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1년 4월 이집토 4개국 축구대회에서 처음 선을 보였으며 붉은악마가 붉은색과 악마가 사탄을 의미한다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직이다. 2000년 7월 백의천사 국민 운동본부를 출범하였고 당시 응원단의 결성 취지에 대해서 기획간사 정모씨는 "붉은 악마 응원단은 악마라는 명칭을 사용해 국가와 민족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악마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며 "이러한 이미지의 제고를 위해 개신교가 앞장서 천사의 이미지를 갖는 응원단을 결성하게 됐다"고 밝혔지만<ref>사실 이러한 비판이 얼마나 어이없냐면 1997년 여름에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해 붉은악마가 대중사이에 유명해졌고 당시 명칭논란에 대해서 언론에서 다룬적이 있지만 많은이들이 공감하지 않아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고 지속되지도 못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나 명칭논란으로 이에 대응하는 응원조직을 만든다?</ref> 2001년 3월 준비위원장 남모 목사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전세계 연인원 600억명이 시청하는 월드컵 경기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세계선교의 기회라고 판단해 백의천사 응원단을 결성하게 된 것'''이라 말해 선교의 도구임을 드러냈고 실제로 경기장 내에서 행동들은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폐막되고 '''당연히''' 활동을 접으면서 사라졌다. | + | 2001년 4월 이집트 4개국 축구대회에서 처음 선을 보였으며 붉은악마가 붉은색과 악마가 사탄을 의미한다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직이다. 2000년 7월 백의천사 국민 운동본부를 출범하였고 당시 응원단의 결성 취지에 대해서 기획간사 정모씨는 "붉은 악마 응원단은 악마라는 명칭을 사용해 국가와 민족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악마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며 "이러한 이미지의 제고를 위해 개신교가 앞장서 천사의 이미지를 갖는 응원단을 결성하게 됐다"고 밝혔지만<ref>사실 이러한 비판이 얼마나 어이없냐면 1997년 여름에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해 붉은악마가 대중사이에 유명해졌고 당시 명칭논란에 대해서 언론에서 다룬적이 있지만 많은이들이 공감하지 않아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고 지속되지도 못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나 명칭논란으로 이에 대응하는 응원조직을 만든다?</ref> 2001년 3월 준비위원장 남모 목사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전세계 연인원 600억명이 시청하는 월드컵 경기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세계선교의 기회라고 판단해 백의천사 응원단을 결성하게 된 것'''이라 말해 선교의 도구임을 드러냈고 실제로 경기장 내에서 행동들은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폐막되고 '''당연히''' 활동을 접으면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