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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5일 (월) 00:15 판
선수 생활
해방 직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 때만 해도 포지션은 풀백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당시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이창석 씨의 권유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대한민국 국가대표 1세대 수문장으로 활약하였다.
지도자 생활
1969년 창단한 조흥은행 축구단 감독을 맡아, 1981년까지 활약하였다. 그러다 1981년 3월 조흥은행 축구단 감독직을 사임한 뒤, 잠시 쉬다가 풍생고등학교 축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1]
사망
추석연휴였던 2000년 9월11일 설악산 등반도증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불의의 사고로 타계했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뤄졌고 고인의 유언에 따라 경기도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한 뒤 납골당에 모셔진다.
에피소드
자기 관리에 있어서 매우 철저하여,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과 동일하게 체력 훈련을 수행했다고 한다. 덕분인지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 풍채를 자랑했다.
참고
- ↑ 여기에는 함흥철 씨의 한양공고 후배이자 당시 풍생고 교장이었던 홍사흥 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