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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생활
은퇴 직후 몇 달간 포항 [[스카우터]]로 일하였고, 2010년부터 포철공고 코치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2010년 5월, 레모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하차 함에 따라, [[박창현]]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ㆍ최문식 2군 코치가 수석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이창원 포철고 코치도 포항 스틸러스 2군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이후 2010년 2군 리그에서 포항 2군을 우승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2011년부터 모교이자 포항의 U-18 팀인 [[포철공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창원 감독의 부임 후 포철공고<ref>다만 2013년부터는 [[포항제철고등학교]]가 포철공고 축구부를 인수받아 운영 중이다.</ref>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 주니어]] 3연패 달성 및 2013년 [[전국고등학교축구리그]] 왕중왕전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특히 2014년도에는 왕중왕전 준우승ㆍ문체부장관배 우승ㆍ대통령금배 우승ㆍ전국체전 우승ㆍ한중일 주니어 종합경기대회 우승 등 4관왕을 차지하며 승승장구 하였다.
은퇴 직후 몇 달간 포항 [[스카우터]]로 일하였고, 2010년부터 포철공고 코치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2010년 5월, 레모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하차 함에 따라, [[박창현]]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ㆍ최문식 2군 코치가 수석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이창원 포철고 코치도 포항 스틸러스 2군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이후 2010년 2군 리그에서 포항 2군을 우승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2011년부터 모교이자 포항의 U-18 팀인 [[포철공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창원 감독의 부임 후 포철공고<ref>다만 2013년부터는 [[포항제철고등학교]]가 포철공고 축구부를 인수받아 운영 중이다.</ref>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 주니어]] 3연패 달성 및 2013년 [[전국고등학교축구리그]] 왕중왕전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특히 2014년도에는 왕중왕전 준우승ㆍ문체부장관배 우승ㆍ대통령금배 우승ㆍ전국체전 우승ㆍ한중일 주니어 종합경기대회 우승 등 4관왕을 차지하며 승승장구 하였다.
성적 뿐만 아니라 [[문창진]], [[이광혁]] 등 많은 유망주들을 발굴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으로 꼽힌다.. 이후 2015년 6월, 최문식 수석 코치가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하자 이창원 감독도 포항을 떠나, 대전시티즌 수석코치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적 뿐만 아니라 [[문창진]], [[이광혁]]황희찬 등 많은 유망주들을 발굴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으로 꼽힌다.. 이후 2015년 6월, 최문식 수석 코치가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부임하자 이창원 감독도 포항을 떠나, 대전시티즌 수석코치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 에피소드 =
= 에피소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