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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2군에서 장시간을 보낸 설익찬 선수가 처음으로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9년의 일이었다. 경찰청 축구단 제대 후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은 설선수는 수후보 멤버로 간간히 이름을 올리며 출장경력을 쌓아갔고,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다.
수원 2군에서 장시간을 보낸 설익찬 선수가 처음으로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9년의 일이었다. 경찰청 축구단 제대 후 한층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은 설선수는 수후보 멤버로 간간히 이름을 올리며 출장경력을 쌓아갔고,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다.
무명의 설익찬 선수를 한 방에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준 1999년 K리그 결승전 1차전 對 [[부산 대우 로얄즈]] 와의 경기가 그것. 당시, 수원은 창단 이후 단 한번도 [[구덕종합운동장]]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는데, 그 악몽의 땅, 구덕에서 1차전 선취골을 터뜨리며 수원의 챔프 결정전 1차전 승리를 가져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설익찬이었다.<ref>당시 경기 2:1로 수원 승, 유명한 [[샤샤]]의 [[신의손 사건]]은 2차전 때 있었다.</ref> 첨언으로, 골이 들어가는 과정도 설익찬 선수가 잘했다기보다는 부산 골리였던 [[신범철]] 선수의 [[알까기]]로 인한 어이없는 실책의 공(?)이 더 컸지만 어찌되었거나 무명의 설움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날려버리며 설선수의 이름은 올드 수원팬들에게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1999년 수원의 3관왕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수놓았던 설익찬 선수는 짧고 굵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2001 시즌 개막을 앞두고 베트남 세미프로리그의 카느호아클럽에 임대된 후 2001년 7월에 계약해지되었다.
무명의 설익찬 선수를 한 방에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준 1999년 K리그 결승전 1차전 對 [[부산 대우 로얄즈]] 와의 경기가 그것. 당시, 수원은 창단 이후 단 한번도 [[구덕종합운동장]]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는데, 그 악몽의 땅, 구덕에서 1차전 선취골을 터뜨리며 수원의 챔프 결정전 1차전 승리를 가져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설익찬이었다.<ref>당시 경기 2:1로 수원 승, 유명한 [[샤샤]]의 [[신의손 사건]]은 2차전 때 있었다.</ref> 첨언으로, 골이 들어가는 과정은 설익찬 선수가 부산 골키퍼였던 [[신범철]] 선수의 다리사이로 멋지게 골을 성공시켜 무명의 설움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날려버리며 설선수의 이름은 올드 수원팬들에게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1999년 수원의 3관왕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수놓았던 설익찬 선수는 짧고 굵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2001 시즌 개막을 앞두고 베트남 세미프로리그의 카느호아클럽에 임대된 후 2001년 7월에 계약해지되었다.
==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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