 15 4 준우승 준우승
(아디다스컵)
우승
3위
(프로스펙스컵)
1998 13 5 17 4위 조별예선
(아디다스컵)
-
10위
(필립모리스컵)
2005 10 11 15 10위 9위 -
2006 13 15 11 6위 7위 우승
2007 7 9 11 10위 5위 우승
인천 유나이티드 2010[1] 2 6 3 11위 - -
2011 7 16 12 13위 조별예선 -
2012[2] 1 1 4 - - -
통산 (K리그) - 121 127 113 K리그 준우승 2회, FA컵 우승 3회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전남 진도군 출신으로[3] 중동중학교, 영등포공고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허정무 씨가 축구를 하게된 계기가 제법 독특하기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허정무 씨의 삼촌[4]되는 당대 축구 국가대표 허윤정 선수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홍콩 세미프로 팀과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던바 있다. 이 때 허윤정 씨는 홍콩 축구팀 진출을 기념해 자신의 고향인 진도에서 시범 경기를 치루기로 하였는데, 이 때 허윤정 씨의 시범 경기에 앞서 오픈 게임으로 진도 어린이들의 축구경기가 펼쳐졌고 이 경기에서 허정무 씨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면서 허윤정 선수의 눈에 띈 것. 이 때 허윤정 선수는 허정무의 부모님께 '서울로 올려보내 축구를 시켜보라' 고 권유했고, 이러한 추천에 힘입어 서울 중동중학교 축구부가 허씨를 스카우트 하기로 결정,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영등포공고 시절부터 최종덕, 조광래 등과 함께 무서운 새내기로 주목을 받았던바 있으며, 연세대학교 재학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지녀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프로 생활[편집]

1978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전력 축구단의 제의를 받아 입단하게 되었지만, 군 문제로 인해 곧바로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차범근이 1979년 독일 분데스리가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유럽진출을 고심하였고,[5] 원 소속팀인 한국전력 측의 배려로 1980년 7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에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입단하였다. 당시에도 네덜란드 정상급 팀이었던 PSV에서 허선수는 반년 정도 교체 멤버로 뛰다가 이후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주전 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였고,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83시즌 팀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 1983년 집안 사정과 함께 국가대표 팀 문제로 인해 83년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 참가를 마지막으로 PSV를 떠나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 현대 호랑이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화제를 모았으며, 현대에서 3년간 생활 후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회 참가와 86시즌을 마무리하고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였다. 다재다능한 플레이로 매번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특히 198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는 월드컵 진출을 결정짓는 골을 성공시키면서 32년만의 월드컵 진출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후 본선 1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끈질기게 마크하였다.[6] 또한 본선 3차전 이탈리아전에서는 문전 앞에서 침착한 슈팅으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본선 조별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이후 86년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다. A매치 통산 84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지도자 생활[편집]

2000년 이전[편집]

선수 생활 정리 후 한동안 해설자, 방송 진행자, 사업가(!)[7] 로 활동하며 축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던 허정무 씨는 199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임명된데 이어, 1991년부터 포항제철 아톰즈에 코치로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걷게된다.[8] 이후 1993년 포항제철 아톰즈 감독으로 승격하였으며, 같은해 아디다스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1995년 시즌 도중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하여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2000년 이후[편집]

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 뒤 2004년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 2006년2007년 팀의 FA컵 2연패를 이끌었고, 2006년 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백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010년 월드컵[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도전사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편집]

2010년 8월 22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2010년 9월 4일 부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서 첫 경기를 치루었으며, 부산 아이파크와의 데뷔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으며 두번째 경기인 광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마저 후반 45분에 동점골을 먹히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다. 다만 3번째 경기인 대구 FC와의 22라운드 경기에서 4-1로 완승하며 인천에서의 첫 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23라운드 FC GS전에서는 0-2로 무너지며 인천 부임후 첫 패배를 당했다. 2011시즌은 6승 14무 10패로 13위를 기록하였다. 2012 시즌에는 리그 8위에 들어가지 못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였다. 2012시즌을 앞두고, 유니폼 발표회가 있었는데 전통적인 청색-검은색 조합을 버린 것에 대해,


세계적인 팀들도 유니폼이 많이 바뀐다. 파란색을 전통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유니폼을 결정하면서 파란색이 인천시의 색이라고 해서 그 색상을 바탕으로 하고 나머지는 디자인에 맡겼다.[9]


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유니폼 변경에 대해 감독의 발언이 어느 정도 위치를 점할 수는 있으나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은 채,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팬들 위에 군림하려는 감독의 모습이 썩 좋게 비추어지지 않는다. 특히 파란색을 전통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팬들의 의견과 인천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밖에.. 결국, 불안불안하게 2012시즌을 출발한 허정무호는 성적도 1승 1무 4패로 급전직하하며, 모든 인천 팬들의 신임을 잃게되었고, 결국 허정무는 2012년 4월 10일부로 자진 사퇴를 결정하였다.


인천 감독직 사퇴 이후[편집]

한동안 잠잠하다 2013년 3월, 정몽규 회장을 중심으로 제52대 대한축구협회 임원진이 출범하자 허정무 씨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10]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지원하는 부회장으로서의 중책을 맡아 활동하였는데, 브라질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2014년 7월 10일 전격 사퇴하였다. 이후 2015년 1월 한국프로축구연맹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에피소드[편집]

  • 196ㆍ70년대 석탄공사양지축구단, 홍콩, 서울은행 등에서 활약하였던 전직 국가대표 축구 선수 허윤정 씨가 허정무 씨의 삼촌 내지 삼촌뻘 되는 친척이라고 한다. 위에서도 소개했듯 허정무 선수가 축구 선수의 길을 걷게되는데 허윤정 씨가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허정무 선수가 영등포공고 시절 처음 청소년대표에 발탁될 당시에도 '허윤정의 조카가 삼촌의 후광 덕에 대표팀한다'고 입방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허정무 선수는 삼촌을 뛰어넘는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면서 세간의 가십을 잠재워버린다.
  •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2002년 월드컵의 영웅인 김남일, 설기현이 입단하면서 "허정무 감독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며 보은의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여기에 호주 유망주 네이선 번즈 역시 "인천에 입단한 이유는 맨유, 토트넘 등에 진출한 선수를 발굴해 냈고 월드컵 16강에 한국을 진출시킨 감독이 인천에 있기 때문에 왔다" 라며 호주 언론에까지 인터뷰 하면서 새삼 허정무 감독의 인맥과 명성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혹자는 "이러다가 박지성도 인천에 오는거 아니냐" 하는 설레발도 떨었는데...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인천에서 물러나자, 설기현 선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친허파 선수들이 인천을 떠나고 말았다.
  • 2013년 정기연고전에서 승리할 경우, 선수단에게 회식 때 크게 쏜다고 했는데 정작 이기자 사라졌다는 소문이 있다.


경력[편집]

축구 선수 경력[편집]


축구 선수 外 경력[편집]

  • 2013.3 ~ 2014.7 :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축구 해설가 경력[편집]

  • 2002년 한일월드컵 KBS 해설위원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MBC 해설위원


수상 이력[편집]

선수[편집]

대한민국 대한민국[편집]


네덜란드 네덜란드[편집]


감독[편집]

대한민국 대한민국[편집]


아디다스 컵 우승 1회 (1993년)


K리그 준우승 1회 (1997년)
FA컵 우승 3회 (1997년, 2006년, 2007년)
아디다스 컵 준우승 1회 (1997년)


AFC 아시안컵 3위 1회 (2000년)
동아시아컵 우승 1회 (2008년), 준우승 1회 (2010년)
FIFA 월드컵 16강 (2010년)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2010년 9월 부임
  2. 2012년 4월 사퇴
  3. 때문인지 2005년에는 전라남도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4. 정확히는 나이대가 삼촌뻘일 따름이며, 촌수로 따지면 사실상 남남인 먼 친척이라는 소리도 있다. 자세한 사항을 아시는 분이 수정 바람.
  5. 차붐의 활약 이후 유럽 진출을 타진한건 허정무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허정무 외 김진국 등 대 여섯명의 선수들이 유럽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정착에 성공한건 차범근과 허정무 둘 뿐이었다..
  6. 이 때 허선수가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는 사진이 찍히면서 한국축구는 '태권축구' 자학적인 반응이 3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훗날 허정무 감독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 때 마라도나를 걷어차려던게 아니라 볼을 걷어내기위해 발을 들었는데 마라도나가 달려들어서 충돌했던게 절묘하게 사진에 찍혔던거라고 한다.
  7.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허정무 씨는 은퇴 후 '조양플라스틱' 이라는 공장을 차리고 전 소속팀이었던 현대의 지원 속에 사업을 시작하였던바 있다. 상당히 벌이가 좋았던 편이었는데, 후에 화재로 공장이 전소하면서 사업을 잠시 접었다가 현재는 허정무 씨의 부인이 되시는 최미나 씨의 주도 아래 향수수입회사를 설립, 운영 중에 있다.
  8. 당시 허정무 씨를 코치로 데려오기 위해 포철이 들인 돈은 계약금만 5천만원에 연봉 3천2백만원이었다. 당시 K리그 주전급들 월급이 150만원이던 시절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호조건이었던 셈.
  9. 관련기사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7083
  10. 대한축구협회는 1명의 협회장, 5명의 부회장, 분과위원장 2명, 이사진 8명으로 임원진을 구성한다. 허 부회장의 경우는 고등, 대학, 실업, 프로를 관장하는 성인리그 담당 부회장 직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