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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프랑스 명문 유소년구단인 FC METZ(메스)에 입단하여 축구전문학교인 COLLEGE ARSENAL에 선발된 그는 FC METZ위해 4년간 최고수준의 주말리그를 뛰었다. 왼발잡이로서 뛰어난 개인기와 VIVACITE를 보이자 구단은 이 자그마한 동양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 2001년 프랑스 명문 유소년구단인 FC METZ(메스)에 입단하여 축구전문학교인 COLLEGE ARSENAL에 선발된 그는 FC METZ위해 4년간 최고수준의 주말리그를 뛰었다. 왼발잡이로서 뛰어난 개인기와 VIVACITE를 보이자 구단은 이 자그마한 동양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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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주말리그에서 30경기에 참가, 45골 12어시스트를, 2004년 주말리그에서는 30경기에서 28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약 100경기에 참가하여 100골 이상을 기록하였고 벨기에에서 열린 유소년 국제대회에서는 MVP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 + | 2003년 주말리그에 참가, 30경기45골 12어시스트, 2004년 리그 30경기 28골을 기록하였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약 100경기에 참가하여 100여골 |
| + | 기록하였고 벨기에에서 열린 유소년 국제대회에서는 MVP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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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지역 주대표에 선발되어 룩셈부르그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참여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키가 자라지 않아 아프리카 출신의 대형공격수에 주전 자리를 밀렸고 2007년 9월 프로팀 STADE DE REIMS 스타드드 랭스와 3년 계약하며 이적하였다. | | 로렌지역 주대표에 선발되어 룩셈부르그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참여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키가 자라지 않아 아프리카 출신의 대형공격수에 주전 자리를 밀렸고 2007년 9월 프로팀 STADE DE REIMS 스타드드 랭스와 3년 계약하며 이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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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DE DE REIMS 구단의 U-16팀 NATIONAUX(나쇼노:프로팀산하 유소년팀들간 홈/어웨이리그경기.프랑스최고 유소년 주말리그)리그서 24경기 출전, 20공격포인트 (7골 + 13어시스트)를 올렸다. 주전이자 최고의 활약을 하였으나 팀의 하부리그 추락을 막지 못하였다. | + | STADE DE REIMS 구단의 U-16팀 NATIONAUX(나쇼노:프로팀산하 유소년팀들간 홈/어웨이리그경기.프랑스최고 유소년 주말리그)리그서 24경기 출전, 20공격포인트 (7골 + 13어시스트)를 올렸다. 주전으로 최고의 활약을 하였으나 팀의 하부리그 추락을 막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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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 해 U_18팀에서 21경기 출전, 16공격포인트(5골 + 11어시스트)를 기록하여 1년 만에 팀을 U_19 NATIONAUX 전국 엘리트 리그로 승격시켰다. | + | 둘째 해 U_18팀에서 21경기 출전, 16공격포인트(5골 +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년 만에 팀을 U_19 NATIONAUX 전국 엘리트 리그로 승격시켰다. |
| 2009년 부터 CFA2 리저브팀에 합류하여 STADE DE REIMS U_19팀에서 프로계약을 눈 앞에 둔 최고 유망주 중 한명이었다. | | 2009년 부터 CFA2 리저브팀에 합류하여 STADE DE REIMS U_19팀에서 프로계약을 눈 앞에 둔 최고 유망주 중 한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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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시즌 시작과 함께 계약 연장을 희망하는 REIMS구단의 요청에 김석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의 프로진출을 눈앞에 두는가 했으나 김석의 결정은 의외였다. 그는 유럽에 남아있기 보다는 고국을 택했다. REIMS구단의 1년 계약연장이라는 조건도 맘에 다가오질 않았다. | | 2010년 시즌 시작과 함께 계약 연장을 희망하는 REIMS구단의 요청에 김석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의 프로진출을 눈앞에 두는가 했으나 김석의 결정은 의외였다. 그는 유럽에 남아있기 보다는 고국을 택했다. REIMS구단의 1년 계약연장이라는 조건도 맘에 다가오질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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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은 그의 재능을 아끼는 감독과 REIMS구단의 기대를 뒤로 한 채 국내로 돌아왔다. 2010년 2월이었다. 그는 고국에서 실력을 보여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유럽진출은 나중에 다시 도전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왔다. STADE DE REIMS 는 김석의 이러한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 보내야만 했다. | + | 김석은 그의 재능을 아끼는 감독과 REIMS구단의 기대감을 뒤로 한 채 국내로 돌아왔다. 2010년 2월이었다.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
| + | 그는 고국에서 프로로 실력을 인정받고 국가대표가 되어 유럽진출을 나중에 다시 도전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왔다.자신감도 있었다. |
| + | STADE DE REIMS 는 김석의 이러한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 보내야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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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복귀 이후 == | | == 국내복귀 이후 == |