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실업축구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실업팀들 만의 대회는 1964년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업 리그는 1970년대 후반 [[코리안 리그]]로 불리며<ref>리그라고는 하지만 경기 숫자는 팀당 6~7경기에 불과해 거의 현재의 [[K리그 컵대회]] 수준의 군소 리그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ref>, 1.2부 승강제까지 벌이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1983년 [[K리그]]의 신설로 실업 리그의 독자성이 퇴색되고, 관중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실업리그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2002년까지 실업 축구는 실업 축구 연맹전과 전국체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등 각종 군소대회에 참가하며 명맥을 이었으나, IMF 한파 등 외부 조건에 요동치며 갈수록 실업축구팀 수가 줄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2000년, [[대한축구협회]]가 프로 2부리그 창단 방안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실업 리그를 2부화하는것이 합당한지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고, 2000년 실험적으로 현대자동차 K2리그가 운영되면서 실업축구의 방향성은 일대 전환을 맟게된다. 이후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장래의 프로축구 2부리그화를 목표로 2003년 K2리그가 발족하였다. 이후 2006년 내셔널리그로의 명칭 변경 이후의 역사는 승강제 시도를 위한 고난의(?) 역사의 연속이므로 이하 서술하겠다. | + | [[한국실업축구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실업팀들 만의 대회는 1964년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양적성장을 거듭하며 80년대 들어서 1.2부 승강제 시행 할 정도로 발전했으나 1983년 [[K리그]]의 신설로 실업 리그의 독자성이 퇴색되고, 관중들의 외면을 받게된다. 이후 [[한국실업축구연맹]]이 [[대한축구협회]]에 흡수되면서 대한축구협회의 주관으로 실업축구는 진행되었고 1990년 다시 [[한국실업축구연맹]]이 독립하게 된다. 출범부터 군.실업.금융단으로 구성된 실업축구였지만 90년대 들어 금융단팀은 연이어 해체됐고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단팀은 대부분이 해체되고 그 외 실업팀도 해체위기를 맞으면서 프로2군팀이 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이후 2000년, [[대한축구협회]]가 프로 2부리그 창단 방안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실업 리그를 2부화하는것이 합당한지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고, 2000년 실험적으로 현대자동차 K2리그가 운영되면서 실업축구의 방향성은 일대 전환을 맟게된다. 이후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장래의 프로축구 2부리그화를 목표로 2003년 K2리그가 발족하였다. 이후 2006년 내셔널리그로의 명칭 변경 이후의 역사는 승강제 시도를 위한 고난의(?) 역사의 연속이므로 이하 서술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